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의 언어로 다시 듣는 묵직한 위로, 연극 ‘나의 아저씨’ [D:헬로스테이지]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5.09.19 09:19  수정 2025.09.19 09:19

‘사람의 주는 위로’의 힘은 실로 위대하다. 평범한 인물들이 서로의 존재를 통해 위로받고, 일어서는 모습은 그 자체로 보는 이들에게 ‘힐링’을 안긴다.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가 종영 이후에도 오랫동안 ‘인생드라마’로 대중에게 각인된 이유다. 드라마는 우리가 겪는 삶의 무게를 솔직하게 그려내며 ‘어른의 성장통’에 대한 깊은 공감을 자아낸다.


묵직한 울림을 남겼던 그 이야기는, 이제 무대 위에서 새로운 옷을 입고 관객을 만난다. 지난달 22일 LG아트센터에서 개막한 연극 ‘나의 아저씨’는 어른들에게 상처받고 희망 없이 살아가는 가난한 20대 비정규직 여성 지안과, 하루하루를 버티듯 살아내는 40대 아저씨 박동훈의 고달픈 삶의 무게를 그린다.


16부작에 달하는 방대한 서사를 2시간 남짓의 무대 위로 옮기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과제다. 연극은 박동훈과 이지안의 감정선을 중심으로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드라마의 모든 에피소드를 담아낼 수는 없지만, 핵심적인 사건과 대사를 영리하게 배치해 각 인물이 서로를 통해 어떻게 상처를 치유하고 성장하는지에 집중한다.


작품은 원작의 감동을 그대로 살리면서, 연극적 언어로 압축하면서 관객에게 또 다른 방식의 위로를 건넨다. 힘을 뺀 일상적인 어휘의 대사, 무대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정과 호흡이 드라마와는 차별된 지점이다.


제한된 공간도 오히려 밀도감 있게 느껴진다. 세트의 변화가 전혀 없는 무대지만 소품과 등장인물의 이동만으로 장소를 변화시킨다. 기본적으로 지안과 동훈의 사무실로 사용되고 양쪽 사이드 공간이 동훈과 지안의 집으로, 때로는 술집이 되기도 한다. 2층 관객석과 무대 뒤편까지도 각각 공사장으로, 또 달동네의 오르막길로 알차게 활용되며 연극만이 줄 수 있는 상상력과 미학을 선사한다.


배우들의 호연도 인상적이다. 박동훈 역의 이동하는 드라마 주인공인 고(故) 이선균과 묘하게 겹쳐 보이는 면이 있을 정도로 캐릭터와 잘 어울린다. 중저음의 목소리는 물론이고 지독히 평범하고 성실한 중년 남성의 고단한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팬들의 가장 큰 관심사였을 이지안 역의 김현수는 아이유가 연기했던 독보적인 캐릭터를 극적으로 보여줬다는 평가다. 연극은 2시간 남짓의 짧은 시간 안에 인물의 서사를 설득력 있게 전달해야하는데, 이지안의 상처와 사연에 더 빨리 공감하고 몰입할 수 있도록, 캐릭터의 방어적인 모습과 함께 내면의 여린 모습을 초반부터 더 선명하게 드러내도록 했다.


물론, 드라마의 방대한 서사를 압축하는 과정에서 일부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축소되고, 감정의 흐름이 다소 빠르게 느껴지는 지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드라마 속 후계동 사람들의 따뜻한 연대감이 주는 소소한 재미와 감동을 기대했던 관객이라면 연극의 빠른 호흡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극 ‘나의 아저씨’는 원작이 던졌던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위로의 메시지를 무대 위에 성공적으로 옮겨왔다. “편안함에 이르렀는가”라는 질문을 가슴에 품고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 우리는 다시 한번 내 옆의 ‘사람’을 돌아보게 된다. 공연은 9월 27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 U+스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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