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콕 찍은 중국 인민해방군 지원업체들

김규환 기자 (sara0873@dailian.co.kr)

입력 2026.06.14 07:07  수정 2026.06.14 07:07

美, 알리바바·텐센트·비야디 등 中대표기업을 ‘군사기업’에 지정

명단엔 전기차, 반도체, 배터리, 자율주행, 로봇, 바이오 등 총망라

민간기업 형태지만 직·간접 인민해방군 현대화에 첨단 기술 제공

명단 기업, 30일부터 美 정부와 계약갱신 안 돼…내년 6월말 퇴출


피트 헤그세스 미국 전쟁부 장관이 지난해 3월28일 필리핀 마닐라 캠프 아기날도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AFP/연합뉴스

미국이 알리바바·바이두·텐센트, 비야디, 창장·창신메모리 등 중국을 대표하는 빅테크(기술대기업)와 첨단 제조업체들을 ‘인민해방군 지원기업 명단’에 올렸다. 미국이 인공지능(AI)과 자율주행, 휴머노이드 로봇 등 중국이 미국과 치열한 패권 다툼을 벌이는 4차 산업혁명 핵심기술 전반을 군사적 위협으로 간주하고 중국의 기술 생태계 전체를 전략적 경쟁 대상으로 정조준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 전쟁부(국방부)는 국방수권법(NDAA) 1260H조에 따라 중국 최대 e커머스(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阿里巴巴), 중국 최대 인터넷 검색포털 업체 바이두(百度), AI 빅테크 텐센트(Tencent·騰訊), 미 전기자동차 제조사 테슬라의 경쟁 업체인 비야디(比亞迪·BYD), 낸드플래시메모리 제조 업체 창장메모리(長江存儲·YMTC), D램 제조 업체 창신메모리(長鑫存儲·CXMT) 등 미국 내에서 활동하는 중국군과 연계된 188곳을 ‘중국 군사기업’ 명단에 포함시켰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등이 지난 9일 보도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중국 AI를 이끄는 트로이카인 알리바바·바이두·텐센트가 모두 포함됐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중국의 'AI 굴기(崛起)'를 견제하는 차원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미 전쟁부가 작성·관리하는 1260H는 인민해방군을 지원하는 것으로 판단되는 중국의 군사기업 목록을 작성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이다. 이번에 전쟁부 조사를 거쳐 1260H 목록에 오른 곳은 188개 업체다. 이 명단에는 전기자동차·배터리부터 자율주행, 로봇, 바이오까지 중국에서 혁신 산업을 대표하는 업체가 대거 포함됐다. 세계 1위 드론(무인기) 제조업체 다장촹신(大疆創新·DJI 등 130곳이 포함된 지난해 명단과 비교해 대상이 크게 늘어났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7년 3월12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인민해방군 대표들을 만나 ‘군민융합’을 강조하며 군산복합체 설립 구상을 구체화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 중국 중앙TV(CCTV) 캡처

미 전쟁부는 “중국군이 ‘민간 기관으로 보이는 중국 기업’과 대학, 연구기관에서 개발한 첨단기술 및 전문지식을 습득하려고 한다”며 군사기업 지정 배경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이들 기업이 전차나 탄도미사일을 만드는 전통적인 방위산업 업체는 아니지만 중국 정부가 주도하는 군민(軍民) 융합전략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는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철저히 민간기업 형태를 띠고 있지만 실제로는 중국 국무원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國資委·SASAC)나 공업정보화부(MIIT) 등 주요 국가기관과 직간접적으로 연계돼 첨단 기술을 군현대화에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 미 전쟁부의 판단이다. 중국 전문가 크레이그 싱글턴 미 방위민주주의재단(FDD) 선임연구원은 “워싱턴은 더 이상 이들 기업을 고립된 회사로 취급하지 않는다”며 “기술 스택(웹 또는 모바일 앱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프로그래밍 언어, 프레임워크, 도구 및 기술의 조합) 전체를 전략적 경쟁 대상으로 다루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 전쟁부는 개별 기술이 중국군 지휘체계나 감시, 무인화에 어떻게 쓰일 수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봤다. 알리바바와 바이두는 단순 온라인쇼핑몰이나 검색엔진을 넘어 클라우드와 AI, 대규모 데이터 처리 인프라를 보유했다는 점이 지정 근거가 됐다. 미국은 이 플랫폼이 군사지휘와 정보처리, 무인무기 모델개발에 전용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비야디 역시 전투 차량과 드론, 야전 전력망 등에 광범위하게 쓰일 수 있는 배터리와 전동화 플랫폼 기술이 표적이 된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4월 말 중국 베이징국제모터쇼에서 비야디(BYD) 부스에서 관람객들로 붐비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휴머노이드 로봇기업 유니트리(Unitree Robotics·宇樹科技) 등 일부 기업은 중국 정부가 첨단기술 강소(强小)기업을 집중 육성하기 위해 지정한 '작은 거인' 정책의 수혜를 받았다는 사실 자체를 군민융합 기여의 결정적 증거로 적시했다. 이는 미국 기업뿐 아니라 전 세계 공급망 전반에 강한 연쇄작용을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전쟁부 지정 명단은 '안보 위험 기업'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까닭이다.


이런 만큼 미국 내 다른 연방정부 기관은 물론 우방국 공공조달 시장, 대규모 인프라 사업으로까지 배제기준이 확산할 가능성이 크다. 알리바바와 바이두에 대해선 "공업정보화부(MIIT)와 연계된 중국 방위산업 기반에 대한 군민(軍民)융합 기여자"이며, 비야디에 대해선 “국무원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SASAC)와 직·간접적으로 연계돼 있고 공업정보화부와도 간접적으로 연계된 군민융합 기여자”라고 강조했다. 창장·창신메모리는 국자위가 간접적으로 소유한 데다 공업정보화부·국방과학기술공업국(SASTIND)과도 간접적으로 연계돼 있다는 이유가 명시됐다.


이번 명단엔 글로벌 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업체인 우시앱텍(药明康德·wuxi AppTec)을 비롯해 중국 최대 유전체 기업 화다지인(華大基因·BGI), 유니트리, 자동차 기업들에 AI 기반 자율주행 기술을 제공하는, 자율주행 라이다(레이저를 이용해 주변환경을 인식하는 센서) 업체 로보센스(RoboSense·速騰聚創) 등도 포함됐다. 우시앱텍은 신약 후보물질 발굴부터 임상시험 지원, 의약품 생산까지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중국의 대표 바이오 위탁 연구·개발(R&D) 업체다.


지난해 7월18일 제3회 중국국제공급망박람회(CISCE)가 열린 중국 베이징 중국국제전람센터(CIEC)에서 한 관람객이 알리바바 부스 앞을 지나가고 있다. ⓒ AP/연합뉴스

2024년 일라이릴리의 비만 치료제 ‘젭바운드’에 사용되는 핵심 활성성분 상당부분을 생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업체가 중국 군사기업으로 지정된 것은 미 제약사들의 신약 R&D와 의약품생산 공급망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지난해 생물보안법이 미 의회를 통과함에 따라 중국 군사기업으로 지정된 바이오 기업과의 거래가 제한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 군사기업’ 명단에 오른다고 해서 당장 기업 자산이 동결되거나 미국 수출이 전면 금지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달 30일부터 명단에 오른 기업들은 전쟁부와 직접 조달계약을 맺거나 갱신할 수 없다. 내년 6월30일부터는 제3자를 거쳐 이들 기업 부품이나 서비스가 포함된 최종 제품을 구매하는 것조차 전면 금지된다. 더욱이 '제3자 조달금지' 조항은 중국 기업들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전쟁부는 세계 최대 단일 구매자다. 내년 6월부터 미 방산·항공·통신기업은 물론 전쟁부와 거래하는 한국 등 전 세계 모든 기업은 자사 납품망에서 명단에 있는 중국 기업 기술과 부품을 완전히 걷어내야 한다.


이 때문에 미 방산·통신·항공 조달망에 제품을 납품하는 기업들은 30일부터 자사 조달망 내에 해당 기업제품이 포함돼 있는지 여부를 전면적으로 재조사해야 한다. 예컨대 전쟁부에 납품하는 군용차량이나 장비에 비야디 배터리, 알리바바 클라우드 서비스, 로보센스 라이다 센서, 텐센트 통신모듈이 섞여 있다면 입찰 자체가 원천 차단된다. 미 로펌 와일리레인은 “곧 발효할 2025 회계연도 국방수권법 제851조에 따라 전쟁부는 1260H 명단에 오른 기업을 위해 로비하는 단체와 계약을 맺는 협력사와도 계약 체결을 전면 금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자료: 미국 전쟁부

중국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린젠(林劍)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9일 정례브리핑을 통해 “중국 기업을 부당하게 억압한다”며 “중국은 기업의 합법적인 권리와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목청을 돋웠다. 기업들도 잇따라 항변했다. 알리바바는 “중국 군사기업이 아니며 어떤 군민융합 전략에도 관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고, 바이두는 자사를 군사기업으로 지정한 것이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우시앱텍은 “명단 포함은 명백한 실수”라며 “잘못된 결정을 바로잡고자 즉각적인 조치에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 정부의 이번 조치는 지난달 14일 베이징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간 정상회담에서 미·중관계 안정화에 협력하기로 합의한지 한달여 만에 단행됐다. 전쟁부는 앞서 지난 2월 창장메모리 등 일부 핵심 반도체 기업을 제외한 채 유사 명단을 관보에 게재했다가 특별한 설명없이 곧바로 철회한 전력이 있다.


중국 유니트리의 휴머노이드 로봇 G1이 지난 8일 영국 런던의 한 행사에 전시돼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당시 양국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을 과도하게 자극하지 않기 위한 행정부 차원 결정이라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싱글턴 연구원은 "전쟁부가 중국 군사기업 명단을 다시 공개한 것은 정상회담 이후 현실을 일깨워주는 신호“라며 ”시 주석과 트럼프 대통령 간의 정상회담은 경쟁을 멈춘 것이 아니라 경쟁이 계속될 영역을 명확히 했을 뿐“이라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지난 1월 “비야디 같은 중국 자동차 제조업체가 미국에 공장들을 짓고 미국인 근로자들을 고용한다면 환영할 것”이라며 중국 기업에 다소 유연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지만, 무역갈등 진화 등 정상회담 화해무드가 지나자 미국은 다시 기술 패권을 겨냥한 전방위 압박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두 정상 간 만남에도 기술안보 주도권을 둘러싼 본질적인 갈등 구조와 미국의 대중국 강경견제 기조에는 변함이 없다는 방증으로 분석된다.




글/김규환 국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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