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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위대한 알코올중독자’<18>] 도반


입력 2022.07.01 14:01 수정 2022.07.01 10:21        데스크 (desk@dailian.co.kr)

<작가 주> 우리나라는 음주공화국이라 할 만큼 음주에 관대한 사회입니다. 반면, 술로 인한 폐해는 매우 심각합니다. 주취자의 강력범죄가 증가하고 알코올중독자가 양산됩니다. 평화로운 가정과 사회가 풍비박산나기도 합니다. 술 때문에 고통 받는 개인과 가정, 나아가 사회의 치유를 위해 국가의 음주·금주정책이 절실하게 요청됩니다. 술은 야누스의 얼굴을 가졌습니다. 항상 경계해야 하는 마음으로 이 소설을 들려드립니다.


ⓒ

제18화 도반


삼겹살집으로 들어가 도반이 주문을 하는 동안 나는 검은 비닐봉지를 풀었다. 그리고는 먹다 남은 막걸리를 물컵에 부어 원샷으로 들이켰다. 다시 얼굴 쪽으로 피가 쏠리는 기분이었다. 곧이어 상이 차려졌고 삼겹살 오인분이 위풍당당한 자태를 뽐내며 탁자 위에 올라왔다.


“안녕하세요.”


구운 고기를 먹기 좋게 가위로 잘라놓고 있을 때 선술집 선배 부인이 딸과 함께 들어섰다. 단아한 모습을 지닌 부인은 슬로우 스타일이었고, 새침데기 딸은 뭘 하는지 휴대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딸은 엄마가 챙겨주는 고기를 날름날름 받아먹는 와중에도 손가락으로는 열심히 폰을 두드리고 있었다.


“술친은 속세에 있고 도반은 출가한 사람이야. 즉, 술친은 현실에 안주해서 술을 마시고 도반은 현실을 초월해서, 물론 남들 눈엔 등한시하는 걸로 보일 수도 있지만, 음주하는 존재라 할 수 있어.”


나는 막걸리를 다 마시고 소주를 탐하기 시작했다.


“많이 먹어라. 오늘 새벽까지 일했다. 돈 좀 벌었어.”


도반이 내게 양껏 술을 따라주며 말했다. 나는 다시 한 번 미안해지려는 마음을 가누며 계속 말했다.


“내가 자네에게 절교를 선언한 건 우리가 술친구였다는 방증일세. 술친구는 서로 예의를 차려야 하는 사이거든. 물론 술친구 이전에 이미 친구니까 어느 정도의 무례는 우정이란 이름으로 용인되겠지. 하지만 그게 도가 지나치면 서로 정이 떨어지고 급기야 등을 돌리게 되는 거야.”


“자네 역시 내가 볼 땐 도가 많이 지나쳤었어. 하지만 내가 언제 그걸 탓한 적 있었냐?”

도반의 얼굴에서 여유가 묻어나왔다. 내 눈이 정확했다는 증거였다.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도반과 술잔을 부딪쳤다.


“술친은 단순히 음주하는 사람이야. 술을, 음주를 그냥 평면적으로 대하는 단계지. 현상으로 보는 거야. 그 이면에, 그 상층부에 뭐가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고 그냥 술이 좋아 마시는 거야. 그러니까 술친이 취해서 고성방가하고 필름 끊기고 나를 귀찮게 하면 우선 보기 싫은 거야. 왜냐하면 술친끼리는 이차원에 있으니까. 그래서 술을 신사적으로 먹어야 하는 사이인 게지. 젠틀하게 마셔야 사람대접 받게 돼.”


“그래, 술친은 이제 뭔지 알겠고, 도반이나 설명 해봐라.”


“도반은 말이야. 좀 전에 술친을 설명할 때 눈치 긁었겠지만 완전히 그 반대지. 술을 도의 경지에까지 끌어올린 사람이야.”


“그럼 내가 도인이냐?”


“도인인지는 모르겠고 어쨌든 술을 단순한 음주단계에 놔두지 않고 수행의 한 단계로 인식하고 행하고 있다는 거야.”


“술친이었다가 도반이 되었다? 어쨌든 갖고 놀다 제자리나 갖다 놔라.”

선술집 선배 부인과 딸은 된장찌개를 시켜 먹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딸은 촐랑거리며 먼저 식당 문을 나섰고 선술집 선배 부인은 정중하게 인사한 다음 기품 있는 걸음걸이로 천천히 식당을 빠져나갔다.


“돈도 없을 텐데 선배가족 식사까지 챙기냐?”


“어차피 선배 부르려고 전화했는데, 없으면 가족이라도 불러 대접해야지.”


나로 말미암은 자리에서 도반의 지출 규모가 커진 것을 염려했지만 도반은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나는 다시 한 번 내 안목에 대한 자부심을 가졌다.

“내가 자넬 술친에서 도반으로 격상시킨 이유가 있어.”


“뭔데?”


“첫째 내가 음주를 수행의 한 단계로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인데, 그러다보니까 비로소 자네가 보이기 시작한 거야. 그전 같으면, 다시 말해서 술친이었으면 내가 자네를 결코 이해할 수 없었을 일이….”


“무슨 일?”


“술 때문에 패가망신했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래도 여전히 자넨 술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 이걸 내가 비로소 보게 된 거야.”


“내가 술 못 끊는 건 다른 거 없어. 소견머리가 없어 그런 거지.”


“단순히 소견머리 없다는 걸로는 설명이 안 돼. 내가 질문할 테니까 진지하게 대답해 보라고.”


내 말에 도반이 정색하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술을 마시는 이유가 뭐지.”


“술을 마시는 이유라?”


도반이 술잔을 입에 가져가며 골똘히 생각했다.


“술이 있기 때문에 술을 마시는 게 아닐까 생각해.”


“산이 거기 있어 산을 오른다는 어느 등반가의 말이 떠오르는군.”


“그걸 아주 조금 패러디했어.”

도반이 오른손 검지 한 마디를 까 보이며 눈을 찡긋했다.


“술이란 게 자네도 알다시피 처음엔 즐거움을 주지만 이후엔 고통을 준단 말이야. 육체와 정신, 가정과 직장생활, 그리고 경제적 압박까지, 술로 인한 고통은 넓고 깊게 자리하거든.”


“그렇지.”


“그런데도 다시 술을 입에 대고 스스로 고행에 들어서는 게 바로 도반의 모습이라는 거지.”


“보기에 따라선 수행자가 아니라 알코올중독자로 보일 수도 있겠는데?”


“음주수행자와 알코올중독자 사이의 거리는 사실 한 뼘도 안 돼.”


나는 술잔을 입에 털어 넣고 말을 이었다. 도반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잔을 채워주었다.


“영국의 심리학자 대니얼 네틀이 쓴 ‘성격의 탄생’이란 책이 있어. 거기서 저자는 인간의 성격을 외향성, 신경성, 성실성, 친화성, 개방성 이렇게 5가지로 나눠놨지. 내가 말하려는 건 개방성인데 이게 뭐냐 하면 ‘문화성’, ‘지성’ 혹은 ‘경험에 대한 개방성’ 등으로 불리기도 하고, 또한 독창성, 예술성과도 관련이 있어. 개방성이 높은 부류는 시인이나 예술가 집단이야. 이들은 서로 다른 인식영역들이 개방되어 자유롭게 소통 가능한데, 바로 광범위한 인식 및 연상 능력이 있다는 게지. 또 개방성에는 영적인 부분, 초자연적인 믿음도 존재해. 그러니까 시인들만 개방성이 높은 게 아니라 무당이나 주술사도 마찬가지지. 광범위한 연상에다가 주기적으로 환청을 듣거나 특이한 믿음을 가지고 있고, 저 우주의 중앙컴퓨터에 접속했다고 느낄 정도로 접신의 경지에 이른 사람들이야. 그리고 개방성이 높은 사람은 규범과 인습에 대하여 부단한 저항을 하지. 어때. 문학, 예술 하는 사람들 대부분 체제순응을 잘 못하잖아.”


ⓒ

박태갑 소설가greatop@hanmail.net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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