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 불과 재', 익숙한 이야기·압도적인 판도라 [볼 만해?]

전지원 기자 (jiwonline@dailian.co.kr)

입력 2025.12.17 08:29  수정 2025.12.17 08:33

아바타 1·2편을 한 번도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3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은 꽤 부담스러운 선택일 것이다. 파란 나비족이 나오는 3D 블록버스터' 정도로만 알고 있다면, 상영시간을 보고 '이걸 언제 다 보나'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런데 막상 보고 나면 입문자에게도 의외로 잘 버텨지는, 기승전결이 또렷한 탄탄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만큼은 인정하게 될 것이다. 다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새롭다기보다 '영토를 침범하는 자와 지켜내려는 원주민의 싸움'이라는 아주 익숙한 서사다. 이미 전 시리즈에서 반복돼온 구조기에 압도적인 비주얼에 비해 내용은 조금 평면적으로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아바타: 불과 재'는 제이크(샘 워딩턴 분)와 네이티리(조 샐다나)의 첫째 아들 네테이얌(제이미 플래터스 분)의 죽음 이후 슬픔에 빠진 설리 가족 앞에 바랑이 이끄는 재의 부족이 등장하며 불과 재로 뒤덮인 판도라에서 펼쳐지는 위기를 담은 '아바타'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이다.


줄거리를 요약하면 사실 단순하다. 인간과 손잡은 또 다른 나비족이 판도라의 새로운 영토를 차지하려 하고 이를 막으려는 원주민들이 맞서는, '개척자 vs 인디언' 구도의 SF 판타지 버전이다. 최근 개봉한 '주토피아 2' 역시 '기득권과 이방인, 기존 사회의 영토를 지키려는 자와 위협하는 자'의 갈등을 전면에 내세운 바 있어 메시지 자체는 분명 의미 있지만 어딘가 반복해서 보고 있는 듯한 기시감이 든다.


그럼에도 '아바타: 불과 재'를 극장에서 볼 이유는 역시 판도라의 구현에 있다. 기존 나비족이 살던 곳 외에도 재의 부족 서식지는 화산재가 내려앉은 숲, 붉게 물든 하늘과 검게 그을린 대지, 재 속에서 살아가는 나비족의 촉감까지 화면을 가득 채운다. '바람 상인'들이 타고 다니는 비행 생물, 하늘을 가르는 거대한 선박의 디자인 등도 '이 정도면 3D 안경을 쓴 보람은 있다'고 할 만한 스케일을 선사한다.


다만 시력이 좋지 않아 평소 안경을 쓰고 다니는 관객이라면 그 위에 또 극장용 3D 안경을 포개 쓰고 3시간 가까이를 버텨야 한다. 실제로 상영이 끝난 뒤 극장을 나가며 '렌즈 끼고 올 걸, 머리 아파 죽겠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릴 정도로 피로감이 크다. 3D가 '아바타' 시리즈의 정체성이라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2025년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이 방식만을 고집하는 게 과연 최선인지 의문이다.


캐릭터를 놓고 보면 재의 부족과 바랑 쪽은 충분히 짜증 날 만큼 얄미운 악역으로 구현된다. 이들은 시종일관 공격적이고 오만한 태도로 설리 가족을 몰아붙이는데 보는 내내 속이 부글부글 끓을 정도로 감정이 잘 전달된다. 그런 의미에서 감독의 의도가 제대로 먹힌 셈이다.


문제는 설리 가족과 주변 인물들 쪽이다. 제이크는 분명 매력적이고 가장으로서의 책임과 전사로서의 리더십을 모두 보여주는 캐릭터지만, 그를 제외한 여러 인물들의 행동은 이해하기 어렵다. 대표적으로 스파이더라 불리는 마일스 소코로(잭 챔피언 분)는 판도라의 공기를 마시기 위해 항상 마스크가 필요한 인간이지만, 정작 중요한 순간마다 마스크를 제대로 챙기지 않아 위험에 빠진다. 물론 나중에 이 설정이 다른 방향으로 쓰이긴 하지만 그 지점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도대체 왜 저러지'라는 답답함이 먼저 든다. 스파이더를 태워줬다가 봉변을 당하는 바람 상인들도 마찬가지다. 주인공을 제외한 거의 모든 인물들이 2010년대 히어로물에서 보던 것처럼, 스토리를 굴리기 위해 다소 무리한 선택을 반복하는 인상이다.


감정선 역시 동화책 같은 기승전결이다. 나쁜 자들이 등장해 마을을 위협하고 그에 맞서 싸우는 용감한 가족, 그리고 거대한 전투. 설리 가족의 상실과 죄책감, 분노가 중간중간 강조되지만 서사의 큰 프레임이 워낙 익숙한 탓에 눈물이 날 만큼 와닿기보다 거대한 스케일의 동화책을 3D로 펼쳐 보는 느낌에 가깝다. 애니메이션 '주토피아 2'보다 더 유치한 감정선을 보인다.


이미 아바타 1·2편을 사랑해 온 팬이라면 상당히 만족스러운 시퀄일 가능성이 크다. 판도라의 세계는 더 넓어졌고 새로운 부족과 크리처, 전례 없는 규모의 전투 장면이 끊임없이 쏟아진다. 그러나 판타지·블록버스터에 큰 관심이 없고 신선한 이야기를 기대한다면 아쉬울 수 있다. 그럼에도 최근의 영화들에 아쉬움을 느낀 사람들이라면 한번쯤은 극장에 가서 압도적인 스펙터클을 확인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러닝타임 197분, 12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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