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 4일 취임 후 첫 기자 간담회에서 케이팝의 세계적 인기 이면에 감춰진 국내 공연 인프라의 부족 문제를 정면으로 지적했다. 최 장관은 “1만 석 이상의 실내 공연장이 일본은 34개, 우리는 고작 8개”라며 “4만 석 이상 규모의 돔 경기장 역시 일본은 5개, 우리는 0개”라고 발언하며 케이팝의 위상에 걸맞지 않은 인프라 현실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최근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진행한 한국 인기 밴드 데이식스의 콘서트 현장 사진 ⓒJYP엔터테인먼트
이는 화려한 한류의 이면에 가려진 그림자를 드러내며,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경고로 받아들여진다. 최 장관의 발언은 국내 공연계가 수년간 겪어온 현실을 정확히 반영한다. 현재 서울 및 수도권에서 1만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대표적인 실내 공연장은 KSPO돔이 유일하다. 약 1만 5000석 규모의 이 공연장을 차지하기 위한 케이팝 아티스트들의 경쟁은 ‘대관 전쟁’이라 불릴 만큼 치열하다.
스타디움급 대형 공연장으로 가면 더욱 심각해진다. 과거 케이팝의 성지로 불렸던 잠실올림픽주경기장은 최대 5만 명까지 수용 가능했지만, 2023년 8월부터 리모델링 공사에 들어가 2026년 12월에야 완공될 예정이다. 이로 인해 국내에는 4만 명 이상을 동시 수용하며 공연을 진행할 수 있는 실내 공연장(돔 경기장)이 전무한 상태다. 유일한 돔구장인 고척스카이돔 역시 야외 스포츠 경기장으로 설계되어 콘서트 시에는 시야 제한석이 많고, 수용 인원도 2만 5000명 안팎에 그친다.
이러한 인프라 공백은 국내 아티스트뿐 아니라 해외 유명 아티스트들의 내한 공연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공연장 확보의 어려움으로 인해 투어 일정에서 한국이 제외되거나, 공연을 하더라도 서울이 아닌 경기도 고양종합운동장(약 4만명 수용) 등 대체 시설을 이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는 팬들의 접근성 저하와 추가적인 시간 및 비용 부담으로 이어져 공연 문화 전반의 질적 하락을 야기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은 방탄소년단(BTS)의 국내 콘서트가 1회당 최대 1조2000억원의 경제적 파급 효과를 가질 수 있다고 분석했으나, 이러한 잠재력은 공연장 부족이라는 현실의 벽에 부딪히고 있다.
한국과 대조적으로, 일본은 풍부한 공연 인프라를 바탕으로 자국 대중음악 시장을 지키고 해외 아티스트들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있다. 최 장관이 언급한 5개의 돔 경기장은 일본 전역에 분포하며 대규모 콘서트 투어의 핵심 거점 역할을 한다. 도쿄 돔(약 5만5000명), 교세라 돔 오사카(약 5만5000명), 반테린 돔 나고야(약 5만명), 페이페이 돔 후쿠오카(약 4만명), 삿포로 돔(약 4만2000명) 등 5대 돔 투어는 일본 정상급 가수는 물론, 최상위 케이팝 아이돌 그룹에게도 성공의 척도로 여겨진다. 이외에도 1만석 이상의 아레나급 공연장이 전국에 40여 곳 가까이 있어 다양한 규모의 공연을 원활하게 소화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인프라는 안정적인 공연 수익을 창출하고, 관련 산업의 동반 성장을 이끄는 중요한 기반이 된다.
물론 한국도 공연 인프라 확충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서울 도봉구 창동에는 최대 2만8000명을 수용하는 국내 최초의 아레나급 케이팝 전문 공연장인 서울아레나가 2027년 3월 준공을 목표로 건립되고 있다. 하지만 완공까지 아직 시간이 남았고, 일각에서는 서울 중심부와의 거리 등 위치적 한계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정치권에서도 대형 복합 공연장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형성되어 있다. 이재명 정부는 2035년을 목표로 수도권에 5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복합 공연장 건립을 공약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최 장관 역시 지속적으로 공연 인프라 확충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어, 정부 차원의 구체적인 계획이 마련될지에 관심이 쏠린다.
한 공연 관계자는 “케이팝은 이미 세계적인 문화 현상이 되었지만, 그 ‘하드웨어’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전 세계 팬들이 케이팝의 본고장인 한국을 찾았을 때, 정작 제대로 된 공연조차 볼 수 없는 현실은 ‘반쪽짜리 한류’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면서 “케이팝의 지속적인 성장과 국가 브랜드 가치 제고를 위해서라도, 이제는 일회성 논의를 넘어선 과감하고 장기적인 인프라 투자가 절실한 시점”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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