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어는 운전석에 앉아야만 체감…법원이 외면한 조현범의 손 끝 경영
"개인적 치부와 다른 사안"…"법인차 운용은 R&D 위한 경영상 목적"
기업인 과잉 처벌, 기업을 대하는 상식 밖 기준 떨쳐내야
"이봐, 해봤어?"
어떨때는 최고경영자(CEO)의 이 짧은 물음 하나가 기업의 모든 논쟁을 멈추게 한다. 경험해 보지 않은 주장은 언제나 공허하기 때문이다. 실제 책상 앞에서 스펙과 그래프만 보아서는 결코 알 수 없는 세계가 있다.
한국 대표 경영인의 최고 어록이 문득 떠오른 건 지난 22일 열린 조현범 한국앤컴퍼니그룹 회장의 항소심 소식을 접하고서다. 조 회장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1심은 조 회장의 혐의 가운데 개인적으로 사용할 포르쉐 타이칸, 911 타르가, 테슬라 모델X등을 회사 명의로 구입·리스한 것을 유죄로 봤다. 하지만 이날 공판에서 조 회장 측은 직접 이 차들을 운행한 것은 '연구개발(R&D)방향 테스트'였다는 주장을 설득력있게 제시했다.
이날 변호인이 제시한 회의록 등에 따르면 조 회장은 10여년 전부터 이미 전기차·슈퍼카 OE(신차용 타이어) 전략을 지속적으로 주문하며 포르쉐·페라리·람보르기니·테슬라 등 하이엔드(최고급)·최첨단 브랜드와의 협력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조 회장이 해당 차량을 직접 타 본 뒤 경영전략회의에서 "전기차 하중 증가에 따른 타이어 기술적 차별성이 절실하다", "무게중심에 따른 오버스티어(Over steer·운전자가 의도한 것보다 차량이 더 많이 회전) 문제와 앞·뒤 타이어 컴파운드 차별 개발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공개됐다.
변호인의 주장대로 국내 타이어사들 중 가장 먼저 프리미엄 시장을 뚫기 위해 연구개발을 시작한 게 한국타이어다. 조 회장은 CEO로 선임되고 부터 람보르기니를 비롯한 고성능 슈퍼카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며 프랑스의 미쉐린, 일본의 브리지스톤, 독일의 콘티넨탈 등 전통의 자동차 강국 회사들이 움켜쥐고 있는 프리미엄 완성차 타이어 공급에 공을 들였다.
조 회장이 포르쉐나 테슬라를 직접 몰며 얻은 감각을 단순한 '호화 취미'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타이어 산업은 숫자와 그래프만으로는 결코 설명되지 않는다. 보고서 위의 '마찰 계수'와 '내구성 지표'는 현실의 노면을 다 담지 못한다. 코너에서의 하중 변화, 젖은 노면에서의 불안정함은 오직 운전석에 앉아야만 체감된다. 시뮬레이션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감각, 드라이버가 직접 타이어를 느끼며 엔지니어에게 피드백을 주어야 비로소 제품이 완성된다.
특히 CEO가 직접 차를 운전하고 전략회의에서 경험을 공유하는 것은 단순히 테스트 자료를 만드는 것보다 장기 비전과 경영 목표를 조직 전체에 전달하는 효과가 있다.
그래서 조 회장의 운전 경험은 사적 취미가 아니라 '전략회의 → 연구개발팀 지침 → 제품 개발 방향 결정'으로 이어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한국타이어가 이룬 3년 연속 역대 최대 실적, 전기차 전용 타이어 아이온(iON)의 유럽·국내 시장 출시, 포르쉐 992 GT3 모델 OE 승인, 글로벌 매출 85~90% 달성, 세계 타이어 기업 순위 6위는 이에 대한 결과라 할 수 있다.
1심 재판부가 슈퍼카라는 프레임에 빠져 조 회장이 타이어 회사의 CEO라는 본질을 놓친 것은 아닌지. CEO의 손끝과 몸으로 느낀 데이터가 산업 성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은 아닌지.
대기업 회장이라고 봐줘서도 안 되지만 과잉처벌도 곤란하다. 조 회장을 둘러싼 재판·수사가 상식선에서 이뤄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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