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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막 마케팅?②] ‘트렌드’라면 무조건 OK? 언어 훼손·파괴 심각


입력 2022.06.06 14:00 수정 2022.06.05 14:01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신조어 남발에 의도적인 오류 표기까지...자막 문제 심각

"방송 언어 파괴·훼손, 세대 간 단절 불러"

방송을 포함한 영상 콘텐츠에서 자막 사용이 일반화되고, 하나의 콘텐츠 마케팅 도구로서 활용되기 시작하면서 방송 언어의 훼손, 파괴의 정도 또한 심각해지고 있다. 각종 예능프로그램은 물론, 범위를 넓혀 어린이 프로그램이나 교양, 드라마 심지어 시사토크쇼까지 장르를 불문하고 국적 불명의 언어들이 넘쳐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신서유기' 방송 화면 ⓒtvN '신서유기' 방송 화면 ⓒtvN

방송통신심위원회(이하 방심위) 산하 방송언어특별위원회는 방송언어 순화와 개선에 대한 자문 등을 수행하면서, 월 1~2회 방송언어 조사 보고서를 발표하고 이를 매년 자료집으로 발간해 유관기관․단체 및 사업자 등에 배포하고 있다. 올해 자료집에서 방심위는 통신언어와 신조어 사용의 남발, 무분별한 외국어 오남용 문제, 제작진의 의도적 표기 오류, 비속어와 폭력적 언어 사용을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았다.


자료집에 따르면 특히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최근 3년간 영어 자막 사용이 급증했다. 지난해 상반기 프로그램당 영어 자막 노출 횟수가 평균 68.2회로 나타났다. 이는 전년(2019)년에 비해 20건 넘게 평균 횟수가 증가한 수치다. 2019년 상반기 평균 47.9회였던 프로그램당 영어 자막 사용 횟수는 2020년 상반기 57회를 기록했다. ‘야이c’ ‘스파rrr타’ ‘RGRG’ ‘hoxy’ 등이다. 특히 이런 영어 자막에는 욕설과 관련이 있는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신조어 사용, 의도적인 표기 오류도 문제로 지적된다. TV 프로그램의 제작진 및 출연자는 프로그램의 재미를 위해 기존의 신조어를 사용하거나 새로 만들어 사용하기도 한다. 이렇게 사용된 신조어들은 불특정다수의 시청자들에게 전달된다. 그러나 이에 익숙지 못한 연령층에게는 이해가 어렵다는 점에서 시대 간 격차를 유발하고 사회적 소통에 어려움을 안긴다는 우려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실제 방심위 조사 결과 2020년부터 1년 반 동안 조사된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머쓱햇’ ‘OO둥절’ ‘먹OO’ ‘라떼력’ ‘줍줍’ ‘부찌’ 등 한 프로그램 당 약 75건의 신조어를 사용했고, ‘뙇!’ ‘어뭬리카 베뤼 골져스!’ ‘주거써!’ 등 의도적인 표기 오류도 프로그램 당 11건(지상파)에서 47건(기타 케이블)에 이른다.


방송언어특별위원회 최병찬 위원장은 “방송언어 훼손, 파괴 문제는 제작자들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노인세대의 소외와 함께 세대 간 단절을 가져오고 있고, 청소년 세대에겐 잘못된 언어 습관을 주입하는 역기능을 한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특히 SNS와 외국어에 취약한 노인층은 방송 시청에서 주변인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고 방송을 언어사전과 국어 교과서로 알고 있는 청소년층은 이런 언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그것을 다시 SNS나 실생활에서 재확산시키고 있다”며 “(방송 언어 훼손, 파괴를) 폭력성이나 선정성 보다 결코 가벼이 봐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꼬집었다.


저널리즘 토크쇼Jⓒ KBS추적 저널리즘 토크쇼Jⓒ KBS추적

비교적 규제로부터 자유로운 유튜브나 OTT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심지어 방송사의 유튜브 콘텐츠에서도 ‘뽐뿌’ ‘쳐맞다’ ‘ㄴㄴ’ ‘ㄷㄷ’ ‘줍줍’ ‘국뽕’ ‘고소각’ ‘꼰대’ ‘ㅅㅂ’ ‘어이 털리다’ 등 자극적인 썸네일과 자막은 쉽게 볼 수 있다. 유튜브 콘텐츠의 주 소비층인 젊은 세대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려는 방법이라고 하지만, 방송사가 나서서 자극적인 용어 사용을 따라가는 것이 맞냐는 비판도 잇따른다.


한 예로 미디어비평 프로그램 KBS1 ‘저널리즘 토크쇼J’는 유튜브 썸네일에 신조어, 욕설 등 부적절한 단어들을 자주 사용하고 있다. 63회 라이브 ‘이재갑 비선 논란 퍼나른 안철수에 일침 폭격하는 갓유정’ 영상 썸네일에는 ‘이재갑 보낸 안철수 역관광’이란 자막과 함께 얼굴에 멍이 든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얼굴이 등장했다.


‘역관광’은 게임에서 사용되던 용어로 상대방을 공격했을 때 본인이 되레 당하는 상황을 뜻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2016년 ‘스브스뉴스’ 보도에 따르면, ‘역관광’의 유래는 ‘역강간’이다. 미국, 영국 게임 이용자들 사이에 비속어로 쓰이던 ‘강간당했다’(RAPED)가 한국으로 전파되면서 ‘강간’이란 단어가 일부 채팅창에서 사용이 금지돼 ‘역관광’이란 말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저널리즘 토크쇼J’ 측은 논란을 인지한 뒤 곧바로 수정했다.


한 유튜브 편집자는 “유튜브 콘텐츠는 영상의 재미도 물론 중요하지만 자막이 큰 힘을 발휘한다. 많은 구독자들이 자막을 통해 그 콘텐츠의 소비 여부를 결정한다. 때문에 더 자극적이고, 웃긴 자막을 달면서 채널의 경쟁력을 높이는 경우가 많다”면서 “하지만 과한 욕심은 결국 화를 부르기 마련이다. 지나친 언어 파괴나 특정 커뮤니티의 언어를 사용하는 등 과한 설정은 언젠가 독이 되어 돌아올 것”이라고 꼬집었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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