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반복되는 원유가 협상 갈등...식품가격 인상 도화선될까

임유정 기자 (irene@dailian.co.kr)

입력 2022.06.27 06:43  수정 2022.06.24 17:36

낙농가 vs 유가공업체…‘용도별 차등가격제’ 놓고 대립

원유가격 조정은 유제품 전반에 영향 미치는 핵심요인

식품업계 전반적으로 걱정…“정부가 타협점 마련해야”

서울 대형마트에서 한 시민이 우유를 고르고 있다.ⓒ뉴시스

낙농가와 유가공 업계가 내년도 원유(原乳) 가격 산정 체계를 놓고 입장차를 좁히지 못한 채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장기화 될 경우 관련 물가 상승이 불가피해 그 피해가 식품업계 전반은 물론 소비자들에게까지 고스란히 돌아갈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낙농진흥회의 ‘원유생산 및 공급규정’에 따르면 낙농가와 유가공 업체는 통계청의 농축산물생산비조사 발표 이후 1개월 내에 원유기본가격조정협상위원회를 꾸리고 협상을 마쳐야 한다. 올해 통계청은 지난해 우유 생산비를 전년 대비 4.2% 증가한 ℓ당 843원이라고 했다.


통계청이 내놓은 우유 생산비 증감률이 ±4% 이상이면 해당 연도에, ±4% 미만이면 2년마다 원유 생산자인 낙농가와 수요자인 유업체가 협상을 통해 가격을 정한다. 양측 합의안이 낙농진흥회 이사회를 통과하면 그해 8월1일부로 조정된 원유가격이 적용된다.


원유 기본 가격 산출식에 따라 올해 1ℓ당 인상 폭은 47∼58원이다. 그러나 양측은 아직 협상 테이블에 앉지도 않았다.


일반적으로 상품의 가격은 공급과 수요에 따라 시장에서 결정되지만 시장 상황보다 생산비에 근거하는 이유는 낙농가 보호 때문이다. 낙농가의 생산비를 원유가격에 탄력적으로 반영해 농가를 보호하고 유가공업체와의 갈등을 줄이자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원유 가격을 둘러싼 진통은 매년 있었지만, 올해는 유독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낙농진흥회에서 낙농가와 유업체, 정부 등이 논의를 하는 원유기본가격조정협상위원회 구성 자체가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유가공협회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유가공협회가 불참 의사를 고수하는 것은 낙농가의 반발로 정부가 지난해 발표한 용도별 차등가격제 논의에 진척이 없다는 이유가 크다. 국민 1인당 우유 소비량이 줄어들고 있는 만큼 치즈 등을 만드는 가공유용 원유 가격을 내려 제조업체의 부담을 덜어주자는데 목적이 있다.


유가공협회 관계자는 “출산률이 감소하고 해외시장이 개방되면서 저가의 수입제품이 많이 들어오는 등 시장이 변하고 있다”며 “낙농가와 가격 협상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 과거 비합리적인 구조가 아닌 새로운 방식을 통해 논의를 하자는 것에 방점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원유가연동제는 낙농가들 입장에서는 굉장히 좋은 제도겠지만, 이를 보존하기 위해 유업체들이 방패막이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의 경영환경은 갈수록 굉장히 어려워지고 있다”며 “낙농가가 너무 대화와 타협이 아닌 자신들의 입장만 고수하고 있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서울의 한 대형마트 매대에 진열된 우유.ⓒ뉴시스

제조사 역시 이번 원유 가격 결정 논의에 앞서 시장의 기능을 왜곡하는 ‘원유가격연동제’를 시장 상황에 맞춰 개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행 원유가격연동제는 원부재료 등 낙농가의 생산비만 연계돼 있고, 실제 소비자의 수요 등 소비량과 시장 물가는 반영되지 않아서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원유가연동제는 시장과 무관하게 상승하는 경직된 원유가격구조를 초래하기 때문에 폐지돼야 한다”면서 “낙농진흥회 이사회 구성 개편 역시 중요하다. 생산자 측 이사 7인이 모두 불참하면 이사회 개회는 물론 안건 심의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반면 낙농가는 기존 생산비 연동 체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젖소를 키우는 데 필요한 사료 가격이 폭등하는 상황에서 가공유용 원유 가격마저 내리면 생산 기반이 무너지고 생존 위기에 내몰린다는 이유에서다.


낙농업계 관계자는 “지난 5년간 낙농가 수취가격은 오르지 않았지만 우유 출고가는 4.8%, 소비자가격은 6.7% 인상됐다”며 “미국, 유럽 등 주요 유가공품 수출국과의 FTA 체결로 문을 다 개방해놓고 그에 따른 부담을 왜 낙농가에게 지라는 건지 모르겠다”고 날을 세웠다.


이어 “사료값 폭등, 사육기반 붕괴로 낙농가들은 막다른 길목에 놓여 심각한 연쇄도산이 우려된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낙농가의 투쟁 강도는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며 “연동제 근간이 유지되고 낙농 기반 유지대책이 수립될 때까지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 내 빵집에서 고객이 빵을 사고 있다.ⓒ뉴시스

양측 대립에 식품업계는 긴장하고 있다. 낙농가와 유업계 간 원유가격 조정은 유제품 가격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 요인이다. 일반적으로 원유를 매입해 흰우유 혹은 치즈·생크림 등 유제품을 생산하는 유업체들이 소비자 판매가격을 조정하는 구조다.


우유 가격이 오르면 우유를 원료로 하는 빵, 과자, 커피, 분유, 아이스크림 등의 가격이 줄줄이 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원유가격의 인상 여파는 유제품 가격에만 미치지 않고 연관된 식음료 산업에도 영향을 미쳐 소비자의 부담도 그만큼 늘게 된다.


특히 올해는 밀가루, 설탕 등 원재료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어 원가 부담이 더욱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제과업계의 경우 액란류, 유지류, 전분당 등 주요 원재료 가격 상승을 이유로 올해 줄줄이 가격 인상을 단행한 바 있어 추가 인상이 우려되고 있다.


우유 가격이 오르면 카페 업계도 덩달아 비상이 걸릴 예정이다. 커피 최대 산지인 브라질의 기상악화로 원두 생산량이 급감해 원두 가격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데다, 주 원료인 우유 가격까지 올라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다는 게 관계자의 전언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업계서는 정부가 나서서 이 상황을 하루빨리 중재하고 타협점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연중 행사처럼 양측이 ‘벼랑 끝 대치’를 이어가고 있지만 이를 나서서 해결해야 할 정부는 여전히 뒷짐을 진 채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어서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뒷짐만 지고 있을 것이 아니라 타협점을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물가 인상은 또 한번 가속화될 것"이라며 "우유가격 상승을 부추기는 원유가격연동제에 대한 개편이 이뤄져야 유업체들의 부담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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