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TV 속 담배, 규제로 인식 개선된 20년 [콘텐츠 속 흡연①]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4.03.28 14:40  수정 2024.03.28 14:40

흡연에 대한 경각심 만드는데 일조

지상파 드라마에서 흡연 노출 장면이 사라진 지 올해로 20년이 됐다. 2002년 12월 KBS가 ‘KBS 드라마에는 담배가 없습니다’라는 슬로건으로 흡연 장면 삭제를 선언했고, 바로 SBS가 이 뜻에 동참했다. MBC는 2년 후인 2004년 흡연 장면을 화면에서 지웠다.


KBS의 결정은 KBS 방송문화연구소의 자료를 근거로 이뤄졌다. 당시 이 연구소는 드라마 속 흡연 장면으로 시청자 35.4%가 흡연 욕구가 생겼고, 실제 23.9%는 시청 후 담배를 피웠다는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픽사베이

지상파 3사의 흡연 장면 추방은 세계 최초로 이뤄졌다. 정부 역시 환영했다. 그동안 보건복지부는 방송 내 흡연 장면 모니터링사업을 진행했고, ‘세계 금연의 날’ 행사에서는 흡연 연기가 잦은 배우와 이런 내용을 쓰는 작가를 선정 발표하는 등 꾸준히 흡연 장면 시정을 요구했다. 이런 상황에서 방송사들이 자체적으로 흡연 장면을 규제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물론 방송심의 규정에서 흡연 장면은 ‘일부’만 규정했다. 규정 28조에선 ‘방송은 흡연 등의 내용을 다룰 때 신중을 기해야 한다’라고 명시되어 있을 뿐이지만, 44조 2항에서는 ‘어린이 및 청소년 시청보호 시간대에는 시청대상자의 정서 발달 과정을 고려해야 한다’고 규제하고 있다. 흡연 장면을 실질적으로 규제하진 않지만, 특정 대상사에 한해서는 규제를 한 것이다. 이를 방송사들이 자체적으로 ‘실질 규제’로 규정한 셈이다.


방송사들의 이 같은 결정은 처음부터 완벽하게 지켜지진 않았다. 한국소비자연맹이 2005년 1월부터 4월까지 방송된 MBC, SBS, KBS 등 지상파 3사의 미니시리즈와 주말드라마 총 18편을 대상으로 흡연 장면을 모니터링한 자료에 의하면, SBS와 MBC는 총 9회의 직접 흡연 장면 및 흡연을 시사하는 장면(흡연 시도 및 재떨이)이 방송된 것으로 조사됐다.


시청자들도 방송사들의 결정에 무조건 동의한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2006년 방영된 MBC 드라마 '닥터깽'의 한 장면은 갑론을박을 일으켰다. 첫 방송에서 강달고(양동근 분)가 누명을 쓰고 조직으로부터 위협과 고문을 받은 후 피투성이가 된 채 담배를 물고 길을 걷다 쓰러졌는데 시청자들은 이 장면을 두고 ‘방송사의 흡연 장면 규제 의도에 찬물을 끼얹는 판단’이라는 지적과 ‘전개상 자연스러운 장면인데 흡연 금지로 인해 몰입도를 떨어뜨려 솔직함이 주는 대중문화의 즐거움을 빼앗아갔다’는 의견이 대립했다.


당시 ‘닥터깽’ 제작진은 주인공의 환경과 정서를 상징하기 위해 담배를 노출하는 결정을 했지만, 결국 비난 의견을 수용했고, 이후 드라마에서는 담배는 사라졌다.


이후 2014년 tvN '미생'이 다시 담배를 꺼내 들었다. '미생'에서 오상식(이성민 분)이 고민이 있을 때 담배를 입에 물거나 등장인물들이 담배를 권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했다. 하지만 끝내 담배에 불이 붙지는 않았다. 또한 흡연을 상상하게 유도하고 실제 화면에는 잡히지 않는 방식들을 사용했다. ‘강제성’ 있는 법이 아니고, 애초에 지상파들의 자율 규제였기 때문에 케이블사인 tvN은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었다.


특히 이 시기는 드라마에서 담배나 흡연 장면이 오랜 시간 사라져, 대중이 자연스럽게 이 같은 상황을 받아들일 때였다. 그럼에도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일이라는 목소리는 여전히 나왔다. 일상에서 흔히 담배 피는 걸 볼 수 있으며, 인물의 심리와 성격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인데 지나친 규제라는 의견들이 있었다.


2015년에는 노골적인 흡연 장면이 등장해 논란이 일었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보라(류혜영 분)가 가족들 몰래 방 안에서 창문을 열고 흡연하는 모습이 그대로 송출됐다. '응답하라 1988' 제작진은 개성과 주장이 확고한 성보라의 캐릭터를 보여주는 표현이었다고 해명했지만, 청소년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는 이유로 시청자들의 비난을 받았다. 결국 오후 10시까지로 지정된 청소년 보호시간대에 흡연 장면 방송이 문제가 돼 결국 '응답하라 1988'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행정지도 권고 처분을 받았다.


2024년 현재 방송에서는 흡연 장면이 크게 줄어들었다. 일부 작품에서는 담배 대신 사탕 등의 대체제를 활용하면서 시청자들에게 금연 메시지를 전달했다. 방송사의 자정작용 뿐 아니라 현재 정부에서도 흡연 예방을 위해 담배 가격을 인상하고 금연 프로그램과 홍보, 상담 등을 진행하고 치료를 제공하면서 흡연이 위험한 요소로 각인됐다.


인식 재고와 노력은 수치로도 확인됐다. 질병관리본부가 2022년 발표한 통계집 '국민건강영향조사, 건강행태 및 만성질환의 20년간 변화'에 따르면 성인 흡연율은 2020년 20.6%(남성 34.0%, 여성 6.6%)다. 1998년 성인 남성 흡연율이 66.3%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다.


청소년 흡연율 역시 감소했다. 2011년 12.1%(남학생 17.2%, 여학생 6.5%)에서 2021년 4.5%(남학생 6.0%, 여학생 2.9%) 감소했다. 특히 남학생의 흡연율이 1997년 35.3%로 정점을 찍은 뒤 꾸준히 떨어졌다.


여전히 TV 드라마에서 음주나 폭력 등 유해한 요소들이 종종 등장하지만, 금연만큼은 건강한 생활 습관을 유도했다는데 방송이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현재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매스컴학 박사, 보건정책 석사, HOWs 대표)는 "아직까지 지상파의 자발적 규제가 유효하고, 잘 지켜진 이유는 오랜 시간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여전히 잘 지켜가야 한다. 사회적으로 흡연에 대한 위험성과 경각심이 부각 됐는데 이 분위기를 만드는데 지상파가 큰 역할을 했다. 지상파에서 흡연 장면을 규제하면서 '담배, 흡연은 조심해야 되는거구나'라는 인식이 생겼다"라고 전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90년대 드라마, 시트콤 등을 다시 보던 중 깜짝 놀란 일이 있었다. ‘논스톱’ 등 비교적 청소년들이 보는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흡연 장면이 너무 노골적이었다. 미디어의 변화를 실감하지 못하다가 과거 프로그램을 보고 불특정다수가 쉽게 접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면 규제가 맞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실제로 TV프로그램에서 '술방'이 자주 등장하고 권장하는 분위기가 이뤄지자 음주율이 높아졌던 것처럼 흡연 장면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청소년들이 더욱 쉽게 접하고 이를 친숙하게 여겨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며 규제로 인해서 분명 변화가 생겼다고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0

0

기사 공유

댓글 쓰기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관련기사

댓글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