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우리 편 정치’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3.08.28 07:07  수정 2023.08.28 07:07

머그샷 찍고 떼돈 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제 종주국 미국정치의 위기

대통령 경쟁이 나라 말아먹고 말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 24일(현지시간) X(옛 트위터)에 올린 게시물.ⓒX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팬덤 정치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여줬다. 그는 지난 24일(현지시각) 미 조지아주(州) 풀턴 카운티 구치소에서 20분간 수감 절차를 밟으면서 머그샷(범인 식별용 사진)을 촬영했다. 금방 보석으로 풀려나긴 했지만 미국 대통령 역사상(전·현직 불문) 머그샷은 처음이다. 대단히 수치스러운 일인데도 그는 오히려 자신의 SNS에 이 사진을 올리면서 지지세력의 분노를 자극했다. 그의 기대대로 성공적 퍼포먼스가 됐다.

머그샷 찍고 떼돈 번 도널드 트럼프

그가 구치소에서 풀려난 지 이틀 만에 기부금과 상품 판매대금으로 총 710만 달러(한화 약 94억 2000만원)가 모금됐다고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가 26일(현지시각) 보도했다. 특히 그 전날 하루에만 418만 달러(약 55억 5000만원)가 모여 트럼프 캠프 선거운동을 통틀어 24시간 최고 모금액을 기록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야말로 수지맞는 장사다. 사진 한 컷의 효과가 앞으로 얼마나 열광적인 지지자들과 얼마나 많은 수익을 창출해낼지 지금으로서는 가늠할 수가 없다.


분명히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다. 미국이 대표하고 있는 대의민주정치가 이런 양상으로 전개되리라고 예측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국민은 주권자로서 정치인이나 정당을 평가·심판하고 선택권을 행사한다. 그게 대의민주제의 제1 조건이다. 그런데 주종관계(主從關係)가 뒤바뀌었다. 유명 혹은 유력 정치인이 피리 부는 사나이가 되고 국민은 그의 뒤를 따르는 어린아이들이 된 것 같은 국면이나 장면들이 불거지기 시작한 것이다.


주로 대통령중심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들의 경우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미국의 대통령제 민주정치는 1789년 조지 워싱턴이 초대 대통령에 취임한 이래 234년의 연륜을 쌓아 왔다. 그간 우여곡절이 없지 않았으나 그래도 대통령제 민주정치의 종주국 지위는 변함없이 유지해 왔다. 그러나 더 이상 ‘미국의 모범’을 말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포퓰리즘 정치가 정치지형을 둘러 엎어놓은 뒤를 이어 닥친 팬덤정치가 대통령제를 근간으로 하는 대의민주정에 대한 회의를 확산시키고 있는 게 현실이다. 포퓰리즘 정치와 팬덤 정치는 일란성 쌍생아, 동전의 앞뒷면이라 할 수 있다. 대중 추수적인 정치가 팬덤을 낳았고, 팬들은 정치인을 자기들의 무리 속에 가둬버린 구조다. 일단 자신의 팬덤이 형성된 다음엔 탈출구가 없다. 호랑이 등에 탄 처지가 되고 마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등장한 많은 신생국들이 주로 따른 것이 미국식 대통령제 민주정치였다. 여러 나라에서 엄청난 실패가 잇달았지만 그래도 미국의 제도가 건재한 동안은 그게 각국 정치의 명분과 근거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미국의 대통령제는 진흙탕 속의 무도회 꼴이다. 어떻게 미국에서 대선 결과에 불복하는 군중이 의회에 난입해서 상·하원 합동회의의 대선 결과 확정·공표를 방해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었다는 것인가. 세계는 경악했고 미국정치에 대한 신뢰는 곤두박질쳤다.

대통령제 종주국 미국정치의 위기

대통령중심제는 권력의 집중현상을 낳는다. 미국도 예외일 수가 없다. 제왕적 대통령(imperial presidency)이라는 용어가 미국의 대통령제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슐레진저 2세(Arthur Meier Schlesinger, Jr.,)가 1973년에 낸 저서의 제목이 바로 ‘제왕적 대통령(직)’이었다. 특히 닉슨 (Richard Milhous Nixon) 대통령과 그 행정부의 과도한 권력행사를 가리킨 표현이었다. 미국이 그랬을 지경이면 그 제도적 추종국가들의 경우는 말할 필요도 없다.


권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체제는 필연적으로 강력한 도전과 응전을 초래한다. 3권분립의 정치체제라고 하지만 권력의 축들 사이에 아름다운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리라는 기대는 너무 순진하다. 권력투쟁이 정치의 본질적 측면을 형성한다. 대선이 끝나고 당락이 가려지는 순간부터 다시 격렬한 투쟁이 전개된다.


트럼프는 이미 팬덤을 업고 2016년 대선에서 승리했다. 재선 선거에서 패배했지만 그로 인해 팬덤의 결속력은 더 강력해졌다. 트럼프는 자신이 그들을 효과적으로 이끌고 있다고 여기겠지만 동시에 그들의 기대와 요구를 배신할 수 없다는 사실도 명확히 깨닫고 있을 것이다. 지지자들은 자신들의 기대에 희생적으로 부응하고 자신들의 한을 보란 듯이 풀어줄 것이라는 기대로 그에게 전폭적인 신뢰와 지지를 보내고 있다. 가난한 러스트벨트의 유권자들이 재벌 트럼프에게 정치자금을 아낌없이 보태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트럼프는 꺾이지 않는다. 주저앉는 순간 정치도 인생도 끝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막강한 팬덤이 뒤를 받쳐주고 있는데 무얼 주저하겠는가. 대통령만 되면 셀프사면도 가능해진다. 주 검찰의 기소와 주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셀프사면이 불가능하다고 하지만 대통령이 되고 나면 우회해서 벗어날 길을 모색할 수 있다.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대선 도전뿐이고 지지자들은 더 격렬하게 충성심을 표하게 될 것이다.

대통령 경쟁이 나라 말아먹고 말지

우리 팬덤 정치의 양상도 유사하다. 지지하는 정치인에 대해서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그들의 추종은 무조건적이다. 명백한 과오나 범법이 드러나더라도 지지를 철회하는 법이 없다. 오히려 더 격렬하게 지지의사를 표명한다. 더불어민주당 김의겸 의원이 더 탐사와 ‘협업’했다며 폭로한 ‘청담동 술자리’가 허위임이 드러났으나 지지자들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달라지기는커녕 되레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 대한 욕설과 저주 섞인 공격을 더하면서 다투어 정치후원금을 보냈다. 김 의원과 더 탐사는 폭로의 재미를 톡톡히 본 것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등에 대한 지지자들의 충성심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저런 사람을 지지할 수 있나”라는 물음은 부질없다. 몰라서 지지하는 게 아니다. ‘나의 스타’이기 때문에 지지하고 편드는 것이다. 이들이 머그샷을 찍고 그게 공개되는 일이 생긴다 해도 지지자들이 흔들릴 것 같지는 않다. 더 큰 목소리로 ‘이재명!’ ‘조국!’을 외칠 게 뻔하다. 규제가 없다면 엄청난 기부금이 쏟아져 들어갈 법도 하다. 그 바탕에는 편 가르기 심리가 있다.


크게 두 쪽으로 갈라진 정치지형은 가시적 장래까지는 바뀔 전망이 없다. 오히려 갈수록 더 골짜기가 깊어지고 험해진다. 내편과 상대편의 구분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라면 악마와도 손을 잡겠다는 열기(熱氣)에 사로잡힌다. 중공(당시의) 팔로군과 북한 인민군에 헌신했고, 김일성 침략전쟁을 거들었던 중국인 정율성의 기념공원을 조성하고 있는 광주시가 그 예다. 강기정 광주시장은 기어이 공원을 완공시키겠다고 고집한다. 중국에 대한 ‘우리 편’ 의식 때문일 것이다.


이미 나라는 두 동강 난 것처럼 여겨질 정도로 분열됐다. 정치리더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그 분열상을 딛고 서서 인기도 얻고 돈도 벌면서 정치적 지위를 유지·쟁취하겠다고 기를 쓴다. 세계가 ‘디지털 혁명의 시대’, ‘AI 혁명의 시대’로 줄달음치는데도 이들에게는 20세기 권력정치의 그들에서 벗어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나는 권력 따먹기에 바쁘니 나라는 당신들이 지키라”는 말이 하고 싶은가?


<독백> 이러다가 언젠가는 대통령 자리 경쟁이 나라를 말아먹고 말지~.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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