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 3천피트 상공, 남한산성 비색 드러내다

최진연 기자 (cnnphoto@naver.com)

입력 2009.05.13 17:51  수정

<최진연의 우리 터 우리 혼>울창한 숲속에 용 꿈틀대듯 성벽이어져

천혜의 요새...역사와 자연이 어우러진 생태계의 보고 ´생생´

지난 10일 오후.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중인 남한산성 상공. 고도 3000피트에서 내려다 본 남한산성은 연초록이 짙게 깔려 봄이 절정에 와있음을 실감했다.

경기도청. 국방부와 경기소방재난본부(항공대장 이세형)협조로 데일리안 기자가 단독 탑승한 헬기는 남산한성 전체면적 36.45㎢를 둘러보았다.

남문 상공에서 본 남한산성 전경

조종사 이상민 기장은 "엷은 안개가 끼어있어 시계가 좋지 않습니다. 맑은 날이면 한강과 서울 남산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오늘은 기상이 좋지 않아 아쉽다"며 "기상조건이 좋은 가을에 다시 항공사진과 동영상으로 취재해. 선조들이 왜 지형적으로 남한산성을 택했는지 생생하게 국민들께 보여줄 의무가 있다"고 했다.

한강의 물줄기를 따라 동쪽으로는 양평지역. 서쪽은 멀리 개성까지 조망권에 들어온다. 한수(漢水)를 차지하는 세력이 곧 한반도를 점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한산성이 바로 그런 곳이다.

하늘에서 본 남한산성은 수어장대를 병풍삼아 좌우로 산등성이가 흘러내렸다. 성남에서 올라오는 남문은 답사객들의 왕래가 가장 많은 곳이며.서문에서는 강남지역과 한강. 북한산이 손에 잡힐듯 조망된다. 하남지역으로 통하는 북문은 이제 한적한 곳이 됐지만 고려때 그 계곡은 아비규환의 살육장이었다.

적의 공격이 쉬운 지형에는 옹성을 축조해 어느 한곳도 성벽을 넘을 수 없는 철옹성이다. 산성내 모든 물길이 모여 흐르는 동문만 계곡이 뚫여 있어 남한산성은 1300년동안 이 땅을 지켜온 천혜의 요새였다.

북한산성과 더불어 서울을 수호했던 국방유적 남한산성은 세월이 흘러 이제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둘러쌓인 자연생태계의 보고가 됐다.

동문 상공에서 본 남한산성 전경

주봉인 청량산을 중심으로 북쪽으로 연주봉. 동쪽은 망월봉과 벌봉. 남쪽으로는 몇 개의 봉우리가 병풍처럼 연결되어 있다. 그 봉우리를 타고 넘으며 거대한 용이 꿈틀거리듯 성벽이 원성과 외성을 감싸며 약 12km나 이어졌다.

성곽 시설물로는 5개의 옹성과 4대문, 산성수비의 사령부였던 수어장대를 비롯한 4개의 장대가 있었으나 현존하는 것은 수어장대 뿐이다. 그 아래에는 산성축조의 공로자를 기리기 위한 청량당이 있다. 성안에는 유사시를 대비해 왕과 신하들이 거처할 행궁 70여 동을 지었다. 그리고 비상시에 이용하던 16개의 암문. 원성남쪽 신남성에는 2개의 돈대를 축조했다.

서울에서 동남쪽 약 24km 떨어진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에 있는 남한산성은 외부에서는 산성 내부를 볼 수 없는 분지형태를 이루고 있다.

길게 늘어선 연주봉 옹성

천 수백년동안 남한산성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
한강유역을 둘러싼 3국간의 쟁탈전이 있을 때 삼국통일은 한 신라는 이곳에서 북방전진기지로 성을 축조했다. 성 이름은 산이 높아 낮이 길다고 주장성(晝長城)이라 불렀다. 672년의 일이다. 약 8km나 되는 신라 최대규모의 석축산성이었다.

고려는 남한산성에서 몽고군을 격퇴했다. 남한산성 전투의 승리는 용인 처인성의 승리로 이어졌고. 조선은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가 침공하자 인조를 비롯한 군신들이 이곳 남한산성에 들어와 45일 동안 청 군대와 맞서 싸웠다.

성벽 뒤로 수어장대가 보인다

그러나 인조는 자신이 열정을 다해 쌓은 남한산성에서 나와 청 태종에게 항복하는 굴욕을 당했다. 하지만 산성은 함락당하지 않았다.

조선후기까지 남한산성은 1000여 가구에 4000여명의 인구를 자랑했다. 1917년 성내에 있던 광주군청이 밖으로 이전하면서 화려했던 군사, 행정도시는 급격히 쇠락해 갔다.

장경사 옹성과 성벽이 보인다.

그 후 남한산성 일대는 1971년 도립공원으로 지정했고. 현재까지 보수를 하고 있다. 앞으로 경기도는 행궁복원을 모두 끝내고.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남한산성은 수도권 역사 산행코스로 가장 인기가 있다. 정해진 산행 길 말고도 아름다운 길이 10곳이 넘는다. 쉬엄쉬엄 가도 5시간은 산행해야 한다. 높은 지형에 울창한 산림을 따라 남문에서 동문으로 이어지는 성벽이 축성당시 원형으로 남아있다.

최초로 공개된 신남성 서돈대 전경

동문과 벌봉으로 이어지는 성벽 주위는 가을단풍이 뛰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겨울설경에 흠뻑 빠지고 싶으면 서문에서 수어장대로 가는 성벽길이 단연코 으뜸이다. 8월 중순 남한산성 서문에서 내려다보는 한강의 일몰은 환상적이다.

조유전 남한산성운영위원회 위원장은 "남한산성을 치욕의 역사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한 번도 점령당하지 않은 숭고한 땅" 이며. "산성을 지키고 보존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고 했다.


이세형 항공대장과 이상민 기장

남한산성은 예사롭지 않다. 고색 짙은 암문과 옹성을 지나면서 성벽 하나하나가 역사의 매듭이요. 선조들의 숨결이 절절이 배어 있다. [데일리안 경기 = 최진연 기자(cnnpho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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