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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권 정국] ② '거부권 끌어내기'…민주당의 노림수는 '총선 포석'


입력 2023.04.01 01:00 수정 2023.04.01 01:00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거부권 뻔한데 왜 절충조차 생략?

"고마움은 잊히지만 원한은 남는다"

거부권 행사시 특정 계층 분노 선동

1년앞 총선지형 미리 기울이는 포석

신경림 대한간호협회 회장과 간호대 학생, 간호사가 지난해 1월 국회 앞에서 의료법은 '일제의 잔재'라며 간호법 제정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간호법안은 직능단체 간의 극한대립이 중재·완화되지 못한 가운데, 소관 상임위에서 본회의에 직회부된 상황이다. ⓒ데일리안 신경림 대한간호협회 회장과 간호대 학생, 간호사가 지난해 1월 국회 앞에서 의료법은 '일제의 잔재'라며 간호법 제정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간호법안은 직능단체 간의 극한대립이 중재·완화되지 못한 가운데, 소관 상임위에서 본회의에 직회부된 상황이다. ⓒ데일리안

더불어민주당이 양곡관리법을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 행사가 뻔히 예상되는 상황에서 보란듯 단독 통과시켰다. 향후로도 간호법·노란봉투법 등이 같은 수순을 밟을 것으로 관측된다. 실제 시행이 목적이라기보다는 대통령의 거부권을 끌어내 1년 앞으로 다가온 총선 지형을 미리 유리하게 기울이려는 정교한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양곡관리법은 지난 2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앞서 이 법안이 본회의에 직회부된 이후 김진표 국회의장 주재로 박홍근·주호영 양당 원내대표가 수 차례 모여 절충을 시도했으나, '의무매입' 독소조항만은 안된다는 국민의힘의 반대를 끝내 무시하고 민주당이 단독 처리한 것이다.


헌법 제53조 2항은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을 규정하고 있다.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이라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국회로 되돌아간다. 되돌아온 법안을 재의하려면 같은 조 4항에 따라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해 민주당으로서도 의결할 수가 없다. 바꿔말하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그 법안의 공포·시행은 물건너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본회의 직회부 이후 김진표 의장이 상정을 미루고 양당 원내대표를 거듭 불러 중재한데 이어, 의장의 절충안까지 마련한 것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정치의 파국'으로 보고 이를 피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이를 피하려는 생각이 없는듯 '단독 통과'로 돌진했다.


이를 놓고 애초부터 대화와 타협, 토론과 절충을 통해 실제 시행될 수 있는 법안을 마련하기보다는 대통령의 거부권을 끌어내 총선을 앞두고 특정 유권자 계층을 선동하려는 재료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31일 데일리안과 통화에서 "내년 총선을 위한 것"이라며 "대통령이 양곡관리법에 거부권을 행사하면 '농민을 위해서 법안을 냈는데 국민의힘이 건의해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총선 때 심판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선동하기에 딱 좋은 법안"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내 돈 문제가 걸려있지 않은 법안은 민감도가 낮을 수 있는데, 이것은 자신의 돈 문제가 걸려있지 않느냐"며 "내가 농사 짓는데 남아돌아도 민주당은 시장가로 다 수매해주겠다는데 국민의힘은 반대다? 그러면 당연히 농심(農心)은 돌아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거부권 감수하고 양곡관리법 강행
"이해관계 걸려있어 법안 민감도 높아
'남아도 시장가로 다 수매하려 했는데
대통령이 거부' 선동하면 농심 돌아서"


전국민주노동조합연맹 조합원들이 지난해 11월 국회 앞에서 '노조법 2·3조(노란봉투법) 개정 민주노총 결의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전국민주노동조합연맹 조합원들이 지난해 11월 국회 앞에서 '노조법 2·3조(노란봉투법) 개정 민주노총 결의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간호법과 노란봉투법도 비슷한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지적이다. 간호법은 복지위에서 본회의 직회부를 의결해 양곡관리법과 유사한 수순을 밟고 있다.


간호법 제정에 대해서는 대한간호협회는 찬성인 반면 대한간호조무사협회·대한방사선사협회·대한응급구조사협회·대한의사협회·대한치과의사협회·한국요양보호사중앙회 등은 반대라 직능단체 간의 극렬 대립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작정 본회의에 직회부하는 것은 사회적 갈등을 중재하고 완화해야할 대의대표의 역할 방기라는 비판이 나온다.


국민의힘 의원실 관계자는 "민주당으로서는 실제 통과시켜 반대 직역인들의 앙심을 사느니, 대통령 거부권만 행사시키는 게 본 목적일 것"이라며 "고마움은 빠르게 잊히는 반면 원한은 오래도록 남는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간호사들의 분노를 자극해 총선 때 투표소로 나오도록 만드는 게 의도가 아닌지 의심된다"고 말했다.


노란봉투법도 본회의 직회부가 예고된 상황이다. 지난달 21일 국민의힘의 반대를 무릅쓰고 환노위에서 통과돼 법사위로 넘어갔다. 법사위에서 60일을 초과해 계류하면, 환노위에서 '본회의 직회부'를 할 수 있다. 날짜 요건을 채우는대로 본회의 직회부를 강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란봉투법은 불법파업에 대해서도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불법에 대한 합법적 대응을 법으로 막는다'는 것이다.


법사위 소속 의원실 관계자는 "노란봉투법 같은 경우에는 위헌 소지가 상당해 이것을 검토하고 수정해야 하는 게 법사위의 역할이지만, 야당은 60일만 채우면 바로 본회의에 직회부할 분위기"라며 "대통령 거부권만 끌어내고 빠질텐데, 어차피 시행되지도 않을 법의 위헌 시비가 무슨 상관이냐는 생각인 듯 해서 황당하다"고 토로했다.


노란봉투법을 강력히 찬성하는 양대노총의 조합원은 210만 명에 달하는데다 이른바 '조직화된 유권자'다. 지역구에 따라 내년 총선 당락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노조 회계투명성 강화 규정을 담은 노조법 개정안을 국민의힘이 발의할 의원 10명도 못 채워서 쩔쩔 매다가 원내대표단이 나서면서 겨우 발의 요건을 채울 조짐인 게 이들 '조직화된 유권자'의 영향력을 방증한다.


노란봉투법을 일단 본회의에서 통과시키되 대통령의 거부권을 끌어내 시행이 무산된다면, 양대노총 조합원들을 분개하게 만들 수 있고 법안의 위헌 시비로부터는 자유로워진다.


장성철 소장은 "노란봉투법도 노동자들을 분노하게끔 해서 투표장으로 나가게 하려는 것"이라며 "내년 총선을 위해 특정 이익계층을 타겟으로 하는 '타겟형 법률'이라 본다"고 분석했다.


"농민·간호사·노조 조합원…분노시켜
투표장 나가게 하려는 '타겟형 법안'"
'의회민주주의 파괴 폭거' 대응 먹힐까
"패트 때 국민이 심판할줄 알았는데"


문희상 국회의장이 지난 2019년 12월 국회 본회의에서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격렬한 항의속에 선거법 개정안 가결을 선포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문희상 국회의장이 지난 2019년 12월 국회 본회의에서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격렬한 항의속에 선거법 개정안 가결을 선포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문제는 이런 의도를 뻔히 알고 있더라도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을 수도 없다는 점에 있다.


양곡관리법은 비슷한 제도를 시행했던 태국에서 국가재정 파탄을 일으켰던 적이 있다. 간호법은 의료현장에서의 직역갈등 촉발이 우려된다. 노란봉투법은 위헌 시비가 있는데다 기업활동을 위축시키고 불법파업을 조장할 염려가 있다. 그야말로 '눈뜨고 당하는 셈'이다.


국민의힘은 상임위에서 민주당 출신 무소속 의원들을 포함시켜 안건조정위를 구성해 '꼼수 통과'를 시키고, 본회의 직회부를 강행하는데다, 본회의에서마저 다수당 의원들만의 표결로 단독 통과를 시키는 일련의 과정을 '의회민주주의 파괴 폭거'로 보고, 연일 총선에서 국민들이 심판해줄 것이라고 외치고 있다.


하지만 국회에서의 입법 절차 문제에 총선 때 유권자들의 표심이 실제로 예민하게 반응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견해도 제기된다.


20대 국회 때 '선거법·공수처법 패스트트랙 사태'를 겪었던 국민의힘 전직 의원은 "복도에 드러누워 막고 본회의장에서 문희상 의장의 구둣발에 짓밟히면서 절규할 때, 틀림없이 몇 달 뒤의 총선에서 국민들이 심판해주실 줄 알았다"면서도 "총선 결과는 '폭망' 아니었느냐. 안타깝지만 의회에서의 절차 문제가 국민들의 표심을 직접적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게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장성철 소장은 "'타겟형 법안'은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들에게 크게 다가오게끔 설계된 법안"이라며 "단순하게 생각해서 거부권만 행사하고 있다가는 국민의힘이 옴팡 뒤집어쓴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유권자 만나고 다니면서 '당신들을 위해서 법안 하려고 했는데 국민의힘이 반대했어요'라고 선동하는데, 그 앞에 대고 '예산이 더 들어가서 안했거든요?' 하면 통하겠느냐"며 "하물며 의회 절차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은 다 필요없는 말"이라고 말했다.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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