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삶인가요?” …2025년 9월 한국 사회가 소환하는 36년 전 어느 동독 주민의 시(詩)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5.09.19 07:30  수정 2025.09.19 07:30

아른슈타트(Arnstadt), 동독 튀링겐주 인구 2만여 명 작은 도시의 1989년 9월은 유난히 따뜻했다. 온도가 30까지 오르는 나른한 일상이었다. 이곳에서 곧 정치적 불길이 피어오르리라고는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다.


귄터 자틀러(Günther Sattler), 25세의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항상 의무 이상의 일을 강요받아 수행했고, 계획 이상으로 달성했다는 정부의 선전과는 달리 생필품 진열대가 비어가는 시간은 빨라만 갔다. 신선한 과일과 채소는 물론이고, 칫솔조차 구하기 힘들었다.


1989년 5월 7일 지방선거가 명백히 위조된 후 촉발된 시위가 동독 전역으로 번져가고, 수만 명의 주민이 헝가리의 국경 개방을 틈타 오스트리아를 거쳐 서독으로 탈출했다.


서독 TV를 통해 1989년 9월 11일 라이프치히에서 벌어진 시위가 경찰의 무자비한 진압과 체포로 끝났다는 소식도 알려졌다. 모스크바의 고르바초프가 추진한다는 개혁·개방의 변화 소리와 동독 수뇌부가 뱉어내는 말 사이의 커다란 차이를 누구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누구도 입을 열지 않는 것이다. 끼리끼리 모이면 불만을 털어놓으나, 공개적으로 밝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귄터의 아버지는 그런 동독 체제를 지탱하는 손발인 ‘인민경찰(Volkspolizei)’이었고, 같은 길을 가길 바라며 귄터를 ‘진압경찰(Bereitschaftspolizei)’로 병역을 마치게 했다.


귄터의 생각은 달랐다. 더 이상 자신 앞에 진정한 삶이 없다고 느꼈다. 이런 상황과 현실에서 왜 아무도 나서지 않을까, 불의에 항거하지 않을까, 의문에 고민을 거듭했다.


귄터는 직접 나서기로 결심했다. 다른 사람의 생각과 반응을 알아보기로 했다.


1989년 9월 17일 귄터는 책상에 앉았다. 이날 이후 아른슈타트의 모든 것이 바뀌었다.


귄터는 빌린 타자기를 치기 시작했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생각과 감정을, 대문자와 소문자, !와 ?를 느끼는 대로 담아 표현했다.


“어떤 삶인가요?(WAS FÜR EIN LEBEN?)”라는 시가 되었다. 시를 넘어 국가를 망가뜨린 사람들로부터 되찾고 싶은, 삶에 대한 선언문이었다.


처음과 끝에 자신의 의견에 동의한다면, 1989년 9월 30일 오후 2시 홀츠마르크트(Holzmarkt: 나무시장)에 모이자는 촉구문을 더해 시위 전단지가 되었다.


글이 다듬어지자 귄터는 눈을 피해 가며 매일 한두 시간씩 3일을 타자기에 매달렸다. 여자 친구가 눈치챘지만, 눈감아 주는 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을지를 번연히 알면서도 공범이 되어 주었다. 마침내 80여 장을 만들었다.


귄터 자틀러가 만든 전단지.ⓒ 사진=TA|Christiane Fischer

지역 최초의 반정부 호소문은 다음과 같다(필자 번역).


<아른슈타트의 모든 시민에게!!!!!>


1989년 9월 30일 오후 2시, 동독 공산당의 제멋대로인 정치에 반대하는 평화 시위에 모두 오십시오!!!

집회 장소 - 홀츠마르크트


어떤 삶인가요?


어떤 삶인가요?

진실이 거짓이 되는 곳,

그릇된 사람이 권력을 행사하는 곳.


어떤 삶인가요?

자유가 사산(死産)되는 곳,

모든 것이 이미 잃어버린 것처럼 보이는 곳.


어떤 삶인가요?

노인들(동독 공산당의 늙은 간부들: 필자 주)이 통치하는 곳,

사람들이 여전히 국경에서 비참하게 죽어가는 곳.


어떤 삶인가요?

두려움이 일상을 지배하는 곳,

끝이 끝이 없는 곳.


어떤 삶인가요?

더 이상 이웃을 믿지 않는 곳,

더 이상 서로에게 의지하지 않는 곳.


어떤 삶인가요?

자신이 자신이 될 수 없는 곳,

너무나 빨리 잊어버리는 곳.


어떤 삶인가요?

꿈이 죽어가는 곳,

물려받을 것이라곤 파편밖에 없는 곳.


어떤 삶인가요?

소수에게만 모든 것이 주어지고,

하찮은 자는 탈출구를 찾지 못하는 곳.


어떤 삶인가요?

사랑이 존재하지 않고,

서서히 얼어죽는 곳.


우리는 어떤 삶을 살고 있나요??

하지만 그래도 살아야 해요, 바로 이곳에서!!


우리는 요구합니다:

표현의 자유

정치적 및 경제적 개혁

모든 곳에 만연한 부실 경제 종식

모든 이에게 여행의 자유


더 이상 겁먹지 마세요?

여러분의 의견을 말하세요!!!!


9월 20일 밤, 떨리는 가슴을 억누르며 귄터는 자전거로 도시의 문과 광고 기둥 등에 전단지를 붙여 나갔다. 아침 순찰대원이 영화관에 붙은 전단지를 발견했다. 발칵 뒤집어져 시는 물론이고 주정부에도 보고되고, 재빠른 제거 작업과 함께 반동분자 색출이 시작되었다. 다행히 그는 잡히지 않았다.


전단지 대부분이 뜯어졌지만, 9월 30일 오후 2시 홀츠마르크트에서 일어난 적 없는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그날은 토요일이었고, 10월 7일 동독 건국 40주년 기념 축제 주간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시장에서는 브라스 밴드 연주, 등불 및 횃불 행렬, 불꽃놀이가 계획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날 홀츠마르크트에는 전혀 다른 상황이 전개되었다. 200~300명의 시민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귄터의 전단지를 직접 읽은 사람은 몇몇에 불과했으나, 모두가 알음알음으로 알고 있었다.


사복을 입고 카메라를 든 ‘무장 기관원’, 제복의 경찰이 이리저리 오가며 눈을 번득였고, 골목에는 진압경찰 2개 소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비밀경찰 ‘슈타지(Stasi)’의 구타와 체포에 대한 두려움은 어디에나 누구에게나 있었고 컸다.


누구도 연설하지 않았고, 현수막도 구호도 없었다. 모인 사람들은 끼리끼리 얘기를 나누거나 단순히 왔다 갔다 했다. 그들은 그들의 존재만으로도 그들의 불만을 보여주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것을 알았다.


모인 무언의 시위대나 감시하는 국가 권력이나 기대했던, 어쩌면 ‘지도자’가 나타나 뭔가를 말할 것이라는 희망은 이뤄지지 않았다.


귄터는 그렇게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홀츠마르크트에 사는 친구 집의 창문 아래로 사람들을 지켜보다가, 나중에는 직접 내려가 그들 속에 섞였지만 듣기만 했다.


귄터는 자신의 의문, 질문에 대한 답을 얻었다. 그의 문제가 그만의 문제가 아님을 깨달았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앞으로 무엇이 어떻게 될 것인지 전혀 불확실했지만, 더 이상 멈출 수 없는 무언가를 자신이 촉발했다고 확신했다.


시위는 외면적으로는 아무런 사고 없이 끝났다. 당국은 상부에 그렇게 보고했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조용히 비밀리에 소용돌이가 이미 만들어졌다. 오가던 사람들 사이에서 한 가지 제안이 나왔고, 즉시 공감되었다. 1주일 후 같은 장소에서 만나야 하고, 모두가 다른 사람을 데려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음 토요일이란 바로 동독 건국 40주년 기념일이었다.


이날 모인 사람들 가운데 서로 잘 알지 못했던 세 사람이 있었는데, 귄터의 시로 의기를 투합하고 결심을 굳혔다. 얼마 전 9월 9/10일 동베를린에서 출범한 동독 최초의 반체제 시민운동단체인 ‘새로운 포럼(Neues Forum)’에 가담하고 아른슈타트에서도 결성하기로 한 것이다.


10월 7일, 건국 40주년 축하 행사가 화려하고 장엄하게 거행되어야 할 아른슈타트의 홀츠마르트크에는 더 많은 사람이 몰려와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경찰의 무차별 폭력이 행사되고 해산당했다.


아른슈타트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소식·소문은 날개를 달았다. 동독 독재체제는 낭떠러지 벼랑 끝으로 치달았다.


1989년 11월 4일 시위를 벌이는 아른슈타트 시민들.ⓒ 사진=TA|Andreas

통한의 베를린 장벽은 11월 9일 붕괴했지만, 아른슈타트 장벽은 귄터의 시로 이미 무너졌다. 그의 행동이 불쏘시개였다.


정상적이라면 귄터의 시, 전단지, 항거가 우리 사회가 아니라 북한 땅에서 일어나도록 기대하면서, 우리가 어떻게 힘이 될 수 있을까에 머리를 맞대야 할 터다.


2025년 9월 우리가 귄터의 시를 곰곰이 들여다보아야 할 통탄할 현실이다.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을 폭력으로 일거에 제압하려 한 전 대통령, 그와의 절연은커녕 공천과 당선에 눈멀어, 국민이 아니라 당내 권력 향배와 지역구 표 계산에 몰두하는 정당, 정치인이다.


49.42%의 득표로 당선된 현 대통령, 52%로 국회 의석의 압도적 다수를 차지한 정당이 행정독재, 입법독재에도 성이 차지 않아 사법독재까지 싹쓸이해 50년 정권을 노린다.


실용주의를 빙자한 기회주의와 내로남불, 탐욕과 반칙과 특권이 판을 친다.


그럼에도 모두 국민을 앞세운다. 현 대통령은 “선거를 통해서든 임명을 통해서든 권력의 원천은 국민”이라며 “마치 권력을 가진 특별한 존재처럼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착각에 빠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천연덕스럽게 사돈 남 말하듯 말한다.


2009년 9월 30일 아른슈타트 의거 20주년을 맞아 귄터는 인터뷰에서 말했다.


“지인들과 당시 현실에 관해 얘기했는데 다들 욕했어요. 그러나 누구도 감히 어떤 식으로든 무엇을 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어요.”


“한 사람만으로는 변화를 만들 수 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어쨌던 나는 이미 그 반대를 증명했으니까요.”


어떤 삶인가요?


여러분의 의견을 말하세요.


김정은이 남쪽을 완전히 지운 북쪽만의 국립박물관을 새로 짓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온다.

글/ 손기웅 한국평화협력연구원장·전 통일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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