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벨트 경청투어…창녕·함안·하동까지
국민의힘 후보 교체 내홍에 사분오열 부각
"홍준표 교감" "내편 네편 없다"…외연확장
일정 종료 후 극적 김문수 복귀에 영향 촉각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당의 열세 지역인 경남을 돌며 거침없는 우클릭 행보를 이어갔다. "장사가 안 된다"며 빨리 지나가라는 일부 핀잔도 있었지만, 이 후보는 줄곧 웃는 얼굴로 일정을 소화했다. 험지를 공략하면서도 국민의힘이 '강제 단일화' 소란에 빠져들면서 반사이익으로 오히려 득의양양한 모습이었다.
다만 이 후보의 경남권 경청투어 일정이 마무리된 후 국민의힘 전당원투표에서 예상을 뒤엎고 후보 교체 안건이 부결됐다. 이 후보는 일정 도중 국민의힘의 내홍을 겨냥해 "새벽에 후보를 뒤집은 내란은 진압돼야 한다"고 공세를 펼쳤지만, 정작 정말로 '진압'이 돼버리면서 김문수 후보의 대선 후보 자격이 회복됨에 따라 향후 대선 정국에 미칠 영향에 촉각이 쏠린다.
10일 이재명 후보는 창녕·함안·의령·진주·사천·남해·하동을 잇따라 방문해 지역 민심을 청취했다. 전날엔 경북권을 순회했고, 이날은 경남 지역 골목골목에서 지지자와 지역민들을 만났다.
함안 가야시장에서 이 후보의 현장 유세를 기다리던 지지자들은 "민생회복 이재명" "경제회생 이재명" "민주수호 이재명" "국민통합 이재명" "지금 당장 이재명" 등의 구호를 연습했다. 이들 중 가장 큰 목소리를 낸 한 지지자는 이 후보가 연단에 오르기 직전, 험지의 다소 냉랭한 민심을 의식한 듯 "시간이 많이 지체됐다. 어쨌든 생계의 표준인 시장에서 장사에 지장을 주고 있기도 하다"며 "다함께 목소리를 모아 시장 상인들에게 방송을 한번 하자"고 외쳤다.
이어 "시장 상인 여러분, 죄송합니다"라는 외침이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현장에 모인 지지자들도 함께 이 구호를 따라 외쳤다. "대한민국의 희망을 위해 잠시 양해를 구한다" "행사가 끝나면 장을 보고 돌아가겠다"는 등의 외침도 이어졌다.
함안에 발걸음하기 전, 창녕에서 일정을 소화한 이 후보는 최근 국민의힘 경선에서 탈락한 홍준표 전 대구광역시장의 고향이 창녕이라는 점을 의식해 그의 이름을 거듭 언급했다. 이 후보는 연설 중 홍 전 시장과의 통화 내용을 공개하며, 민주주의 훼손에 대한 공감대를 나눴다고 밝히는 등 외연 확장에 힘을 쏟았다. 이날 창녕은 '영남 신라벨트 골목골목 경청투어'의 출발지였으며, 이 후보는 첫 일성으로 "정치 입장이 다르더라도 증오하면 안 된다. 진짜 미워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창녕에 이어 함안에 등장한 이 후보는 지지자들을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들고, 양손으로 엄지척 포즈를 취하는 등 화답했다. 이 후보는 함안에서는 별다른 정치적 메시지를 내지 않았다. 다만 다른 지역에선 국민의힘 '강제 단일화' 소동을 향한 십자포화와 함께 "빨간색이면 어떻고 파란색이면 어떠냐. 왼쪽이면 어떻고, 오른쪽이면 또 어떠냐"며 표심을 자극했다.
이 후보의 1박 2일 경남권 투어가 진행되는 동안, 국민의힘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대선 후보 등록이 임박한 상황에서도 김문수 후보 대신 한덕수 후보로 교체하는 절차를 단행했다. 보수 진영이 사분오열했다는 평가 속에 이 후보는 반사이익을 노리는 행보를 이어갔다.
이날 가장 주목받은 일정은 이 후보가 경남 진주의 한 전통찻집에서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은사로 알려진 김장하 학교법인 남성학숙 이사장을 만난 자리였다. 김 이사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결정 당시 헌재소장 대행을 맡았던 문 전 재판관의 학창 시절 은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은 '힘 있는 소수가 다수를 억압하는 상황'에 대해 의견을 나누며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 후보가 "선생의 말씀 중 '요란한 소수가 조용한 다수를 흔든다'는 말씀이 참 맞다"고 하자, 김 이사장은 "민주주의의 꽃은 다수결인데, 지금은 그것이 무너진 판"이라고 우려했다.
이 후보는 "역사적으로 보면 그런 사례가 많다"며 "언제나 힘 있는 소수가 다수를 억압하지만, 가끔은 힘 없는 소수가 제자리를 찾을 때도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에 김 이사장은 "승복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승복을 하지 않는다"고 했고, 이 후보는 "그것이 문제"라며 "같이 사는 세상에서 승복이 없으면 결국 전쟁밖에 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다만 이후 '요란한 소수가 다수를 흔든다'는 발언이 특정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이냐는 질문에 이 후보는 "그냥 어르신 말씀이시니까 그렇게 새기고 있다"며 즉답을 피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국민의힘의 강제 단일화를 맹비난했다.
김 이사장과의 면담을 마친 뒤 이 후보는 취재진과의 문답에서 "그 집안을 보면 웃음이 나온다"며 "당이 아니다. 그게 무슨 정당이냐"고 직격했다. 이어 "대선 후보를 정당하지 않은 이유로 새벽에 뒤집은 건 친위 쿠데타이자 내란 행위"라며 "내란당의 내란 후보를 옹립한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내란당의 내란 후보가 어떻게 민주공화국을 책임지겠다는 것이냐"며 "정말 웃음밖에 안 나온다. 저러고도 국민의 선택을 받겠다고 하느냐"라고 비판했다. 이어 "대한민국을 위해서도, 민주주의를 위해서도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며 "철저히 내란은 진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후보는 다시 한 번 홍 전 시장을 언급하며 외연 확장에 공을 들였다. '홍 전 시장과 어떤 이야기를 나눴느냐, 통합 내각을 함께 구성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홍 전 시장에게) 아직 내각 구성과 관련해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진 않았다"고 말했다.
다만 "(홍 전 시장과) 통화와 문자를 주고받으며, 서로 민주주의의 심각한 훼손을 우려한다는 점에 공감했다.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고 전한 뒤 "지지율 85%를 기록한 룰라 (브라질 대통령)에게서 배울 필요가 있다. 좌우를 가리지 않고 통합해, 나라를 위한 국정을 펼치면 지지도도 높고 성과도 따라온다. 그런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이 되는 과정에서는 한쪽에 경도될 수밖에 없지만, 당선되는 순간부터는 모두를 대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좌우도, 색깔도, 내편 네편도 가릴 필요 없다. 오로지 더 나은 국가와 민생을 위해 유능하고 충직한 사람을 적재적소에 쓰는 것이 대통령의 책무"라며 "나도 그렇게 꼭 해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날 이 후보는 경남 남해군 충렬사로 이동해 이순신 장군 사당을 참배했다.
이 후보는 충렬사 입구 앞 현장 연설에서 "다음 달 6월 3일이면 대한민국의 운명이 결정된다. 되돌아갈 건지 앞으로 갈 건지, 망할 것인지 흥할 것인지, 국민의 나라가 될 건지 내란 세력의 나라가 될 건지"라며 "6월 3일에 여러분이 합리적이고 훌륭한 선택을 하실 준비 다 되셨느냐"라고 물었다.
또 이 후보는 "우리가 남해에 있든 서해에 있든 아니면 저기 휴전선 접경 지역에 있든 똑같은 국민"이라며 "우리가 빨간색을 좋아하든 노란색을 좋아하든 검은색을 좋아하든 다 똑같은 대한민국 국민들"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 후보 측은 이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정식으로 후보 등록을 마쳤다. 당 선거대책위원회 김윤덕 총무본부장과 임호선 총무본부 수석부본부장은 경남을 순회 중인 이 후보를 대리해 과천 선관위 청사를 찾아 이 후보의 등록 절차를 마쳤다. 김 본부장은 후보 등록을 한 뒤 "이번 대선은 진짜 대한민국과 가짜 대한민국 세력의 싸움"이라면서 "꼭 이겨서 진짜 대한민국과 진짜 태극기를 되찾겠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공식 선거운동 첫날인 오는 12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첫 유세를 시작한다. 민주당은 광화문을 '빛의 혁명'을 상징하는 장소로 규정하고 있으며, 12·3 비상계엄과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을 거치며 주권을 회복하겠다는 뜻을 이 표현에 담았다. 김문수 후보가 대선 후보 자격을 회복함에 따라, 이튿날인 11일 공식 등록을 마친 뒤 이 후보와 본선에서 정면 승부를 펼치게 됐다.
0
0
기사 공유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