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배터리, '적자(赤字)'를 지나 '적자(適者)'로 [기자수첩-산업]

정진주 기자 (correctpearl@dailian.co.kr)

입력 2026.08.04 07:00  수정 2026.08.04 07:00

삼성SDI·SK온 배터리 사업 7개 분기 만에 흑자…LG엔솔은 3개 분기 만

전기차 편중·낮은 가동률에 손실 누적…ESS·AI 데이터센터로 활로

보조금·보상금 없는 수익성은 과제…달라진 시장의 '적자' 증명해야

SK온이 '인터배터리 2026' 전시관에서 주요 배터리 기술과 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데일리안 정진주 기자

과거 손으로 장부를 쓰던 시절, 숫자에는 색이 있었다. 이익은 검은 잉크로, 손실은 붉은 잉크로 적었다. '흑자(黑字)'와 '적자(赤字)'라는 말에도 이런 회계 관행이 남아 있다.


전기차 캐즘이 길어지면서 K배터리 3사의 장부에는 차례로 붉은 글씨가 새겨졌다.


삼성SDI는 2024년 4분기부터 올해 1분기까지 6개 분기 연속 영업손실을 냈다. 지난해에만 1조7224억원의 적자가 쌓였고 올해 1분기에도 1556억원의 손실을 추가했다. SK온 배터리 사업도 2024년 3분기 출범 후 첫 분기 흑자를 냈지만 바로 다음 분기 적자로 돌아섰다. 이후 올해 1분기까지 6개 분기 연속 손실을 이어갔고 1분기 영업손실은 3492억원이었다.


상대적으로 실적을 방어해온 LG에너지솔루션도 지난해 4분기부터 2개 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올해 1분기 영업손실은 2078억원으로 미국 생산세액공제를 받고도 적자를 피하지 못했다.


이렇듯 K배터리 3사가 나란히 손실을 낸 것은 전기차 판매가 예상보다 느리게 늘면서 완성차업체들이 배터리 주문과 생산계획을 줄인 탓이 컸다. 수요 확대를 전제로 북미와 유럽에 먼저 세운 공장은 가동률이 떨어지자 감가상각비와 고정비를 키우는 부담이 됐다.


반복된 적자(赤字)는 K배터리에 일종의 '주홍글씨'가 됐다. 기술력과 성장성을 향했던 기대는 전기차 편중과 과잉 투자에 대한 의심으로 바뀌었다.


그랬던 세 회사가 올해 2분기 나란히 흑자로 돌아섰다. 삼성SDI와 SK온은 7개 분기 만에, LG에너지솔루션은 2개 분기 연속 적자를 끝내고 3개 분기 만에 흑자를 냈다.


물론 한 분기 흑자로 본업이 완전히 회복됐다고 보기는 이르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 2410억원을 제외하면 1277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SK온의 8218억원 영업이익에도 고객사 보상금 등 일회성 요인이 크게 반영됐다.


그럼에도 이번 반전은 장부의 색깔이 바뀐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적자에는 또 다른 한자가 있다. 적자생존에서 말하는 적자(適者)는 가장 크거나 강한 존재가 아니라 주어진 환경에 가장 알맞은 존재다. 어제의 강점이 오늘의 부담이 되는 순간 살아가는 방식을 바꿀 수 있는지가 생존을 가른다.


K배터리의 성공 공식은 오랫동안 분명했다. 에너지밀도가 높은 하이니켈 삼원계 배터리로 주행거리를 늘리고 해외 공장을 먼저 지어 완성차업체의 주문을 선점하는 방식이었다. 전기차가 계속 팔린다는 전제 위에서는 흠잡을 데 없는 전략이었다.


문제는 그 전제가 흔들렸다는 데 있다. 제품과 고객, 생산시설이 전기차 한 곳에 몰린 구조에서는 주문이 줄자 가동률과 수익성이 동시에 무너졌다. 캐즘은 K배터리가 못해서 온 위기가 아니었다. 가장 잘하던 것이 더는 시장 전체를 설명하지 못하게 되면서 시작된 위기였다.


세 회사는 전기차 주문이 예전처럼 돌아오기만을 기다리지 않았다. LG에너지솔루션은 전기차 생산라인 일부를 에너지저장장치(ESS)용으로 돌리고 리튬인산철(LFP)과 미드니켈, 원통형으로 제품군을 넓혔다. 삼성SDI는 ESS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용 무정전전원장치(UPS)·배터리백업유닛(BBU) 등 고수익 제품 판매를 늘렸다. SK온도 기존 전기차 생산 기반을 활용해 북미 ESS 시장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중국 업체의 무기로만 여겨지던 LFP를 스스로 받아들인 것도 달라진 대목이다.


한 시장이 흔들렸을 때 다른 고객을 찾고 제품을 바꾸고 이미 지은 공장의 쓰임을 다시 설계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들이 가장 잘 만드는 배터리를 시장에 설득하던 산업에서 시장이 필요로 하는 배터리를 찾아 공급하는 산업으로 변하고 있다.


위기가 기업을 저절로 강하게 만들지도 않는다. 그러나 호황이 계속됐다면 K배터리가 전기차 밖의 고객과 제품을 지금처럼 절박하게 찾았을지는 의문이다. 적자는 수주와 증설을 곧 성장으로 여기던 산업에 가동률과 현금창출력, 사업 다변화의 중요성을 가르쳤다.


소설 '주홍글씨'에서 사람들은 끝내 주인공 헤스터 프린의 가슴에 달린 'A'를 처음과 같은 뜻으로 읽지 않았다. 간통의 낙인이던 글자(Adultery)는 헤스터가 살아온 방식에 따라 유능함을 뜻하는 'Able'로 읽혔다.


이제 적자(赤字)의 고리를 끊어낸 K배터리가 이제 증명해야 할 것은 하나다. 달라진 시장에서 살아남을 적자(適者)가 됐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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