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최초 통일왕국 ‘란상’ 수도
도시 전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에서 메콩 강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다보면 란상 왕국의 흔적을 머금고 있는 루앙프라방이 나타난다.
한때는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가장 강력한 왕국 중 하나였던 란상의 수도이자 ´위대한 황금불상´의 도시인 이곳은 1995년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라오스 제일의 관광도시다. 그러나 유명 관광지 특유의 북적거림을 기대하고 찾아온 여행자들은 수수하고 고요한 도시의 분위기에 적잖이 당황하게 된다.
라오스는 중국 남부에서 이주해 온 라오족의 나라다. 13세기 초까지 루앙프라방, 비엔티안, 참파싹 등 세 개의 왕국으로 나뉘어 성장하던 라오스는 전설적인 왕 파굼(Fa Ngum, 파응움이라고도 함)의 등장으로 그 역사가 바뀌게 된다.
1316년 루앙프라방에서 태어난 파굼은 그의 아버지가 저지른 잘못으로 인해 가족들과 함께 인도차이나의 최강국 크메르 제국으로 도망쳤다. 크메르 왕궁에서 자란 파굼은 이후 크메르의 공주와 결혼까지 하게 된다.
크메르 군대의 지원을 받은 파굼은 1350년 경 메콩 강 중류에 있었던 라오족의 왕국들을 차례로 멸망시켰고, 1353년 란상 왕국을 세워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란상´은 ´백만 마리의 코끼리´ 라는 뜻이었다.
´무옹스와´에 수도를 정하고 란상 왕국을 통치하던 파굼은 크메르 제국이 쇠약해지는 틈을 타서 자신의 왕국을 크메르로부터 독립시켰다. 이때부터 란상은 라오스 역사상 최초의 통일 왕국으로서 그 유구한 역사를 이어나가게 되었다.
왕국의 수도이자 정치, 경제, 문화, 종교의 중심지였던 ´무옹스와´는 몇 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그 이름이 바뀌게 되는데, 그 배경에는 실론에서 만들어진 황금불상이 있었다.
´프라방´이라 불리는 이 불상이 정확히 언제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가 없다. 다만 1356년 실론에서 무옹스와로 옮겨졌고, 이때부터 프라방은 왕국의 수호불(守護佛)로 여겨지게 되었다. 이와 함께 수도의 이름도 무옹스와에서 ´위대한 황금불상´이라는 뜻을 지닌 ´루앙프라방´으로 변경됐다.
화려한 불교문화가 꽃피었던 도시답게 루앙프라방은 수십 여 개의 사원으로 뒤덮여 있다. 이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사원은 메콩 강과 칸 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한 왓 시엥통(Wat Xieng Thong)이다.
루앙프라방은 물론 라오스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사원 중 하나로 손꼽히는 이곳은 아래로 흘러내릴 것만 같은 지붕과 붉은 벽을 수놓은 섬세한 모자이크가 대단히 인상적이다. 1559년에 만들어져 1975년까지 왕실의 후원을 받으며 유지된 왓 시엥통은 루앙프라방의 모든 사원 중에서 가장 많은 승려들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루앙프라방에 현존하는 사원 중 가장 오래된 왓 위순나랏(Wat Wisunnarat) 역시 흥미로운 사원 중 하나다. 원래는 1513년에 지어졌지만 지금 있는 본당은 1896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재건한 것이다.
본당 맞은편에는 부처님의 유골 중 일부가 들어있는 반구형의 불탑이 있다. 불탑의 원래 이름은 ´탓 파툼(연꽃탑)´이지만, 윗부분이 수박같이 생겼다고 해서 ´탓 막모(수박탑)´라고도 부른다.
왕궁박물관은 원래 라오스 왕조의 마지막 왕이었던 ´시사왕웡´과 그의 가족들이 살던 왕궁이었다. 유럽과 라오스 양식이 혼합된 이 왕궁은 이후 라오스 왕조가 무너지고 공산정권이 들어오면서 1975년 박물관으로 개조됐다.
박물관 내부는 왕궁이었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소박하지만, 전시되어 있는 왕가의 유품과 희귀 불상, 각종 예술품 등은 볼만한 가치가 있다. 하지만 박물관에서 가장 귀한 대접을 받는 것은 역시 실론에서 건너온 황금불상이다.
아직까지는 박물관 안에 보관되어 있지만, 이 신성한 불상은 머지않아 자신만의 보금자리인 ´호파방(Ho Pha Bang)´으로 옮겨질 예정이다. 왕궁박물관 입구 오른쪽에 위치한 이곳은 불상을 안치하기 위한 사원인데, 아직 공사가 완료되지 않은 상태다.
왕궁박물관을 나오면 맞은편에 푸시(Phu Si) 산으로 오르는 길이 있다. 꼭대기까지 가려면 300개가 넘는 계단을 올라가야 하지만, 황금빛 탑이 세워져 있는 정상에서는 루앙프라방의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계단을 오르는 수고를 감수한다.
인도차이나 반도 전역에 불고 있는 현대화ㆍ세계화의 열풍이 언제까지 이곳을 비껴갈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변화를 미덕으로 여기는 시대에서도 꿋꿋이 옛 모습을 지켜나가는 이 작은 도시의 고집과 자부심은, 그 열풍에 쉽게 굴복하지 않으리라는 기대감을 주기엔 충분하다. [데일리안 = 주유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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