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 달구는 AI 반도체戰…젠슨 황 입에 쏠린 K메모리 전략

임채현 기자 (hyun0796@dailian.co.kr)

입력 2026.06.01 09:54  수정 2026.06.01 10:17

2일 타이베이서 컴퓨텍스 개막…1일 젠슨 황 기조연설

차세대 AI 가속기 로드맵 따라 HBM 수요 전망 갈려

삼성 HBM4E·SK하이닉스 공급망 주도권 경쟁 본격화

젠슨 황 CEO가 지난 2025년 5월 21일(현지시간) 대만 타이베이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에서 글로벌 미디어를 대상으로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임채현 기자

아시아 최대 정보기술(IT) 전시회 컴퓨텍스가 인공지능(AI) 반도체 공급망의 다음 판을 가늠할 무대로 떠오르고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차세대 AI 가속기와 서버 플랫폼 로드맵을 공개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K메모리 업계의 시선도 대만 타이베이로 향하고 있다.


1일 업계에 따르면 컴퓨텍스 2026은 오는 2일부터 5일까지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다. 올해 주제는 'AI 투게더'다. 본행사 개막에 앞서 이날 황 CEO는 GTC 타이베이 기조연설에 나선다. 과거 PC와 부품 중심 전시회였던 컴퓨텍스는 이제 AI 가속기, 고대역폭메모리(HBM), 서버, 로보틱스, 피지컬 AI까지 아우르는 글로벌 AI 공급망 행사로 변모하고 있다.


이번 행사에서 황 CEO의 발언이 주목되는 이유는 명확하다. 엔비디아가 차세대 AI 가속기와 서버 플랫폼 로드맵을 어떻게 제시하느냐에 따라 AI 반도체 공급망의 다음 투자 방향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엔비디아의 신형 칩이 더 높은 메모리 용량과 대역폭을 요구할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HBM 전략에도 직접적인 영향이 불가피하다


업계가 가장 먼저 보는 것은 차세대 AI 플랫폼이다. 황 CEO는 앞서 지난 3월 미국에서 열린 GTC 2026에서 엔비디아가 단순 그래픽처리장치(GPU) 기업을 넘어 AI 에이전트와 로보틱스 등 인프라를 설계하는 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대만 현지 취재진에게는 "아직 공개하지 않은 놀라운 신제품이 있다"는 취지로 언급해 이번 컴퓨텍스에서 신형 AI 칩이나 플랫폼 관련 발표가 나올 가능성도 거론된다.


황 CEO가 블랙웰 이후 세대인 '베라 루빈' 등 차세대 플랫폼을 구체화할지도 관전 포인트다. AI 모델이 커지고 추론 수요가 늘어날수록 서버 한 대에 들어가는 메모리 용량과 대역폭은 계속 확대된다. 엔비디아의 차세대 플랫폼이 더 높은 사양의 메모리를 요구할 경우 HBM4와 HBM4E 등 차세대 제품을 둘러싼 메모리 업체 간 공급 경쟁도 한층 빨라질 전망이다.


HBM은 이미 AI 반도체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부품으로 자리 잡았다. GPU 연산 성능이 높아져도 데이터를 빠르게 공급할 메모리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전체 시스템 성능이 제한된다. 결국 엔비디아가 어떤 AI 가속기와 랙 단위 서버 전략을 제시하느냐가 메모리 기업의 제품 개발과 공급 전략을 좌우하는 기준점이 되는 셈이다.


ⓒ임채현 기자

삼성전자는 최근 세계 최초로 HBM4E 12단 샘플을 글로벌 고객사에 공급하며 차세대 HBM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전자는 메모리뿐 아니라 파운드리와 첨단 패키징 역량까지 함께 내세우고 있다. HBM4E에는 1c D램과 4나노 로직 다이가 적용됐다. 삼성전자로서는 HBM 성능 경쟁과 함께 메모리·파운드리·패키징을 묶은 공급 역량을 강조할 수 있는 구간이다. 이에 회사는 이번 컴퓨텍스에서 부스를 꾸리고 메모리와 파운드리 역량을 앞세워 글로벌 고객사 공략에 나선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와의 기존 HBM 공급 관계를 기반으로 주도권 굳히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올해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직접 대만을 찾는다는 점에서 무게감이 달라졌다. 지난해에는 국내 기업들이 주로 실무·임원급 중심으로 컴퓨텍스에 대응했다면, 올해는 그룹 총수와 주요 경영진까지 움직이며 엔비디아를 중심으로 한 AI 반도체 공급망 경쟁에 더 깊숙이 들어가는 모습이다.


최 회장은 이번 컴퓨텍스 기간 황 CEO와 회동할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 입장에서는 HBM 공급 확대뿐 아니라 TSMC와의 협력까지 포함한 글로벌 AI 반도체 공급망 내 입지를 재확인할 기회다. AI 가속기 시장에서 엔비디아가 사실상 플랫폼 주도권을 쥐고 있는 만큼, HBM 공급사인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대만 무대 존재감도 한층 커졌다.


관전 포인트는 메모리에만 그치지 않는다. 올해 컴퓨텍스에서는 피지컬 AI와 로보틱스도 주요 화두로 꼽힌다. AI가 데이터센터 안의 연산을 넘어 공장, 물류, 자동차, 로봇으로 확산되면서 엔비디아의 생태계는 제조업 전반으로 넓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 기업은 HBM 공급처이자 피지컬 AI 적용 수요처로 동시에 주목받을 수 있다.


현대차는 자율주행과 로보틱스, LG전자는 로봇·전장·데이터센터 냉각, 네이버는 AI 서비스와 클라우드 영역에서 엔비디아 생태계와 접점을 넓힐 수 있는 기업으로 꼽힌다. 엔비디아가 한국 기업과의 스킨십을 늘리는 것도 메모리 공급망뿐 아니라 제조·모빌리티·AI 서비스까지 엮인 협력 가능성 때문으로 풀이된다.


컴퓨텍스의 무대가 대만이라는 점도 상징적이다. 대만은 TSMC를 중심으로 파운드리, 첨단 패키징, 서버 제조 생태계를 갖추고 있다. 한국이 HBM 등 메모리에서 강점을 갖고 있다면, 대만은 AI 칩 제조와 서버 공급망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다. 올해 타이베이 무대는 한국과 대만의 반도체 생태계가 엔비디아 AI 로드맵 안에서 어떻게 맞물리는지를 보여주는 자리가 될 전망이다.


한편 컴퓨텍스 개막 전부터 엔비디아와 국내 기업 간 접점도 넓어지고 있다. 엔비디아는 1일 오후 타이베이 현지에서 '코리안 파트너 나잇' 만찬을 열고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차그룹, LG전자, 두산, 네이버 등 국내 주요 기업 관계자들과 만난다. 업계에서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전영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 김유원 네이버클라우드 대표 등이 황 CEO와 회동할 것으로 보고 있다.


최 회장은 이날 오전 황 CEO의 기조연설을 들은 뒤 별도 회동을 갖고, 웨이저자 TSMC 회장과도 만나 GPU·메모리·파운드리로 이어지는 AI 반도체 공급망 협력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황 CEO는 컴퓨텍스 이후 한국을 찾아 최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과 추가 회동할 것으로 전해져, 엔비디아와 한국 기업 간 AI 동맹은 더 촘촘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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