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공서열은 옛말…4대 그룹 인사에 드러난 'AI 시대 생존 전략'

고수정 기자 (ko0726@dailian.co.kr)

입력 2025.12.19 13:17  수정 2025.12.19 14:01

삼성·SK·현대차·LG 국내 4대 그룹 임원 인사 마무리

불확실성 커진 경영 환경…기술 인재·40대 전면 배치

(왼쪽부터) 삼성전자 서초사옥, SK 서린빌딩, 현대자동차 양재사옥, LG 트윈타워 전경 ⓒ뉴시스

현대자동차그룹을 끝으로 삼성·SK·현대차·LG 등 국내 4대 그룹의 올해 임원 인사가 모두 마무리됐다. 올해 인사는 단순한 조직 개편을 넘어, 글로벌 경영 환경 변화와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한 산업 대전환에 대한 재계의 위기의식과 전략적 방향성이 고스란히 반영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공통 키워드는 '기술 인재 전면 배치'와 '40대 리더 중심의 세대교체'다.


19일 재계에 따르면, 이번 인사가 주목받는 배경에는 경영 환경의 불확실성 확대가 자리하고 있다. 고금리·고환율 기조가 장기화되는 가운데 미·중 기술 패권 경쟁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 AI를 중심으로 한 산업 구조 변화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과거처럼 사업 경험 위주의 안정형 인사로는 급변하는 환경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4대 그룹 전반에 깔려있다는 분석이다.


삼성전자는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미래기술 연구 조직인 SAIT(옛 삼성종합기술원) 원장(사장)에 나노과학·분자전자과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박홍근 하버드대 교수를 선임한 것이 대표적이다. 단기 성과보다 중장기 기술 경쟁력을 중시하겠다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가전·스마트폰 사업을 담당하는 디바이스경험(DX) 부문 최고기술책임자(CTO)와 AI·로봇·반도체 기술 전략의 콘트롤타워인 삼성리서치장에 '기술통' 윤장현 사장을 발탁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AI, 소프트웨어, 차세대 반도체 등 핵심 기술에서 주도권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가 인사에 그대로 반영됐다는 평가다.


현대차그룹 역시 AI·소프트웨어중심차(SDV)·로봇 등 미래 기술 경쟁력 강화를 위한 인재를 전면에 배치했다. 만프레드 하러 현대차그룹 연구개발(R&D) 본부장과 정준철 현대차·기아 제조부문장이 사장으로 승진했다.


특히 하러 사장은 포르쉐 전기차 타이칸 개발과 애플의 자율주행차(애플카) 프로젝트를 총괄한 인물로, 소프트웨어를 비롯한 유관 부문과의 적극적인 협업으로 SDV 전환을 앞당기는 데 주력할 예정이다. SDV와 자율주행 등의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기술 리더십 없이는 생존이 어렵다는 위기의식이 이번 인사의 배경으로 꼽힌다.


LG그룹 역시 기술 중심 인사 기조를 분명히 했다. LG전자는 최고경영자(CEO)를 정통 엔지니어 출신인 류재철 CEO로 교체하며 미래 사업 전환에 속도를 냈다. LG화학 역시 연구개발과 기술 이해도가 높은 김동춘 사장을 전면에 내세웠다. 기술 경쟁력이 곧 실적과 직결되는 산업 구조로 재편되면서 '기술을 아는 CEO'가 필요하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세대교체 흐름 뚜렷…젊은 임원층 대폭 확대


세대교체 흐름도 뚜렷하다. 삼성전자는 이번 부사장 승진자 가운데 40대가 11명에 달하며 젊은 임원층을 대폭 확대했다. 30대 상무도 2명 배출했다. SK그룹은 신규 임원(85명)의 64%(54명)를 40대로 채우며 세대교체 속도를 한층 끌어올렸다. 1980년대생 임원도 17명에 달했다. 신규 선임 임원의 평균 연령은 만 48.8세로, 지난해 만 49.4세보다 낮아졌다.


현대차그룹 역시 이번 인사를 통해 초임 임원의 평균 연령이 처음으로 40대에 진입했다. 40대 임원 비율은 2020년 24%에서 올해 49%로 두 배 이상 확대됐다. AI와 소프트웨어, 로봇 등 신기술 분야에서 성과를 낸 젊은 인재를 전진 배치해 성장 동력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LG그룹 인사에서 이번에 전무로 승진한 임우형 LG AI연구원 공동연구원장은 40대, 상무로 승진한 조헌혁 LG CNS 클라우드데이터센터사업담당은 30대다.


재계에서는 이를 두고 단순한 연령 하향이 아니라, 빠른 의사결정과 실행력을 갖춘 리더십이 절실해졌다는 판단이 반영된 결과로 보고 있다. 연공서열 중심의 안정형 인사에서 벗어나, 기술 이해도와 현장 경험을 겸비한 젊은 리더에게 권한을 이양하는 흐름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평가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이번 4대 그룹 임원 인사는 단순한 세대교체나 조직 정비 차원이 아니라, AI와 소프트웨어를 중심으로 한 산업 질서 변화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며 "기술을 이해하고 현장을 아는 젊은 리더에게 권한을 맡겨 의사결정 속도와 실행력을 동시에 높이겠다는 공감대가 주요 그룹 전반에 형성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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