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방에 찾아온 자객', 불안한 청춘을 겨눈 경쟁의 칼날 [D:쇼트 시네마(134)]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5.10.01 09:08  수정 2025.10.01 09:59

최병권 감독 연출

OTT를 통해 상업영화 뿐 아니라 독립, 단편작들을 과거보다 수월하게 만날 수 있는 무대가 생겼습니다. 그중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부터 사회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메시지까지 짧고 굵게 존재감을 발휘하는 50분 이하의 영화들을 찾아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곰팡이가 벽을 뒤덮은 반지하에서 대기업 최종 면접을 준비하는 재민(장인섭 분). 그는 이번에만 합격하면 이 집을 새 세입자에게 떠넘기고 탈출하겠다는 마음으로 벽지와 가구로 곰팡이를 가리며 버틴다.


면접 당일 아침, 집을 보러 왔다는 서린(배은우 분)이 찾아오고 재민은 시간이 없다며 거절한다. 그러나 서린은 "10분이면 된다"며 억지로 들어와 이곳저곳을 살핀다.


면접을 보러 갈 생각에 들뜬 재민은 아직 결과도 나오지 않았는데 처음 본 서린에게 자신이 이미 합격했다고 거짓말을 한다. 이어 2년째 취업준비생이라는 서린에게 훈수를 두고 스펙 자랑을 늘어놓는다.


사실 서린은 재민과 같은 회사 최종 면접에 오른 경쟁자다.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 서린은 서린은 칼을 숨기고 재민을 해치기 위해 이곳에 왔다. 재민은 우연히 서린이 떨어뜨린 가방에서 같은 회사 로고가 찍힌 볼펜을 보고 자신과 같은 최종면접자라는 걸 알게 된다.


칼을 들고 덤비는 탓에 방 안에 갇힌 재민은 어학연수를 다녀왔다, 자격증을 땄다, 화려한 수상 경력까지 있다고 떠벌린 것이 모두 포장된 것이었음을 털어놓는다. 어학연수는 워킹홀리데이를 떠나 6개월 동안 사탕수수를 캤던 것이고, 자격증은 군대에서 딴 굴삭기 자격증이며, 반짝이는 수상 경력은 동네 PC방에서 열린 피파 월드컵 대회 득점왕이었다.


하지만 서린은 재민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끝내 칼을 자신의 몸에 겨누며 모든 것을 포기하려 한다. 재민은 필사적으로 그를 붙잡으며 자신 또한 서린과 다르지 않은 처지임을 깨닫고, 경쟁자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 그에게 깊은 공감과 연대를 느낀다.


그 순간 서린 역시 벽지가 들뜨며 드러난 곰팡이를 마주한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속은 이미 썩어 있던 방의 실체를 바라보며, 자신이 저지르려던 행위의 무의미함을 깨닫고 서서히 손에 쥔 칼을 내려놓는다. 결국 두 사람은 서로의 진짜 모습을 마주한 채 집을 뛰쳐나와 면접장으로 함께 달려간다.


'푸른 방에 찾아온 자객'은 서스펜스의 틀을 빌려 경쟁 사회의 허상과 불안을 날카롭게 풍자했다. 겉으로 깨끗해 보이게 포장했지만 실상은 썩어 있던 방은 재민의 허세, 그리고 경쟁으로 가득 찬 취업 시장의 허상을 공간으로 은유한다.


곰팡이를 덮은 벽지처럼 화려하게 포장된 스펙은 결국 벗겨지고, 남는 것은 가난과 불안, 그리고 한 사람만 살아남아야 하는 경쟁뿐인 현실이 안타깝지만, 영화는 절망으로 마침표를 찍지 않는다.


마지막에 함께 달려가는 두 인물의 모습은 서로를 향한 작은 연대와 희망을 보여주며 우리 시대 청년들을 씁쓸하지만 따뜻한 시선으로 비춘다. 러닝타임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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