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측 주당 5000원의 현금 배당안 가결
양사의 비슷한 지분으로 국민연금이 결정적 역할
제3자 배정 유증 안건 부결…정관변경은 영풍 승리
19일 서울 강남구 영풍빌딩에서 열린 고려아연 제 50기 정기 주주총회. ⓒ고려아연
고려아연과 영풍 간의 표대결이 치열한 접전 끝에 고려아연의 승리로 일단락됐다. 75년 동맹 관계인 고려아연과 영풍은 고려아연 경영 주도권을 두고 표대결로 처음 정면충돌했다. 고려아연의 의안이 1승1패의 성적을 거뒀지만, 핵심 쟁점인 현금 배당안의 승리를 거머쥐어 사실상 고려아연의 승리로 풀이된다.
19일 서울 강남구 영풍빌딩에서 열린 주주총회에서 고려아연의 현금 배당안이 62.74% 찬성률로 가결됐다.
이날 주총에는 일반 주주와 대리인, 의결권 위임기관 관계자 등 150여명이 참석했으며, 회사 측에서는 주주총회 의장을 맡은 박기덕 고려아연 대표이사 사장 등이 자리했다.
앞서 고려아연은 주당 5000원의 현금 배당안과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외국 합작법인만이 아닌 국내 법인도 가능하도록 하는 안건을 상정했다. 영풍이 해당 안건들에 반대하면서 이번 표대결이 진행됐다.
국민연금이 만든 고려아연 ‘승리’
배당안은 고려아연 안인 주당 5000원의 결산배당금으로 지급하는 의안이 원안대로 통과됐다. 참석 주주의 61.4%가 고려아연 측의 원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지난해 8월 반기 배당금인 1주당 1만원을 포함한 현금 배당액은 1주당 1만5000원으로 전기 대비 5000원 줄어들게 됐다.
특히,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던 국민연금이 고려아연 측의 손을 들어주면서 주목됐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은 한화, 현대차 등 우호지분을 포함해 약 33.2%, 영풍 장형진 고문 측은 약 32%로 고려아연 지분은 비슷한 수준이다. 양 측의 지분이 비슷해 승부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지분 8%를 가진 국민연금의 표심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고려아연은 “영풍이 ‘주주권익 침해’ 논리를 앞세워 기말결산배당금 1만원을 요구했다”며 “주주환월율이 76%를 넘는 상황에서 영풍의 주장대로 배당금을 늘릴 경우 주주환원율이 96%를 넘어서고 이는 기업가치를 크게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사측 원안이 가결됐다”고 설명했다.
영풍은 고려아연이 주주친화정책을 내세우고 있고, 이익 잉여금 등 배당 여력이 충분하다며 결산 배당으로 1주당 1만원을 배당할 것을 제안한 바 있다.
정관 일부 변경의 내용을 담은 2호 의안의 세부 안건들은 모두 통과됐으나 주식 발행 및 배정 표준 정관 도입을 위한 제3자 배정 유증 안건은 53.02% 찬성률로 부결됐다.
참석 주주의 과반은 동의했지만, 정관변경은 주총 특별결의 사항으로 출석 주주 3분의 2, 발행 주식 3분의 1 이상 동의가 필요하다. 정관변경 의안이 부결됨에 따라 제3자 배정 유증 시 ‘경영상 필요로 외국의 합작법인’에만 할 수 있도록 제한하는 신주인수권 관련 조항의 문구는 그대로 유지된다.
고려아연 측은 “상장사협의회가 권고하고 영풍을 포함해 97%에 달하는 상장사가 도입한 표준 정관을 도입하는 안건이 절반을 넘는 주주들의 찬성에도 특별결의 요건을 넘지 못해 부결됐다”며 “국내를 넘어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는 경영 시스템 구축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한 관계자는 “고려아연 주총의 주주 참석률은 평균 90%에 못 미친다”며 “정관 변경안에 반대해온 영풍과 장씨 일가의 반대만으로도 사실상 안건 통과는 불가능한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이번 주총의 참석률은 90.31%였다.
정관 변경안은 최 회장 측과 영풍 측의 경영권 다툼과 직결될 만한 사안이었다. 과거 고려아연은 한화와 현대자동차의 해외법인 대상으로 제3자 배정 유증을 실시한 바 있으며, 영풍은 이를 두고 ‘지분 가치 희석’이라고 비난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법인도 제3자배정 유증을 가능케 하면 최 회장 측이 우호지분을 추가로 확보하기에 더 유리해진다는 점에서 영풍의 반대에 부딪쳤다.
다만 정관 변경안은 지분 구조상 애초에 통과가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기에 이날 주총 표결에 대한 관심은 현금 배당안으로 집중됐다.
최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도 의결됐다. 최 회장은 “국내외 산업 전반에 걸친 저성장 기조와 전기료, 원료비 상승 등 어려운 경영환경이 계속되고 있지만, 지속적인 원가 절감과 기술력 향상을 통해 사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매진하고 있다”며 “기존 제련사업과 신사업간 시너지를 통해 친환경 미래소재 대표기업으로 도약하겠다”고 말했다.
고려아연 ‘경영 주도권 확보’·영풍 ‘황금 알 낳는 거위 지키기’
영풍 장씨와 고려아연 최씨 집안은 1949년부터 동업을 해오며 상호 지분을 보유해 왔다. 영풍은 고려아연의 지분율을 절반 넘게 갖고 있어 고려아연은 영풍의 계열사로 분류된다.
고려아연은 경영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해 이번 표대결에 필사적이었다. 현재 비슷한 지분율을 가진 상황에서 배당이 올라가면 영풍이 고려아연의 지분을 사들일 수 있는 여력이 커져 고려아연에 대한 영풍의 지배력도 강화된다.
정관변경 역시 고려아연으로서는 우호지분을 확대할 기회로 만들 수 있는 장치였다. 영풍이 지분을 2%라도 인수한다면 경영 주도권에서 더 멀어지기 때문이다.
영풍도 여유로운 입장은 아니었다. 그간 고려아연은 영풍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지난해 1698억원의 영업손실을 냈지만, 당기순손실은 834억원으로 배당금이 상당 부분을 상쇄했다. 이런 상황에서 배당을 줄어들면 실적은 더욱 악화된다.
이날 주총의 결과는 고려아연의 승리로 돌아갔지만, 고려아연의 경영권을 두고 양측의 신경전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날 고려아연은 오는 20일 열리는 영풍의 주주총회를 앞두고 영풍의 주주환원율에 대해 문제 삼았다. 고려아연은 “주주환원율이 10% 수준에 그치는 등 부실한 주주친화정책에 대한 비판도 상당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한, “최근 5년 중 4년간 적자가 이어진 만큼 영풍 경영진에 대한 주주들의 성토가 이어질 전망”이라며 “지난해 12월에 이어 최근 다시 사망사고가 발생하면서 기업가치가 크게 훼손된 점도 주주들의 불만을 키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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