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로 떠오른 비야디, 주력모델 최대 34% 대폭 할인
비야디 ‘가격 파괴’는 대규모 채무 상황 개선 위한 ‘고육책’
다른 업체들, 앞다퉈 ‘출혈경쟁’에 나서자 정부가 제동걸어
비야다 ‘재고떨이’에 중소업체들, 줄도산 위기에 몰리는 탓
미국 전기자동차 업체 테슬라를 제치고 글로벌 최대 전기차 업체로 떠오른 비야디(比亞迪·BYD)가 ‘재고 떨이’에 나서면서 중국 전기차 업계에 먹구름이 짙어지고 있다. 비야디가 중국 내에서 가격을 대폭 할인하자마자 다른 업체들도 앞다퉈 ‘출혈 경쟁’에 뛰어드는 바람에 ‘떨이 후폭풍’이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비야디는 지난달에 대폭적인 가격 인하에도 불구하고 신차를 전년 같은 기간보다 15.3% 늘어난 38만 2476대를 판매하는데 그쳤다고 홍콩 명보(明報) 등이 지난 2일 보도했다. 중국 상반기 최대 가격할인 행사인 ‘6·18’(6월18일) 쇼핑축제를 앞두고 비야디는 지난달 22개 모델의 가격을 최대 34% 할인하는 대규모 가격인하 행사에 들어가며 판촉 활동에 나섰다.
비야디는 중국에서 판매하는 22종의 전기차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PHEV)에 두자릿수의 할인율을 적용했다. 주력 모델인 중형 세단 ‘실’(SEAL)은 최대 34% 할인하고 소형 전기 해치백인 시걸(SEAGULL)의 가격은 20% 내렸다. 특히 할인 행사 대상에는 ‘신의 눈’이라 불리는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을 장착한 최신 모델까지 포함됐다. 이에 따라 ‘시걸’의 가격은 6만 9800 위안(약 1326만원)에서 20% 할인율이 적용돼 5만 5800 위안에 판매되고 있다. 할인 기간은 오는 30일까지다.
업계 1위 비야디가 가격을 큰 폭으로 끌어내리면서 다른 전기차 업체들은 비상이 걸렸다. 가뜩이나 중국 자동차 시장이 포화돼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을 겪고 있는 마당에 비야디가 재고 떨이에 나서면서 ‘피 튀기는 경쟁’이 불가피해진 탓이다. 결국 나머지 업체들도 대규모 할인행사 대열에 동참해야 했다.
업계 2위인 지리(吉利)자동차는 지난 1일까지 7개 모델을 8~18% 할인 행사를 실시했다. 치루이(奇瑞)자동차도 2일까지 한시적으로 산하 4개 브랜드의 31개 차종에 대해 최대 47%의 할인율로 판매했고, 창안(長安)자동차도 가격을 10.5% 내렸다. 중국 전기차 업계의 지난해 평균 할인율은 8.3%이었지만, 올해 4월에는 평균 16.8%로 확대됐다. 그런데 한달 만에 할인율이 다시 2배 가량 확대됐다.
비야디가 가격 파괴에 나선 것은 재고 소진을 통해 대규모 채무로 부실해진 재무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지배적이다. 협력사에 지급하지 못한 대금이 수십조원에 달해 부도 위험이 커지자 재고를 싼 값에 밀어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비야디는 올해 판매 목표를 550만 대로 잡았지만 4월까지 누적 판매량은 138만여 대로 목표치의 25% 수준에 불과하다. 사업 확장으로 생산능력은 높아졌지만 판매량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재고 소진을 위해 출혈을 감수하면서까지 대규모 할인에 나선 것이다. 중국승용차협회에 따르면 4월 기준 자동차 재고는 350만대로 2023년 12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갈수록 재고가 쌓이면서 각종 밀어내기 수법이 등장하고 있다.
비야디의 정확한 부채 규모는 구체적으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2분기 기준 순부채 규모를 277억 위안(약 5조 2472억원)이라고 공시했다. 미 블룸버그통신은 홍콩 회계법인 GMT리서치의 자료를 인용해 BYD의 순부채가 3230억 위안에 달했을 것이라며 비야디가 자체 회계처리 방식을 적용해 부채 규모를 실제보다 크게 줄여 공개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비야디 부채의 급증한 것은 협력사에 지급하지 않은 결제 대금이 누적되고 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비야디는 협력사로부터 부품을 조달한 뒤 어음을 발행하는데, 만기가 다른 경쟁사보다 훨씬 더 길다. 글로벌 업체들은 평균 2개월, 테슬라는 3개월 안에 대금을 지급하는 반면 비야디는 평균 9개월, 길게는 1년이 지나 대금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중국 자동차 업계에서는 수년 전 부동산 시장에서 겪었던 혼란에 다시 휩싸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웨이젠쥔(魏建軍) 창청(長城)자동차 회장은 지난달 23일 인터뷰를 통해 “아직 위기가 발생하지 않았을 뿐 자동차 산업에는 이미 ‘헝다’(恒大)가 존재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헝다는 중국 최대 부동산 개발업체였지만, 무리한 사업확장 끝에 2021년 파산했다. 이후 극심한 침체에 빠진 중국 부동산 시장은 아직도 회복되지 못하고 깊은 수렁에 빠져 있다. 웨이 회장의 발언은 성장에 집중하면서 재무구조가 부실해진 비야디의 현실을 지적한 것으로 읽힌다.
비야디는 지난해 176만 4992대의 전기차를 판매했다. 178만 9226대를 판매한 테슬라에 이어 세계 2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와 수소 전기차까지 포함한 전체 판매 대수는 427만 2145대에 달했다. 지난 3월에는 5분 충전으로 400㎞를 주행할 수 있는 새로운 급속 충전 기술을 개발했다고 밝혀 글로벌 완성차·배터리 시장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수익성은 글로벌 경쟁사들보다 낮다. 전기차 공급과잉에다 국내경제 부진까지 맞물려 2024년 중국 자동차업계 이윤율이 4.3%에 불과했고, 올해 1분기에는 역대 최저 수준인 3.9%까지 곤두박질쳤다고 명보가 전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중국 자동차 업계 영업이익률은 2020년 20%에서 2024년 10%수준으로 반토막 났다.
비야디는 중국 시장에서 대부분의 매출을 올리는 형편에서 연구·개발(R&D)과 글로벌 생산시설 확장에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비야디는 동남아 시장에서 점유율을 확대한 데 이어 한국과 일본 등에도 진출했지만 가장 수익성이 높은 시장인 미국과 유럽에는 고율의 관세 장벽에 막혀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문제는 배터리 생산부터 전기차 제조까지 수직계열화를 이룬 비야디는 원가절감을 통해 출혈 경쟁을 감수할 여력이 있지만 중소규모 업체들의 경우 오래 버티기 힘들다는 것이다. JP모건보고서 등에 따르면 중국의 전기차 제조업체 50여곳 가운데 수익을 낸 곳은 비야디를 비롯해 리샹(理想), 싸이리쓰(賽力斯) 뿐이며 나머지 업체들은 할인 경쟁까지 겹치며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결국 적자를 버티지 못한 중소규모 업체들은 자금난에 시달리다 시장에서 퇴출당하거나 더 큰 경쟁사에 인수될 전망이다. 컨설팅업체 중국자동차통찰(中國汽車洞察·Sino auto insights)의 투러(塗樂) 설립자는 “지금은 손실을 감당하지 못하는 업체들이 무너지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며 “올해 말부터 본격적인 구조조정, 소위 '피바람'이 불 수 있다”고 암울한 전망을 내놨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중국 전기차 업체들이 자국에서 소화하지 못한 재고를 해외로 헐값에 밀어내기 수출을 할 가능성도 높다. 비야디와 지리 등 중국의 전기차 업체들은 이미 한국과 일본 등 해외 진출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들은 해외 진출 초기에서는 저가 중국산이라는 이미지를 지우기 위해 자국 보다 높은 가격을 매기지만 경쟁이 본격화되면 가격을 대폭 인하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전기차 시장의 출혈 경쟁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중국 정부가 "가격 경쟁에 승자는 없다"며 단속에 나서기로 했다. 중국중앙(CC)TV에 따르면 중국 공업정보화부 관계자는 “자동차 산업의 네이쥐안(內卷·제 살 깎아 먹기)식 경쟁에 대한 정비(감독) 역량을 강화하고 공정하고 질서있는 시장 환경을 확고하게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출혈 경쟁은 제품의 품질 및 성능과 서비스 수준에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소비자 권익을 해치고 업계의 건강과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협한다”며 “가격 전쟁에는 승자도, 미래도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국 상무부도 지난달 27일 주요 완성차 업체와 중국자동차공업협회(CAAM), 중국자동차유통협회(CADA), 중고차 판매 플랫폼 관계자들을 소집해 좌담회를 열었는데 이 자리에서도 할인 경쟁 문제가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글/ 김규환 국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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