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나라, 박정희>박 전대통령 애창곡 금지 사실 모른듯
문화예술의 규제-탄압-저항은 사회발전의 필연적 마찰 과정
노래는 가락의 언어(言語)이다. 가장 원초적인 희로애락의 커뮤니케이션으로 국경과 인종을 초월한다.
노래를 좋아하고 즐기는 것은 국가 지도자들이라고 해서 별다르지 않다. 각국 원수들은 어떤 노래를 좋아할까.
아시아 전-현직 국가 원수들의 애창곡을 보도한 외신을 보니 미국의 흘러간 팝송이 단연 인기였다.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와 인도네시아의 메가와티는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 웨이’를 애창하고, 필리핀의 아로요는 카펜터스의 ‘난 너를 갖고 있어(I Have You)’를 잘 부른다고 한다.
일본의 고이즈미는 2006년 미국을 방문해 엘비스 프레슬리의 고향까지 찾아가 ‘러브 미 텐더’를 부를 정도였고, 일찍이 1979년에 미국을 처음 방문했던 중국 덩샤오핑이 역시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었다. 그후 장쩌민도 미국 클린턴을 만나 ‘러브 미 텐더’를 불렀다고 하니 외교를 위한 ‘립서비스’로 노래만한 것도 없는 모양이다.
그런데 한국 대통령들은 좀 다르다. 외신이 보도한 김영삼과 김대중의 애창곡은 ‘선구자’였다.
어지간히도 노래를 즐기는 우리네 한국사람들인지라 역대 대통령들의 애창곡도 우리 언론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언론 보도를 보면 최규하는 노래를 즐기는 편이 아니었으나 ‘비 내리는 고모령’을 가끔 불렀고, 전두환은 애창곡인 ‘방랑시인 김삿갓’을 ‘…전사갓’으로 바꿔 불러 자신의 백담사 생활을 자조적으로 풍자했다고 한다.
노태우는 ‘베사메무초’를 즐겨 불렀으며, 김영삼과 김대중은 ‘선구자’ 외에 각각 ‘메기의 추억’과 ‘목포의 눈물’을 곧잘 불렀다고 한다. 청와대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을 합창했던 노무현의 애창곡은 의외로 ‘울고 넘는 박달재’였고, 그리고 이명박은 유심초의 ‘사랑이여’라고 한다.
한국 대통령들의 애창곡은 미국 편향적인 아시아 국가 원수들과 달리 대체로 ‘한국적’이다.
역대로 박정희만큼 술자리의 여흥을 노래로 즐긴 대통령도 없다. 술자리의 풍류는 국가경영의 고독한 정열로부터 해방된 큰 위안이고 윤활유 같은 것이었다.
그의 애창곡 ‘황성옛터’, ‘짝사랑’은 널리 알려져 있다. 역시 느릿한 가락에 애잔한 감정을 풍부히 삭이고 풀어내는 흘러간 노래들이다. 그는 ‘동백아가씨’ 같은 당시의 신곡도 좋아했다.
그런데 박정희 시대의 노래에는 ‘금지곡’이라는 그늘이 드리워 있다.
대표적인 금지곡이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다. 그래서 대중에게는 못듣게, 못부르게 하고 권력자는 멋대로 부른다며 이중성을 비난하는 소리가 적지 않았다.
1960년대 중반 노래가 나온 지 얼마 안되어 방송윤리위원회로부터 금지곡 딱지가 붙어 1984년에야 해금이 되었으니 가수에게는 그만큼 한맺힌 노래도 없다.
금지곡이 된 이유에 대해 “경제건설에 박차를 가해야 할 시기에 애조 띤 노래가 국민교육상 좋지 않기 때문이었다”는 신문기사도 있었지만, 대체로 한일국교 정상화의 시기와 겹치던 정치외교적 배경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때는 끽소리 못하니까 대통령이 죽은 후 “박정희가 왜색가요라며 금지곡을 남발했다”면서 그 이유를 한일회담이 저자세 외교로 비춰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 또는 그 자신이 만주국 장교 출신이라는 ‘친일’의 약점을 지우기 위해서라고 말들을 했다. 한마디로 ‘동백아가씨’는 박정희가 금지시켰거나 적어도 박정희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금지곡인 ‘동백아가씨’를 이미자가 청와대 만찬에서 부르는 동영상을 KBS가 1995년에 방송한 적이 있다. 1979년 5월 후쿠다 전 일본총리의 방한을 기념하는 청와대 영빈관 만찬 장면이다.
“아니, 대통령이 금지곡을 즐기다니…….”
이런 소리가 당연히 나올 법했다. 대중에게는 듣지도 못하게 하면서 혼자 즐길 수 있는냐 하는 것이다.
이미자는 대통령이 ‘동백아가씨’가 금지곡인 줄 몰랐다는 말을 언론에 수차례 밝혔다.
한 기사를 보자.
“올해로 노래인생 40년째를 맞은 가수 이미자 씨(59)가 오랫동안 금지곡이었던 자신의 노래 ‘동백아가씨’와 고 박정희 대통령에 얽힌 비화를 공개했다. 이씨는 최근 녹화한 케이블TV Q채널의 대담프로 ‘김기평의 토크&토크’에 출연, ‘동백아가씨’가 금지곡으로 묶였던 시절 청와대 만찬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이 노래를 직접 불렀다고 밝혔다. 이씨는 박대통령은 애창곡 ‘황성옛터’와 함께 ‘동백아가씨’를 가장 좋아했다고 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동백아가씨’가 금지됐지만 대통령은 모르고 있었다며 일본 총리 등 외국 국빈이 올 때 청와대 만찬이 열리면 내가 많이 갔으며, 거기서 나는 ‘동백아가씨’를 부르기도 했다고 말했다.” (문화일보 1999년 10월4일)
박정희가 자신의 ‘친일 논란’ 때문에 ‘동백아가씨’를 금지시켰다거나 금지곡을 알면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즐겼다는 말들은 맞지 않는다.
박정희 시대는 먹고 살기 위한 몸부림의 세월이었다. 동네 확성기에서는 ‘새마을노래’, ‘잘살아 보세’ 같은 노래가 크게 울려퍼졌고, 라디오에서도 그에 버금가는 힘찬 건전가요들이 꽤 흘러나왔다.
박정희 전대통령과 악수하는 ‘국민가수’ 이미자. 1965년 5월 31일 동료 연예인들과 함께 파월장병을 위문하고 돌아와 청와대를 예방했다. 국가기록원에 소장된 박대통령 관련 사진 7만여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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