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공시 추진 속 ‘구멍’…중소기업 유예에 데이터 신뢰도 저하 우려

손지연 기자 (nidana@dailian.co.kr)

입력 2026.05.02 08:00  수정 2026.05.02 08:00

추정치 의존 구조 고착 시 “탄소 감축 유인 약화” 지적

산업별 인프라 구축·인센티브 설계로 실측 데이터 확보 필요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지난 2월 25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20층 챔버 라운지에서 개최한 생산적금융 대전환 네 번째 회의에서 관계부처와 유관기관, 경제단체 및 이해관계자, 전문가들이 모여 우리 경제와 기업의 녹색 전환(Green Transformation, GX)을 위한 다양한 과제들을 논의했다. ⓒ금융위원회

한국이 2028년부터 ESG 의무 공시를 단계적으로 도입하기로 하고 제도화를 추진 중인 가운데, 중소 협력사에 대한 공시 유예·제외 조치가 공급망 데이터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탄소 감축 유인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2일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ESG 공시 제도화 과정에서 중소 협력사에 대한 유예·제외 조치가 포함되면서, 대기업 연결 기준 공시 데이터의 신뢰도가 저하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현재 연결 기준 온실가스 배출량을 공시하는 기업은 1% 수준에 그치고 있으며, 협력사 데이터 부재로 인해 상당 부분이 추정치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연구원은 특히 중소기업이 데이터를 제출하지 않아도 대기업이 산업 평균 추정치로 공시할 수 있는 구조가 고착될 경우, 탄소 감축이나 데이터 관리에 대한 유인이 약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2028년부터 자산 30조원 이상 상장사를 시작으로 ESG 공시를 의무화하고, Scope3(공급망 배출량)에 대해서는 3년의 추가 유예를 부여할 계획이다.


일부 중소기업은 공시 대상에서 제외하는 등 부담 완화 조치도 병행하고 있다. 또한 범정부 차원의 온실가스 산정·추정 인프라를 고도화하고 금융권 공통 플랫폼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LCI(Life Cycle Inventory)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산업공급망 탄소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해 표준 배출계수와 산정 가이드를 제공하고, 한국신용정보원의 ‘금융배출량 플랫폼’을 통해 중소기업의 매출액·업종 특성을 반영한 추정치를 금융권과 대기업에 제공하겠다는 구상이다.


제도 초기에는 중소기업 부담 완화를 위해 합리적 추정치에 대한 책임을 일부 면제해 자발적 공시를 유도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 같은 완화 조치로 인해 데이터 신뢰도가 저하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나아가 이러한 보완책이 오히려 구조적 한계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중소기업 보호를 이유로 데이터 미제출이 거래 종료 사유로 활용되지 못할 경우, 대기업이 탄소 경쟁력이 높은 협력사로 공급망을 재편하는 데 제약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실제 감축 성과가 뛰어난 기업의 실측 데이터보다 산업 평균치가 활용되는 구조가 자리 잡으면, 친환경 투자에 대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는 ‘역선택’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연구원은 산업별 특성을 반영한 데이터 인프라 구축과 인센티브 체계 정비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중소기업이 저비용으로 정확한 실측 데이터를 생산할 수 있도록 업종별 맞춤형 산정 기준과 도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에는 삼불화질소(NF3) 등 특수가스 배출계수를 제공하고, 조선·건설업처럼 하청 구조가 복잡한 산업에는 이를 반영한 간소화된 산정 체계를 도입하는 방식이다.


석유화학 업종에는 원자재별 표준 데이터 제공 등 차별화된 지원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또 대기업이 3~5년의 유예기간 동안 협력사에 ESG 교육과 기술 지원을 제공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고 봤다.


이를 충실히 이행한 경우에는 개선 의지가 낮은 고배출 협력사를 교체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지원 주체인 대기업의 비용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협력사에 대한 ESG 교육·컨설팅·설비 지원 비용을 연구·인력개발비 세액공제나 상생협력기금 출연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아울러 실측 데이터를 제출하는 중소기업에 탄소 등급을 부여하고 이를 녹색금융과 연계해 자발적 공시 유인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연구원은 “유예기간이 단순히 공시를 미루는 시간이 아니라, 공급망 전반의 탄소 경쟁력을 강화하는 준비 기간으로 활용돼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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