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굴제국 황제의 사랑과 건축을 향한 광기
22년간 천문학적인 비용 투입한 인도 최대건축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을 만들도록 하라!
왕의 명령을 받은 페르시아 출신의 건축가 우스타드 아마드 라호리는 곧 설계에 착수했다.
그의 설계도가 완성되자 인도는 물론 이탈리아, 프랑스, 터키, 페르시아 등 여러 나라의 건축가와 기술자들이 무굴제국의 수도 아그라(Agra)로 모여들었다.
최고의 재료만을 고집했던 왕은 인도 전역을 뒤져 가장 질 좋은 대리석과 사암을 가져왔고, 건물의 장식에 필요한 청금석, 홍옥수, 공작석, 터키석 등은 외국에서 수입했다.
엄청난 양의 자재를 운반하기 위해 1,000여 마리의 코끼리가 동원됐고, 공사에 투입된 인부의 수만 2만 명이 넘었다. 4,000만 루피라는 천문학적 비용을 들인 이 대공사는 22년에 걸쳐 진행됐다.
한 여인을 향한 사랑과 건축에 대한 광기에 가까운 열정으로 만들어진 이 무덤은, 훗날 인도를 대표하는 건축물이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중 하나로 손꼽히게 된다.
무굴제국의 제5대 황제 샤 자한에게는 아르주만드 바누 베굼이라는 이름의 왕비가 있었다.
두 번째 왕비였던 그녀는 빼어난 미인은 아니었지만, 대단히 총명하고 지혜로웠던 탓에 ´뭄타즈 마할(선택받은 궁전)´로 불리며 샤 자한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다. 그러나 39살이 되던 해, 왕의 14번째 아이를 낳던 도중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하룻밤 만에 머리가 하얗게 샐 정도로 충격을 받은 샤 자한은 죽은 왕비를 위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을 짓기로 결심했다. 국가재정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과 국민들의 고통으로 만들어진 무덤은 왕비를 기리는 의미에서 ´뭄타즈 마할´로 불렀다.
그러나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인해 ´타지마할(궁전의 왕관, 혹은 왕관 궁전)´로 와전됐고, 오늘날까지 이 이름으로만 전해진다.
인도 내 모든 유적지 중에서 가장 비싼 입장료를 자랑하는 타지마할 부지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하얀 대리석 건물 외에도 이슬람 사원, 회당, 무굴양식의 정원 등이 있다. 붉은색 사암으로 만들어진 이 부대시설들은 뽀얀 우유빛깔의 타지마할과 오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코란의 경구가 새겨진 정문을 통과하면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수로를 중심으로 좌우대칭 형태를 갖춘 정원이 나온다. 이 정원의 끝에는 완벽한 균형미와 섬세한 곡선미로 수많은 사람들을 매료시킨 타지마할이 서 있다. 그 실루엣만으로도 감탄이 터져 나오려는 순간, 새하얀 표면은 빛의 각도에 따라 다양한 빛깔을 선보이는 색채의 마술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타지마할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멀리서는 볼 수 없었던 아름다운 문양들이 눈에 들어온다. 마치 물감으로 그림을 그려 넣은 것 같은 이 문양은 피에트라 두라(Pietra Dura) 기법으로 만든 것인데, 이것은 대리석에 각종 문양을 판 뒤 그 홈에 각각 다른 색의 돌이나 준보석을 박아서 만드는 방법을 말한다.
영묘 안으로 들어가면 중앙에 두 개의 석관이 안치되어 있는 단순한 형태의 공간이 나온다. 그러나 알록달록한 돌과 반짝이는 보석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석관에는 아무것도 없다. 샤 자한과 뭄타즈 마할은 본관 아래층, 즉 지하에 있는 묘실에 고이 잠들어 있다.
왕비가 없는 아그라에 머무르는 것이 싫었기 때문일까? 타지마할이 완성된 후, 샤 자한은 별안간 제국의 수도를 옮기기로 결심하더니 델리에 샤하자하나바드라는 도시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타지마할을 비롯해 레드포트(Red Fort - 무굴제국의 최전성기에 지어진 거대한 성), 자마 마스지드(Jama Masjid - 인도 최대 규모의 모스크) 등을 짓느라 국고가 거의 바닥을 보인 상황이었으나 샤 자한은 멈출 줄을 몰랐다. 이는 쿠데타의 빌미를 제공하게 됐고, 결국 셋째 아들 아우랑제브가 아버지를 밀어내고 왕위에 올랐다.
무굴제국 제6대 황제로 등극한 아우랑제브는 타지마할에서 2킬로미터 떨어진 아그라포트(Agra Fort)에 아버지를 감금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우랑제브는 샤 자한이 그토록 사랑했던 뭄타즈 마할이 낳아준 아들이었다.
아그라 포트에 갇힌 채 타지마할을 바라보며 쓸쓸한 노년을 보내던 샤 자한은 연금된 지 8년 만인 74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시신은 생전의 소원대로 타지마할에 있는 뭄타즈 마할 옆에 안치됐다.
스스로를 건축가라고 불렀을 만큼 건물 짓기에 열을 올렸던 샤 자한을 몰락시킨 것은 결국 건축에 대한 과도한 열정이었다. 타지마할 역시 왕비를 애도하기 위해 만든 무덤이라고는 하지만 그의 행적을 보면 분명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던 것 같다.
무덤이 완성되자 왕이 이보다 더 아름다운 건물을 짓지 못하도록 공사에 참여한 사람들의 손을 모조리 잘라 버렸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까지 퍼졌던 걸 보면, 분명 그의 열정은 광기에 가까웠다. 어쩌면 그의 영혼을 지배했던 것은 뭄타즈 마할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건축에 대한 집착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가 진실에 가깝다 할지라도 타지마할을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분명 한 여자를 향한 한 남자의 끝없는 사랑일 것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려하는 인간의 본성이 변하지 않는 한, 타지마할은 광기의 산물이 아닌 사랑의 결정체로만 남을 것이다. 지금까지 늘 그래왔듯이 말이다. [데일리안 = 주유정 객원기자]
어느 날 흘러내린 눈물은
영원히 마르지 않을 것이며,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더 맑고
투명하게 빛나리라.
그것이 타지마할이라네.
오 황제여,
그대는 타지마할의 아름다움으로
시간에 마술을 걸려했다네.
그대는 경이로운 화환을 짜서
우아하지 않은 주검을
사망을 전혀 모르는 우아함으로
덮어버렸네.
무덤은 자기 속으로
파묻고 뿌리내리며,
먼지로부터 일어나 기억의 외투로
죽음을 부드럽게 덮어주려 한다네.
-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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