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치니의 오페라를 재해석해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 이하 딤프)의 상징이 된 자체 제작 뮤지컬 ‘투란도트’가 완전히 다른 옷을 입고 돌아왔다. 19일 대구 무대에 오른 이번 시즌은 2019년 7번째 시즌 이후 7년 만의 재공연이자, 과거 동유럽 슬로바키아로 수출했던 라이선스 버전을 역으로 국내에 들여온 유턴 공연이다. 이번 무대는 단순한 재연을 넘어 K-뮤지컬이 나아가야 할 ‘글로벌 로컬라이징’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DIMF
작품은 가상 바다 세계인 ‘오카케오마레’를 배경으로 한다. 어머니의 원한으로 인해 얼음처럼 차갑게 굳어버린 공주 투란도트와 그녀의 사랑을 얻기 위해 목숨을 걸고 세 가지 수수께끼에 도전하는 칼라프 왕자, 그리고 칼라프를 향한 지고지순한 희생적 사랑을 보여주는 시녀 류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미 한국을 넘어 중국 5개 도시 대극장 진출과 동유럽 라이선스 수출이라는 성과를 냈지만, 이번 시즌은 기존의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 등 서구권 주류 시장 진입을 목표로 전면적인 변화를 줬다. 기존 중국 등 아시아권에서 사랑받는 요소였던 짙은 오리엔탈리즘과 동양적 색채를 과감히 걷어내고, 전 세계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글로벌 모던’을 채택한 점이 이번 시즌의 핵심 변화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변화는 무대다. 기존의 화려한 오리엔탈리즘 색채와 가상 바다 세계의 장식적 요소가 과감히 걷혔다. 헝가리 출신 연출가 로버트 알폴디가 설계한 무대는 의도적으로 비워진 공간을 지향한다. 현대적이고 심플하게 정돈된 공간은 화려한 볼거리 대신 인물들의 외로움과 고독이라는 본질적 정서에 주목하게 만든다.
이러한 미니멀리즘은 배우들의 연기 밀도를 높이는 결과로 이어진다. 칼라프 역의 이건명은 빈 무대 위에서 캐릭터의 깊은 내면을 안정적으로 이끌어냈고, 10년 만에 돌아온 투란도트 역의 리사 역시 차갑게 얼어붙은 공주의 방어기제와 고독을 시각화했다. 무대의 장치에 기대지 않고 배우의 표현력으로 공간을 채우는 연출은 극의 몰입도를 높였다. 류 역의 김보경은 특유의 희생적 서사를 과장 없이 소화하며 극의 감정적 정점을 찍었다.
여기에 슬로바키아 라이선스 버전에서 가져온 독특한 연출이 더해져 극의 분위기를 환기하는 재미를 더한다. 극의 웃음을 책임지는 4대신(핑·팡·퐁·팽)은 특유의 코믹함을 유지하면서도 기괴한 광대 비주얼을 입었고, 앙상블 역시 좀비를 연상케 하는 그로테스크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이들은 주연 배우들이 잡은 묵직한 긴장감을 풀어주며 확실한 반전 웃음과 풍성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DIMF
세계 시장을 겨냥해 추가 배치된 새로운 넘버 2곡은 기존의 강점이었던 음악적 완성도를 한층 더 끌어올렸다. 투란도트의 심리를 드러내는 선율은 클래식한 음색과 대중적인 뮤지컬 어법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다. 여기에 ‘딤프 뮤지컬스타’ 출신의 신예 배우(김진겸, 양호성)들을 과감히 기용해 역량을 다진 점도 로컬 창작 뮤지컬의 지속 가능성을 보여준 대목이다. 티켓 오픈 첫날 전국 판매량 1위를 기록하고, ‘만원의 행복’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민의 높은 호응을 이끌어낸 점 역시 대중적 기반을 증명한다.
이처럼 탄탄한 지역적 기반 위에서 시도된 ‘투란도트’의 변신은 로컬 콘텐츠가 서구 주류 시장 진입을 위해 어떤 가공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그 실험적 단계를 보여준다. 물론 본격적인 해외 시장 진출의 성패를 논하기는 이르지만, 기존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작품을 지속해서 업그레이드하는 시도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다. 배성혁 딤프 집행위원장은 “오늘의 투란도트는 완성된 작품이 아니”라며 “모던하고 세련되게 탈바꿈한 투란도트지만, 올해를 시작으로 더 업그레이드해서 글로벌 뮤지컬로 거듭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투란도트’는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오는 27일까지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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