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나라, 박정희>마주앉은 사람에게 담배부터 권해
육영수 여사, 최불암에 전화 걸어 담배 좀 줄이세요 일화
시계, 열쇠, 돈지갑, 손수건, 수첩, 껌.
양복 속에서 나온 소지품들이다. 대통령 박정희가 마지막으로 입었던 양복이다. 이 중에서 껌은 금연 결심을 하고 담배의 공백을 대신 메우던 것이었다.
주머니 속에 은단을 갖고 다니는 경호원도 있었다. 대통령이 가끔 은단을 찾기 때문에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금연은 성공하지 못했다.
그는 젊어서부터 거의 줄담배를 피우다시피하는 골초였다. 해방 후 육사 교육을 받던 시절에는 배급 담배가 모자라 담배 안 피우는 동료가 주는 것으로 양을 채우기도 했다. 지독히도 많이 피웠다고 그를 아는 사람들은 말했다.
옛 시절 그의 고향집에는 다른 집에서 볼 수 없는 장면이 있었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담배를 권하고 같이 피웠다. 그의 어머니는 어린 시절에 할아버지의 담배 수발을 도맡아 하느라고 담뱃대에 불을 붙일 때마다 몇모금씩 빨다가 담배를 배우게 되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이런 어머니의 흡연 내력을 존중했다. 그때 소년 박정희가 보았던, 집에 돈이 없어 근심걱정으로 밤에 잠 못이루고 한숨과 함께 담배연기를 토하던 어머니 모습은 오랜 세월이 흘러도 잊혀지지 않는 선명한 그림으로 남아 있었다.
젊은날의 박정희는 까무잡잡한 얼굴에 욕구불만을 억누른 눈동자는 불꽃을 튀기고, 말이 없는 그 입에 오직 담배만이 물려 있었다.
청와대에서도 늘 마주앉은 사람에게는 담배부터 권했다. 그리고 라이터 불을 붙여주는 다정다감한 대통령을 회고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러나 부인 육영수는 남편의 지나친 흡연을 방관할 수 없었다. 남편이 담배를 태우면 속이 타는 것은 부인이다.
박정희는 가족과 함께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화면 속의 인물이 담배를 피우면 그냥 넘기지를 못하고 주머니의 담배를 꺼냈다. 인기 드라마 ‘수사반장’의 주연 배우 최불암이 버버리코트 차림에 담배를 피우는 장면은 남정네들의 흡연 충동을 일으키는 데 더할나위없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만했다.
최불암이 전하는 이야기가 있다.
1973년의 어느 일요일 저녁, ‘수사반장’이 방영되는 시간에 최불암은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어디선가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셨어요? 저 육영수입니다.”
그 소리에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대통령 부인은 ‘수사반장’ 드라마를 이야기하려는 것이었다.
“아이고, 담배를 많이 피우시네요.”
당시는 배우들이 담배를 멋지게 피우는 것이 빼놓을 수 없는 연기인지라 최불암은 은근히 기분이 좋았다.
“네, 넉 대를 태웁니다.”
드라마 한편에 담배 피우는 장면이 네번 설정되어 있어 그렇게 말했다. 그는 대통령 부인이 드라마에서 형사반의 박 반장인 자기의 연기를 칭찬하는 줄 알고 있었다.
“담배 태우시는 건 드라마에서 속상할 때 연기하시는 거니까 그런 줄 압니다. 이 양반도 담배를 많이 피우시는데 텔레비전의 박 반장이 담배 태우실 때 꼭 따라 피워요.”
그때 옆에서 남자의 웃음소리가 났다. 귀에 익은 음성이라 옆에 대통령이 있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대통령 부인의 사근사근하고 약간 조심스러운 듯한 말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이 양반 피우는 건 괜찮아요. 이쪽은 상관없는데, 인기가 높으신 분이라 드라마에서 속상해서 담배를 피우실 때마다 국민이 모두 속상하게 따라 피울 것 같아요. 건강이 좋아질 리가 있겠습니까.”
그제서야 최불암은 가슴이 뜨끔했다.
“아이고, 좀 줄이시면 좋겠네요.”
1968년 9월 호주를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이 고튼 호주 수상에게 담배를 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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