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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명대사㉓] 이별의 원형, 이별의 정석(스물다섯 스물하나)


입력 2022.04.22 11:07 수정 2022.04.22 11:07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고쳐 쓴 이별의 표정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홈페이지 고쳐 쓴 이별의 표정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홈페이지

비슷한 사람과 사랑에 빠지고 비슷한 습성과 행태로 사랑하곤 하는 ‘사랑의 원형’이 있듯 이별에도 원형이 있는 걸까.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제혁(박해수 분)과 지호(정수정 분)가 헤어졌던 이유를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 똑같이 마주하며 든 생각이다.


이별의 현실 ⓒ출처=네이버 블로그 alchemist_s 이별의 현실 ⓒ출처=네이버 블로그 alchemist_s

스타 투수 김제혁은 경기에 지면 연락 두절이 된다. 힘들면 동굴 속으로 숨는다. “나 힘들다고 너까지 힘들게 하기 싫었어”가 남자가 동굴에서 나와 내놓는 해명이다. “나도 힘들면 아무도 안 만나고 싶고, 아무 얘기도 하기 싫어. 그래도 난 그때도 오빠 생각, 나던데. 난 만날 만날 오빠 생각나고 신경 쓰이고 그러는데, 오빠는 안 그런가 봐”. 기쁨도 절망도 함께 나누고픈 여자, 김지호의 말이다.


꼭 남녀의 문제는 결코 아니다. 사회 통념에 비춰 써지고 수적 대다수를 시청자로 하는 드라마이기에 대표된 인물들이다.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 힘들면 동굴로 들어가는 이는 백이진(남주혁 분)이다. 대신 우리의 나희도(김태리 분)는 처음부터 이별을 말하진 않았다. ‘너의 기쁨도 슬픔도 행복도 절망도 다 내 거’라고 따뜻하게 말하며 이진을 품에 안았다.


이별의 고비를 넘기는 순간. 사랑이 두터워질 때, 이별을 잉태할 때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홈페이지 이별의 고비를 넘기는 순간. 사랑이 두터워질 때, 이별을 잉태할 때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홈페이지

“너는 힘들면 힘들수록 숨는구나. 연락은 다 피하고 여기서 이러고 있을 줄은 몰랐네.”


“여자친구로서 내가 충고 하나는 해야겠어. 나는 네 거 다 나눠가질 거야. 슬픔, 기쁨, 행복, 좌절, 다. 그러니까 힘들다고 숨지 말고 반드시 내 몫을 남겨 놔. 네가 기대지 않으면 나 외로워. 우리 힘들 땐 같이 힘들 자. 혼자서 외로운 것보다 백배 나아, 그게.”


그런데 왜 헤어졌을까. 결국은 또, 힘들 때 동굴로 들어가서다. 자신의 힘겨움이 사랑하는 이에게 옮을까 봐 스스로 격리해서다. 분명 희도가 슬픔과 절망도 내 몫을 남겨 달라고 나눠 갖자고 했고, 지호 역시 “왜, 내 생각까지 오빠가 해. 내 생각은 내가 알아서 하게 둬”라며 나를 위해 당신이 숨었다는 말은 핑계라고 선명히 했건만 소용이 없다.


고쳐 쓰기 전 이별의 모습 ⓒ출처=네이버 블로그 tasha0828 고쳐 쓰기 전 이별의 모습 ⓒ출처=네이버 블로그 tasha0828

희도: 더 이상 이 관계가 나에게 힘이 되지 않아. 서로 미안해하면서 서로를 갉아먹는 거 그만하고 싶다. 우리 서로에게 중요한 사람이잖아.

이진: 할 수 있겠어? 우리 헤어지는 거。

희도: 이미 하고 있었어, 우리. 오다가다 인사하면서 지내자.

이진: 이거 맞아, 우리?

희도: 맞아. 난 6개월을 생각했어. 넌 6개월 동안 뭐했니? 우리 멀어져 갈 동안 뭐 했냐고. 모른 척했잖아!

이진: 나 힘든 거 너에게 옮기기 싫었어. 서운하게 해서 미안한데 난 내 나름대로 죽을힘을 다해 버텼어. 멘탈 나가더라. 죽어가는 사람들 앞에서 널 보고 싶다는 감정도 사치 같았다. 징징거리고 싶지 않았어.

희도: 우린 좋을 때만 사랑이야. 힘들 땐 짐이고. 우린 이런 사랑하면 안 됐던 거야. 할 줄도 모르면서 겁도 없이 덤볐어!


“둘이 있을 땐 아무도 몰래 잠깐만 행복하자” ⓒ이하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홈페이지 “둘이 있을 땐 아무도 몰래 잠깐만 행복하자” ⓒ이하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홈페이지

사실 드라마에서 한 번에 주고받은 대사가 아니다. 이어보니 자연스레 이어진다. 현실의 이별과 똑같다. 중간중간 각자의 일상이 섞이고 감정이 더욱 꼬이며 점점 멀어져가고, 이별의 독설은 점점 독해진다. 현실은 이대로 끝이지만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이별을 고쳐 썼다. 드라마는 판타지니까.


시간이 한참 지나 우리가 상상 속에서 하고 싶었던 일, ‘에이, 그때 그렇게 아픈 말은 하지 말고 헤어질걸’을 ‘스물다섯 스물하나’가 해냈다. 이별을 되돌리자는 건 아니지만, 바로 아프게 헤어졌던 그 터널에서 아름다운 ‘이별의 정석’을 보여주었다.


터널이어야 했다. 이별한 장소이기도 했지만, 한밤 학교 수돗가에서 함박웃음 속에 둘만의 ‘청춘 분수쇼’를 펼치다 들킨 뒤 도망쳐온 장소였다. 아버지의 채권자들에게 빚을 갚지 못하는 대신 “한순간도 행복하지 않겠다”는 스물둘 이진에게 열여덟 희도가 “둘이 있을 땐 아무도 몰래 잠깐만 행복하자”고 말했던, 둘만의 비밀로 행복을 만들기 시작한 장소였다. 사실 마지막 말은 희도의 것이었지만 필자의 판타지로 고쳐 쓴다, 두 사람의 하모니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의 정석, 가장 좋았던 순간의 마음으로 이별하기 ⓒ 가장 아름다운 이별의 정석, 가장 좋았던 순간의 마음으로 이별하기 ⓒ

나희도: 너는 나를 존재만으로도 위로한 사람이었어. 혼자 큰 나를 외롭던 나를 따뜻하게 안아 준 사람이었어.

백이진: 너는 내가 가장 힘들 때, 날 일으킨 사람이었어. 네가 없으면 여기까지 오기 못 했을 거야.

나희도: 나도 나를 믿지 못할 때, 나를 믿는 너를 믿었어. 그래서 해낼 수 있었어.

백이진: 너는 나를 웃게 했고, 너랑 있으면 가진 게 없어도 다 가진 것 같았어.

나희도: 맞아. 어느 순간은 함께라는 이유로 세상이 가득 찼지.

백이진: 그래, 완벽한 행복이 뭔지 알게 됐어.

나희도: 너 때문에 사랑을 배웠고 이제 이별을 알게 되네.

백이진: 네가 가르쳐준 사랑이 내 인생을 얼마나 빛나게 했는지 넌 모를 거야. 정말 고마워.

나희도: 고마워.

함께: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어.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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