지역의료 현장서 배우는 의사 양성…임상 넘어 생명윤리·사회적 책임 교육
이훈재(왼쪽)인하대 의과대학장과 이두익(오른쪽 2번째)백령병원장, 백령병원 의료진, 의대 학생들이 지난 3월 백령병원에서 특성화 임상 실습을 한 후 사진촬영을 하고있다.ⓒ 인하대의료원 제공
의료위기 시대의 의학교육이 ‘의사 수’를 넘어 ‘어떤 의사를 양성할 것인가’ 라는 질문으로 확장되고 있다.
지역 간 의료격차와 필수의료 공백이 지속되는 가운데 인하대 의과대학이 대학병원과 강의실 중심의 교육에서 벗어나 지역사회 곳곳으로 의학교육의 무대를 넓히고 있다.
서해 도서지역과 병원선, 지역 의료기관에서 의료현장을 직접 경험하게 하고 생명윤리와 의료인의 사회적 책임까지 교육하는 방식이다.
9일 인하대의료원에 따르면 인하대 의대의 지역사회 기반 의학교육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곳은 백령도다.
인천항에서 배로 약 4시간 떨어진 백령도는 기상 악화에 따라 선박 운항이 제한되고 응급환자 발생 시 신속한 육지 이송이 쉽지 않은 의료취약지역이다.
인하대 의대는 올해부터 본과 4학년 학생들을 백령병원에 보내 3주간 지역사회 특성화 실습을 진행하고 있다.
학생들은 병원 진료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 지역의 의료환경과 주민 건강문제를 살펴보고 관련 세미나와 교육에도 참여한다.
대청도와 소청도 등 인근 섬에서는 순회진료와 의료봉사를 경험하고 주민들의 고혈압·당뇨 등 만성질환 관리 실태도 조사한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질병을 치료하는 기술만으로 지역의료가 완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현장에서 배운다.
의료기관에 접근하기 어려운 주민에게는 찾아가는 의료서비스가 필요하고, 응급환자 치료에는 병원과 함께 이송체계와 공공의료 시스템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현실을 체감하는 것이다.
교육의 무대는 병원선으로도 이어진다.
학생들은 옹진군 병원선 ‘건강옹진호’에 승선해 도서지역 1차 의료의 역할을 경험한다. 고령화와 만성질환, 의료기관 접근성, 전문의 부족 등 지역의 특성이 주민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살펴본다.
의사 한 명이 환자 한 사람만 치료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전체의 건강환경을 바라보는 시야를 갖도록 하는 것이 교육의 목표다.
인하대 의대는 2022년부터 지역사회에 필요한 의사 양성을 위한 교육체계를 준비해 왔으며, 교육부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 사업과 연계해 지역 특성에 맞는 교육을 확대하고 있다.
의료기술과 함께 의사의 가치관과 윤리를 다루는 교육도 강화했다.
올해 3월에는 국내 의과대학 가운데 처음으로 대만 츠지대학교 의과대학의 ‘말없는 스승(Silent Mentor)’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이 프로그램은 해부학 실습용 시신을 단순한 교육 대상이 아니라 생전에 자신의 몸을
의학교육에 기증한 ‘스승’으로 존중하는 데 의미가 있다.
학생들은 기증자의 삶을 살펴보고 유가족을 만나 감사와 추모의 시간을 가진 뒤 해부학 실습에 참여한다.
한 사람의 몸에는 삶과 가족, 기억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경험하면서 의료인이 가져야 할 생명 존중의 자세를 배우는 과정이다.
인하대 의대는 이를 계기로 의료인문학과 기초해부학, 임상의학을 연결하는 통합형 수술해부학 교육도 강화할 계획이다.
지역 의료기관과의 교육 협력도 확대한다.
인하대 의대는 지난 7월 인천세종병원과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지역책임의료기관 및 지역심뇌혈관질환센터의 교육·훈련과 의대생 현장실습, 필수의료 관련 교육·연구를 공동 추진하기로 했다.
백령병원은 지난 4월 공식 교육협력병원으로 지정됐다.
인하대 의대는 올해 안에 지역 의료기관 100곳과 협력체계를 구축해 임상실습과 지역의료 교육과정 개발, 의료진 교육 및 학술교류 등을 확대할 예정이다.
대학과 대학병원이 중심이던 의학교육을 지역병원과 공공의료기관, 지역사회가 함께 만드는 구조로 전환하겠다는 구상이다.
인하대병원이 축적해온 도서지역 의료지원 경험도 교육과 연결된다.
인하대병원은 지난 1998년부터 백령도를 비롯한 도서지역 의료지원 활동을 이어오고 있으며, 백령병원과 스마트 원격 화상협진 시스템을 구축해 전문의가 실시간으로 중환자 진료에 참여하는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학생들은 이를 통해 지역병원과 대학병원, 공공의료가 서로 분리된 영역이 아니라 하나의 의료 네트워크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을 현장에서 확인한다.
지역의사제와 교육의 연계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인하대는 2027학년도 수시모집에서 지역의사제 전형으로 6명을 선발할 계획이다. 지역의료 인재 선발과 지역사회 중심 교육, 현장실습을 연결해 지역의료에 필요한 인재를 체계적으로 양성한다는 취지다.
지역의료 문제는 의학교육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의료진이 지역에 정착할 수 있도록 적정한 보상과 의료 인프라를 마련하고 응급환자 이송체계와 의료사고 안전망 등 제도적 기반도 갖춰야 한다.
그러나 결국 현장을 지키는 의료인이 없다면 지역의료의 지속 가능성도 기대하기 어렵다.
인하대 의대가 주목하는 것도 이 지점이다.
백령도에서 의료 접근성의 한계를 배우고, 병원선에서 도서지역 1차 의료를 경험하며, 지역 의료기관에서 필수의료의 현실을 접한다. 해외 교육을 통해서는 생명의 존엄성과 의료인의 윤리를 고민한다.
교육 장소는 달라도 지향점은 분명하다.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를 넘어 지역의 의료환경을 이해하고 필요한 곳에서 책임을 다하는 의사를 양성하는 것이다.
이훈재 인하대 의과대학 학장은 “지역의 현실을 알고 환자의 삶을 이해하며 생명의 존엄성을 잊지 않는 의사를 길러내는 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교육”이라며 “의사를 넘어 지역을 책임지는 의료인을 양성하겠다”고 말했다.
의사 수를 늘리는 것만으로 지역의료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의사를 길러내고, 그 의사가 지역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교육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인하대 의대의 지역사회 기반 의학교육은 의학교육의 공간을 대학에서 지역으로 확장하고, 의사의 역할을 치료자에서 지역사회의 건강을 함께 책임지는 전문가로 넓히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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