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여 4~5차례 물밑 협의에도 합의 불발
후보추천 절차 재개도 검토…일부 후보 반대
제청 당일 손봉기 통보…대통령 면담 없이 서면 제출
조희대 대법원장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이재명 정부 첫 대법관 인선을 둘러싸고 조율을 이어온 청와대와 사법부가 결국 접점을 찾지 못하면서 대법원장의 이례적인 '서면 제청'에 이르게 된 막판 과정에 관심이 쏠린다.
양측은 한 달여간 여러 차례 물밑 협의를 진행했지만 최종 후보를 놓고 합의하지 못했고, 기존 후보 추천 절차를 사실상 원점으로 돌리는 방안까지 검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조희대 대법원장은 이재명 대통령과 별도의 면담 없이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를 서면으로 제청했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관 인선은 법원 내·외부 위원들로 구성된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심사에 동의한 후보 가운데 3배수 이상을 대법원장에게 추천하면서 본격화된다.
대법원장이 추천 후보자 가운데 적임자를 선정한 뒤 법원행정처장이 청와대 민정수석과 협의를 거쳐 최종 조율하는 방식으로 진행돼 왔다.
통상 이 같은 협의가 마무리되면 대법원장이 대통령을 만나 특정 후보를 제청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인사혁신처에 관련 서면을 제출한다.
그러나 이번 인선에서는 법원행정처와 청와대 간 물밑 조율 단계부터 난항을 겪었다.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1월 21일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으로 김민기·박순영 서울고법 고법판사, 윤성식 서울고법 부장판사,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 등 4명을 추천했다.
이후 법원행정처장 교체 등이 이어지면서 협의도 지연됐다. 당시 법원행정처장이었던 박영재 대법관이 한 달여 뒤 물러났고 기우종 법원행정처 차장이 약 4개월간 처장 직무를 대행하다 지난달 14일 노경필 대법관이 신임 처장으로 취임했다.
노 처장은 취임 이후 한 달여간 청와대 측과 4~5차례 협의를 시도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처장은 전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협의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이재명 정부 첫 대법관이라는 상징성 등을 고려해 김민기 고법판사를 우선적으로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대법원에서는 김 고법판사의 배우자가 현 정부에서 임명된 오영준 헌법재판관이라는 점 등에 부담을 느낀 것으로 전해졌다.
대법원 측에서는 또 다른 여성 후보인 박순영 고법판사도 제안했지만 양측은 끝내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대법관 제청이 지연되면서 여권 일각에서는 조 대법원장에 대한 탄핵 주장까지 제기됐다.
협의가 평행선을 달리자 법원행정처는 기존 후보 추천 절차를 사실상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방안까지 검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처장은 지난주 초 노 전 대법관 후임 후보 4명에게 직접 연락해 기존 추천을 물리고 후보 추천 절차를 새로 진행하는 방안에 대한 의견을 물었지만 일부 후보가 반대하면서 성사되지 않았다.
결국 조 대법원장은 일주일여 뒤 손 부장판사를 대법관 후보자로 서면 제청했다. 통상적인 대통령과의 면담 없이 서면으로 후보자를 제청한 것이다.
노 처장은 서면 제청 배경에 대해 "마지막까지 협의를 했다"면서도 "두 분이 만날, 합의할 기회를 (청와대에서) 주시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마지막 남은 방법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노 처장은 또 법사위에서 대법원이 대면 제청을 거부한 것인지 묻는 질문에 "저희가 거부한 적은 없다"고 답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서면 제청을 협의의 결과로 볼 수 없다며 사실상 일방적인 통보라고 비판했다. 청와대 역시 사전 조율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대법원장과 별도로 만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법원행정처가 손 부장판사를 최종 후보로 정했다는 사실을 청와대에 알린 시점은 제청 당일인 18일 오전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법원행정처는 이날 오전 민정수석실에 손 부장판사를 제청하겠다는 뜻을 전달한 뒤 오후 3시께 서면 제청했고, 약 한 시간 뒤 이를 언론에 공개했다.
그동안 청와대와의 협의 과정에서는 추천된 후보 4명을 두고 의견을 주고받았지만 손 부장판사를 최종 제청하겠다는 방침은 당일에야 전달된 셈이다.
청와대 내부에서는 이번 제청 과정을 두고 불편한 기류가 있는 것으로 전해지지만 이틀째 공식적인 입장은 내놓지 않고 있다. 조 대법원장 역시 관련 사안에 대한 언급을 삼가고 있다.
이번 인선을 둘러싼 갈등의 배경에는 정부·여당과 사법부 사이에 누적된 긴장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해 5월 이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 이후 여권이 사법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사법부가 잇따라 우려를 표명하면서 양측의 긴장이 이어져 왔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명 정부 첫 대법관 인선까지 맞물리며 후보자를 둘러싼 입장차가 끝내 좁혀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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