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사라져버린 고대도시
1,700년 후 인류 앞에 다시 등장한 유적지
불과 몇 세기 전까지만 해도 역사가들은 폼페이를 그저 흥미로운 전설 속의 도시 정도로만 여겨왔다. 하지만 예술가들은 그것의 사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폼페이를,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 도시의 ‘극적인 운명’을 사랑했다.
1834년에 간행된 <폼페이 최후의 날>을 비롯한 숱한 소설들과 영화, 드라마가 폼페이를 소재로 다뤘다. 세월이 흘러도 끊임없이 소재로 등장할 수 있다는 것은 이 도시가 주는 예술적 영감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치와 향락이 극에 달했던 화려한 도시가 화산 폭발로 하루아침에 멸망해 버렸다고 생각해보라.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극적이건만, 이 도시는 천년이 훨씬 지난 후 갑자기 세상에 나타났다. 그것도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로 말이다.
폼페이는 원래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만 연안에 있던 고대도시였다. 지금은 내륙이 됐지만 당시에는 베수비오 화산의 남동쪽에 있는 사르누스강 하구에 있는 항구도시였다.
교통의 요충지이면서 비옥한 토지를 가지고 있던 폼페이는 농업과 상업의 중심지로 번창했고, 전성기였던 제정(帝政)로마 초기에는 귀족들의 휴양지로도 명성을 날렸다. 인구는 2~5만 명에 이르렀는데, 이는 고대 도시로서는 상당한 규모였다.
그러나 이 풍요롭고 아름다운 도시의 운명은 단 하루 만에 비극으로 바뀌게 된다.
AD 79년 8월, 폼페이 근처의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했다. 사실 화산이 폭발하기 며칠 전부터 땅이 흔들리는 등 뭔가 심상치 않은 조짐이 보였다. 그러나 폼페이 사람들은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결국 그들은 베수비오 화산에서 거대한 버섯모양의 구름이 솟아올랐을 때에야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렸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화산재와 용암이 솟구쳐 올랐고 시커먼 유황 연기가 하늘을 뒤덮었다.
불과 몇 시간 만에 전체 인구 2만 명 중 2천 명이 사망했다. 폭발의 파괴력이 얼마나 컸던지 베수비오 산의 높이는 단 하루만에 400미터나 낮아졌다고 한다.
분화가 멈춘 것은 그로부터 사흘이 지나서부터. 그러나 폼페이는 2~3미터 두께의 화산재와 용암 아래 파묻혀 도시 전체가 완전히 사라져 버렸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점점 잊혀져갔다.
전설로만 여겨졌던 폼페이가 인류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로부터 약 1,700년 정도 흐른 17세기 중반 무렵이었다.
발굴 현장의 모습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겨줬다. 반쯤 구워진 빵, 화덕에 막 넣으려고 했던 새끼돼지, 탁자 위에 놓인 동전, 심지어 두루마리 종이까지 옛 모습 그대로 굳어 있어 당시의 화산 폭발이 얼마나 갑작스러웠는지를 짐작케 했다.
하지만 가장 충격적인 것은 바로 화산재와 용암으로 뒤덮여 그대로 굳어버린 폼페이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아기를 끌어안은 여인, 보석을 꽉 움켜준 채 돌 더미에 깔려 있는 사람, 무엇인가를 붙잡기 위해 손을 내미는 사람, 한 집안에 빙 둘러앉아 있던 사람들, 그리고 뜨거운 수증기와 유독가스로부터 얼굴을 보호하려는 듯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는 사람까지.
폼페이 최후의 순간을 그대로 붙잡아 놓은 것 같은 이들의 생생한 모습은 보는 사람마저 참담하게 만들 정도였다.
전성기에 갑자기 멸망한 탓에 폼페이 유적지에는 당시 로마인들의 흔적이 비교적 잘 남아있다.
반듯하게 포장된 도로, 정교하게 설계된 하수도, 크고 작은 신전들, 중심 방의 사면이 복도로 둘러싸인 거대한 바실리카, 원형경기장, 대형 시장, 극장, 공중목욕탕과 개인 목욕탕, 귀족들의 호화스러운 저택 등은 수준 높은 건축술을, 그리고 섬세한 조각품과 다양한 양식의 벽화 등은 당시 사람들의 화려했던 문화와 예술 수준을 보여준다.
현대의 도시들과 비교해 보아도 전혀 손색이 없을 만큼 각종 문화시설 및 편의시설을 갖춘 폼페이는 현재까지 약 80%정도 발굴ㆍ복원된 상태다. 물론 많은 건물들이 훼손되거나 파괴되었지만, 남아있는 잔재만으로도 전성기 때의 화려한 모습을 추측하기란 어렵지 않다.
옛날 사람들은 폼페이의 멸망 이유가 바로 신의 분노 때문이라고 했다. 쾌락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들에게 화가 난 신이 베수비오 화산을 폭발시켜 도시 전체를 화산재로 덮어버렸다는 것이다.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폼페이는 역사적 교훈으로 남았다. 그리고 사치와 향락이 지배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중요한 사실을 일깨워준다. 아무리 발달된 기술과 문명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엄청난 자연재해 앞에서 인간은 여전한 무기력한 존재일 뿐이라는 것을. [데일리안 = 주유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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