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비상계엄 선포로 기본권 장기간 침해 결과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을 것"
"계엄 선포 요건 해당 안 되고 위헌적 조치 수반된다는 사정도 알고 있었어"
"국회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가결 이후에도 해제 국무회의 절차 지연"
한덕수 전 국무총리.ⓒ뉴시스
내란 특검은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권력자의 비상계엄 선포로 국민 기본권이 침해될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단 점을 공소장에 포함한 것으로 확인됐다. 아울러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의결된 뒤 '해제 국무회의를 하자'는 건의를 받고도 한 전 총리가 "기다려보자"며 이를 묵살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내란 특검팀(특별검사 조은석)은 지난달 29일 한 전 총리를 불구속 기소하면서 이러한 내용을 공소장에 담았다.
앞서 박지영 특검보는 한 전 총리 기소 이유를 설명하며 "(내란 동조 행위는) 비상계엄도 기존의 친위 쿠데타와 같이 성공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으로 사료된다"고 밝힌 바 있다.
특검은 한 전 총리가 육군본부에서 군 복무 중이던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대통령 특별선언'을 통해 노재현 육군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한 점을 언급했다.
또 한 전 총리가 군복무를 마친 후 1974년 4월 행정부 공무원, 1979년 7월 경제기획원 사무관, 1980년 9월 경제기획원 서기관 등 주요 직책을 역임하던 중 1979년 10월 26일 박 전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시해되는 사건이 발생했고, 다음날 비상계엄이 전국에 선포됐다는 점을 적시했다.
특검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12·12 군사반란'을 일으키고, 군부정권을 수립하기 위해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고 설명했다.
특검은 한 전 총리가 군복무를 하는 과정 및 행정부 주요 보직 서기관으로 근무하는 과정에서 권력자가 입법·사법·행정 3권을 모두 장악하고 반대 세력을 탄압하는 등 권력 독점과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위헌·위법한 비상계엄을 선포할 경우 자유민주주의 헌법질서와 국민의 기본권이 장기간 침해되는 결과가 발생한다는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한 전 총리가 지난해 9월 국회에서 "계엄은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다" 등의 발언을 한 점을 비춰봤을 때 '12·3 비상계엄 선포 당시 상황이 계엄 선포 요건에 해당하지 않고, 선포하는 경우 국회 기능 정지 등 위헌적인 조치가 필연적으로 수반된다는 사정을 알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공소장에는 국회에서 계엄 해제가 의결된 후 국무회의 심의 지연을 통한 내란 방조 행위도 범죄사실로 기재됐다.
공소장에 따르면 한 전 총리는 정부서울청사에서 간부회의를 하던 중 방송 생중계를 통해 12월 4일 오전 1시 2분께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가결된 사실을 알게 됐다.
이후 방기선 당시 국무조정실장으로부터 "해제 국무회의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 대통령하고 직접 통화를 해보시라. 지금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총리님밖에 없다"는 건의를 받기도 했다.
그런데도 한 전 총리는 "조금 한 번 기다려보자"고 하면서 비상계엄 해제를 위한 국무회의 관련 조치들을 지연했고, 1시간가량이 지난 새벽 2시께 추가적인 건의를 받은 뒤에야 뒤늦게 국무회의를 소집했다.
특검은 한 전 총리가 지난해 12월 3일 계엄 선포 전 대통령 집무실에서 국무총리의 개별 임무가 적힌 지시 문건을 받았다고도 적시했다.
공소장에는 한 전 총리가 송미령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이유에 대한 설명 없이 "오고 계시죠, 어디쯤이세요, 빨리 오세요", "더 빨리 오시면 안 되나요"라고 수회 반복하는 등 국무회의 의사정족수를 채우기 위해 재촉했다는 내용도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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