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이 중심 되긴 힘들어”…골목으로 모인 예술가들의 현재 [골목에서 만나는 예술①]

장수정 기자 (jsj8580@dailian.co.kr)

입력 2023.12.02 07:00  수정 2023.12.02 07:00

“많은 예술인들 모이기 힘든 지방…문화예술거리에도 카페 찾는 사람들”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철강소 골목은 과거 서울에서 가장 큰 철강 공단 지대로 불렸다. 이곳저곳에서 망치 소리와 쇠 깎는 소리가 들렸고, 땀과 쇳가루에 범벅이 된 사람들이 있었다.


지금은 늦은 오후부터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다. 철강소로 향하는 골목 사이사이 벽화는 물론, 철강소들이 셔터를 내리면 드러나는 그림들까지. 이 같은 풍경을 보기 위해 늦은 오후, 주말에 찾은 젊은 층들이 인증샷을 남기기도 하는 곳이다.


ⓒ2023영등포네트워크예술제 SNS

또 다른 골목에서는 카페와 식당, 술집들 사이 전시회가 열리기도 한다. 활짝 열린 문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무료 관람이 가능한 갤러리가 골목 초입 자리하고 있어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이 외에도 예술 공방을 비롯해 각종 공연들이 열리는 작은 공간들이 이어져 자연스럽게 문화, 예술 거리를 연상하게 한다.


현재 문래동에는 100여 개의 작업실과 200여 명이 넘는 예술가들이 활동하고 있다. 1990년대 제조업이 쇠퇴하면서 문래동의 공장 일부도 문을 닫게 됐는데, 이때 저렴한 임대료를 파고든 예술가들이 이곳에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창작촌이 형성됐다.


여기에 2019년 ‘문래창작촌 예술제’를 시작으로 최근 개최된 ‘영등포 아트페스타’ 등 문래동의 특성을 활용한 문화 예술 축제까지 개최되면서 영등포구민, 나아가 타 지역 시민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이렇듯 문래동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바탕으로, 최근 생겨난 카페, 또는 식당, 술집 등이 어우러져 밤이 되면 ‘힙하다’며 이곳을 찾는 젊은 층들로 골목 곳곳이 붐빈다. ‘힙한’ 카페, 술집을 찾아 골목 여기저기를 다니던 중 자연스럽게 갤러리를 들르고, 또 공연을 관람하기도 하면서 문화, 예술 거리의 좋은 예로 거듭나고 있다.


문래동 외에도 벽화를 비롯해 각종 전시 및 공연을 만날 수 있는 문화예술거리가 다수 있다. 서울 중구의 필동, 남산한옥마을 인근 형성된 필동문화예술거리에서도 미술 전시 및 공연이 이어진 바 있으며, 예술가들의 공방과 갤러리, 서점 등이 모인 공주의 감영길도 있다. 익산역 인근 자리한 익산문화예술거리, 대구의 봉산문화거리 등도 예다.


문래동이 창작자들이 모여들며 자연스럽게 형성된 문화예술거리라면, 다소 침체된 동네를 활성화하기 위해 문화, 예술을 활용하기도 한다. 익산문화예술거리가 한 예인데, 2010년대 초반, 익산시가 버려진 상점을 문화 예술인들을 위한 창작 공간으로 빌려주기 시작하며 자연스럽게 갤러리와 공방이 문을 열기 시작했다. 여기에 익산아트센터와 지역 역사를 접목한 익산근대역사관까지 들어서는 등 활성화된 거리가 관광 명소로 거듭난 사례가 됐다.


다만 이것이 지속되는 것은 쉽지 않다. 대표적으로 지난 2015년 스트리트 뮤지엄이 들어서고, 각종 전시 공간 등이 마련되면서 도시의 버려진 유흥 공간을 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킨 복합 문화 공간으로 주목을 받은 필동문화예술거리는 다소 한산한 분위기로 “관리가 잘 되지 않은 것 같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로 주말 필동문화의거리는 해당 골목을 지나는 일부 사람들로만 이뤄져 다소 한산했고, 전시가 이뤄지던 곳들도 이제는 대부분 문을 닫은 상태라 골목의 목적을 알기 힘들었다.


당초 조형물로 분위기를 살리고, 스트리트 뮤지엄을 통해 눈길을 사로잡는 등 공연, 전시 외에도 다양한 볼거리를 선사하던 필동문화예술거리였지만, 인위적으로 조성이 됐기에 20대부터 30대까지 젊은 층이 자연스럽게 몰리는 문래동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던 것이다.


부산에서 연극 등을 선보이는 소극장을 운영하는 한 대표는 “공연을 보러 오는 관객들을 불러 모으는 것조차 힘든 예술인들에게 공간 활성화는 큰 돌파구가 된다고 여긴다. 지역 예술인이나 비대중적인 예술인들의 경우 더욱 그럴 것이다. 개인의 힘으로는 힘든데, 몰려 있으면 아무래도 작은 관심들이 몰리지 않겠나”라고 공간 조성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다만 한계도 뚜렷하다고 언급했다. 이 대표는 “부산에도 문화의 거리가 조성돼 있고, 그곳에 공연장이나 소극장이 모여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게 매력적인 선택지가 되는 건 아니다. 아무래도 서울이나 일부 지역처럼 많은 예술인이 모여들지 못하는 제한적인 상황이 존재하고, 그렇다 보니 문화예술을 중심으로 거리가 활성화가 되기는 힘든 것 같다. 문화의 거리라고 해도 대부분의 사람은 카페를 방문하거나 술을 마시기 위해 찾는다고 여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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