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과 연민 오가는 열연, ‘은중과 상연’으로 만개한 박지현 [D:PICK]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5.09.28 14:01  수정 2025.09.28 14:01

차가운 야망가에서 투박한 형사로, 그리고 마침내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친구의 얼굴로. 배우 박지현이 넷플릭스 시리즈 ‘은중과 상연’을 통해 또 한 번의 놀라운 변신을 선보이며 “가히 인생 캐릭터를 만났다”는 찬사를 받고 있다. 그동안 세련되고 도시적인 이미지로 각인되었던 그가 가장 현실적이고 복합적인 인물 ‘천상연’을 통해 자신의 연기 스펙트럼이 얼마나 넓은지를 스스로 증명해 보였다.


박지현은 극중 천상연 역을 맡아 30년에 걸친 인물의 서사를 섬세하고 입체적으로 그려내며 대중과 평단의 찬사를 한 몸에 받는 중이다. 그의 이번 성공은 갑작스러운 도약이 아닌, 차근차근 쌓아 올린 필모그래피와 연기 내공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천상연은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내면의 결핍과 상처를 지닌 인물이다. 가장 가까운 친구 은중(김고은 분)을 동경하고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질투하고 미워하는 복잡한 감정선을 가진다. 박지현은 10대부터 죽음을 앞둔 40대까지, 한 인물이 겪는 시간의 흐름과 감정의 파고를 설득력 있게 표현했다.


특히 모든 것을 가졌지만 공허한 눈빛과 위태로운 분위기, 친구 앞에서 무너지는 순간의 처절함까지 완벽하게 소화하며 시청자들을 극에 몰입시켰다. 40대엔 시한부 판정을 받은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 실제로 3주간 단식을 감행하는 등 그의 깊은 고민과 노력은 천상연이라는 인물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사실 상연은 시청자에게 쉬이 이해받기 어려운 캐릭터다. 오랜 시간 절교했던 친구에게 불쑥 나타나 삶의 마지막을 함께 해달라 부탁하고, 때로는 이기적인 모습으로 은중의 삶을 흔든다. 자칫 평면적인 악역이나 민폐 캐릭터로 전락할 수 있었던 상연에게 입체적인 생명력을 불어넣은 것은 온전히 박지현의 몫이었다.


그는 선망과 질투, 애정과 미움이 뒤섞인 상연의 복잡한 내면을 흔들리는 눈빛과 미세한 표정 변화, 그리고 시간의 흐름을 담아낸 목소리 톤으로 섬세하게 그려냈다. 시청자들은 그의 연기를 통해 상연을 마냥 미워할 수만은 없는, 깊은 상처와 결핍을 지닌 한 인간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은중과 상연’의 성공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박지현은 2017년 드라마 ‘왕은 사랑한다’로 데뷔한 이후 꾸준히 자신의 영역을 넓혀왔다. 2018년 공포 영화 ‘곤지암’에서 인상 깊은 연기로 대중에게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고, 이후 ‘친애하는 판사님께’ ‘신입사관 구해령’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유미의 세포들’ 등 다양한 작품에서 안정적인 연기력을 선보였다.


그의 이름과 얼굴을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각인시킨 작품은 2022년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이다. 순양가의 맏며느리 모현민을 통해 보여준 도회적이고 지적인 이미지, 정확한 딕션과 차가운 카리스마는 박지현이라는 배우의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냈다. 이 작품을 통해 그는 복합적인 욕망을 가진 캐릭터를 능숙하게 소화할 수 있는 배우임을 증명했다.


이후 2024년 SBS ‘재벌X형사’에서 처음으로 지상파 미니시리즈 주연을 맡아 강력팀장 이강현으로 분해 전작과 180도 다른, 털털하고 열정적인 형사의 모습을 보여주며 넓은 연기 스펙트럼과, 극을 이끌어가는 주연 배우로서의 역량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이번 ‘은중과 상연’에 이르기까지 그의 필모그래피는 한계 없는 도전으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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