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외면하던 기획사들의 반가운 변심 [친환경 덕질②]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3.08.02 11:00  수정 2023.08.07 11:56

"죽은 지구에 케이팝은 없다"

케이팝 팬들 '케이팝포플래닛' 설립

하이브 JYP SM YG 등 ESG 기업 비전 설정

방탄소년단 블랙핑크 등 CD 없는 앨범 발매

“NO KPOP ON A DEAD PLANET” “ART SHOULD NOT END UP HERE”


지난해 4월, 방탄소년단(BTS)과 세븐틴 등이 속한 하이브 사옥 앞에는 앨범을 재사용해 만든 조형물이 설치됐다. 이는 글로벌 케이팝(K-POP) 팬들이 기후 위기에 대항하기 위해 만든 플랫폼 ‘케이팝포플래닛’이 진행한 ‘죽은 지구에 케이팝은 없다’라는 캠페인의 일환으로 운영된 ‘플라스틱 앨범 처리반’의 움직임이었다.


ⓒ뉴시스

이들은 “기후 위기를 앞당기는 엔터테인먼트사들의 실물 앨범 문화 개선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 함께 생산자의 책임을 요구한다는 취지로 국내 팬들로부터 모은 처치 곤란한 앨범 8000여장을 국내 기획사들로 되돌려 보냈다. 팬들에게 ‘쓰레기를 만들지 않을 권리’를 제공하라는 것이다.


케이팝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버려지는 실물 음반에 대한 기획사, 아티스트, 팬덤의 역할도 중요하게 여겨지는 시대다. 케이팝 팬들이 ‘케이팝포플래닛’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친환경 앨범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자, 기획사들도 팬덤의 움직임을 반영하기 시작했다. 앨범을 많이 구입하는 팬들의 문제를 넘어서, 앨범을 많이 구매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을 만들고 있는 엔터테인먼트사들의 변화가 우선이라는 의견이 이어지면서다.


지난해 대형 기획사를 중심으로 일부 아티스트들의 특정 앨범에 친환경 소재를 사용한 발매가 이어졌다. 대표적으로 SM엔터테인먼트의 NCT드림이 앨범 제작에 친환경 소재를 도입한데 이어 국제산림관리협의회(FSC) 인증을 받은 용지, 쉽게 자연분해 되는 콩기름 잉크, 휘발성 유기 화합물 배출이 없는 환경친화적인 자외선(UV) 코팅을 사용했다. YG엔터테인먼트의 송민호와 블랙핑크도 친환경 소재를 이용한 앨범과 굿즈를 내놓았고, 하이브도 방탄소년단 제이홉의 첫 솔로 앨범을 위버스 앨범 형태로 발매하는 등의 움직임이 있었다.


다만 이 당시 보편화되지 않은 친환경 소재 제작 시 발생하는 비용, 실물 CD가 없는 앨범에 대한 차트 미반영 문제 등의 이슈로 엔터테인먼트사들의 친환경 앨범은 이벤트성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형식적 의미만 쫓다가 질타를 받는 사례도 나왔다.


앨범은 아니지만 하이브 뮤지엄인 ‘하이브 인사이트’에서 판매된 MD 상품 중 소속 연예인이 입은 옷을 작게 조각해 플라스틱 혹은 유리에 담아 ‘업사이클링 제품’으로 판매한 경우다. 이들 외에도 ‘친환경’을 내세웠지만 생분해도 안 되는 플라스틱을 사용하고 스펀지와 박스에 포장하는 등 업사이클링이라고 보기 힘든 굿즈들이 제작되면서 연예기획사를 둔 그린워싱(위장 환경주의)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BTS 제이홉 위버스 앨범 ⓒ위버스샵

그런데 최근의 분위기는 이전과는 매우 달라졌다. 이벤트성으로 제작되던 친환경 앨범에 대한 논의가 더욱 본격화되는 모양새다. 특히 각 기획사는 ESG를 기업의 비전으로 설정하고 있는 추세다.

하이브는 플라스틱 재질인 CD를 없애고 포토카드와 QR코드로만으로 구성한 플랫폼 앨범을 제작한다. 플랫폼 앨범은 근거리무선통신(NFC)이나 QR 코드를 통해 음악을 듣는 ‘CD 없는 음반’이다. 일반 음반보다 구성품이 적고 친환경 소재를 사용할 수도 있어 실물 음반의 대안으로 꼽힌다. 하이브의 자회사 위버스 컴퍼니는 지난 2월 플랫폼 앨범 제작 업체인 미니레코드와 업무 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YG플러스 역시 지난해 하반기에 ‘포레스트 팩토리’라는 친환경 앨범 제조 자회사를 설립했다. 이곳에선 국제산림관리협의회(FSC)에서 친환경 인증을 받은 재생 용지와 콩기름 잉크, 생분해 플라스틱 등을 활용해 앨범을 만든다. 최근엔 블랙핑크 지수도 FSC 인증을 받은 종이와 바이오 플라스틱으로 제작된 앨범을 발매했다.


또 JYP엔터테인먼트는 2021년 한 해 동안 사용한 전력량(1393MWh)을 100% 태양광에너지로 대체했으며, 640t CO2e의 온실가스를 감축해 국내 엔터테인먼트 기업 중에선 처음으로 RE100을 이행했고, SM은 지난해 임직원을 대상으로 ESG 교육을 시행하고, ESG 실무 협의체를 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주요 대중음악 차트인 써클차트(구 가온차트)는 올해 하반기 안에 환경오염을 최소화한 ‘플랫폼 앨범’ 차트를 신설할 예정이다. 해당 차트에는 재활용 소재로 만들어진 앨범만 집계된다. 써클차트 운영사인 한국음악콘텐츠협회 최광호 사무총장은 “세계 최초 친환경 음악 차트 개설 및 인접산업 분야 확산을 위한 행동 변화 캠페인을 실행, 지속가능한 발전 목표를 내재화 하겠다”면서 “업계와 협업해서 친환경 차트를 운영하다 보면 기획사를 운영하시는 분들도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 생각한다. 차트에서 높은 순위를 기록한 아티스트는 기후환경변화 대응에 동참한다는 이미지도 얻을 수 있으니 자연스럽게 참여도가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 플랫폼 앨범 관계자는 “기획사에서 친환경 앨범에 대한 논의를 시작한 건 수년 전부터 있었던 움직임이지만, 이런 논의에 따른 행동이 본격화된 건 올해부터다. 불과 지난해만 봐도, 전체 케이팝 음반 판매량 중 플랫폼 앨범은 약 3%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로 지속 성장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 보여주고 있는 노력과 움직임은 분명 미래의 케이팝을 위한 긍정적인 신호지만,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플랫폼 앨범 등 친환경 앨범을 제작하는 것을 넘어 음반의 복수 구매를 유도하는 기존의 판매 전략이나 음반 판매량으로 가수를 줄세우기 하는 문화 등이 개선되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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