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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때문에?…'중고차 사기' 끝까지 외면한 정부 [박영국의 디스]


입력 2022.01.17 11:26 수정 2022.01.17 12:42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중고차 시장 사기‧강매 피해 속출…개방 요구 여론 높아도 3년 넘게 '버티기'

2020년 총선, 2021년 재보선, 2022년 대선까지 '여당 피해갈까' 결론 못 내

직무유기도 자꾸 하다보면 '내성' 생겨…6월 지방선거까지 미룰 가능성도

권칠승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2021년 12월 3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정례브리핑에 참석해 거리두기 강화에 따른 방역지원금, 손실보상금 등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권칠승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2021년 12월 3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정례브리핑에 참석해 거리두기 강화에 따른 방역지원금, 손실보상금 등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여당 대선 주자에게 유리한 돈 퍼주기는 ‘국민을 위한 일’이라며 만사 제쳐 두고 발 빠르게 집행하는 문재인 정부가 ‘국민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유독 꾸역꾸역 버텨가며 3년을 끌어온 일이 있다. 바로 중고차 시장 개방 여부를 결정짓는 일이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주말로 넘어가는 지난 14일 밤늦게 ‘중고차판매업에 대한 생계형 적합업종 심의는 보완 작업을 거친 뒤 오는 3월 심의위원회를 열어 결정하기로 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2019년 2월부터 이어져 오던 논의가 3년을 넘기는 게 확정되는 순간이자, 권칠승 중기부 장관의 ‘조기 결론’ 약속이 헌신짝처럼 내팽개쳐지는 순간이었다.


“내 이럴 줄 알았다.” 미리 예견한 누군가의 바람직하지 못한 행위가 현실로 나타났을 때 쓰는 말이다. 기자는 이 코너를 통해 정부가 중고차 시장 개방 문제를 대선 이후로까지 뭉갤 가능성을 두 차례나 언급한 바 있다.(2021년 4월 19일자 ‘중고차업계 무서워 소비자 제물로 바칠 건가’, 2021년 10월 21일자 ‘중고차시장 개방, 대선 때까지 뭉갤 건가’)


중고차 시장 개방은 오랜 기간 국민들이 요구해 온 해묵은 과제였다. 중고차 딜러를 비하하는 ‘차팔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수많은 소비자들이 그들로부터 각종 사기와 강매로 피해를 입어왔다. 중고차 강매를 당해 극단적 선택까지 한 사례도 있었다.


중고차 매매업계의 자정 노력을 기대하긴 힘들었다. 그들에겐 ‘중소기업 적합업종’이란 보호 장치로 2013년부터 2019년까지 무려 6년 간의 시간이 주어졌으나 전혀 나아지는 건 없었다. 대기업의 시장 진출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믿을 수 있는 거래 루트를 제공하고, 기존 업자들에겐 ‘메기효과’를 부여하는 게 최선이었다.


하지만 2019년 2월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기간이 끝나자 중고차 매매업계는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을 신청했고, 공교롭게도 이 때부터 계속해서 정치 이벤트가 이어졌다. 2020년 총선, 2021년 역대급 재보선, 그리고 2022년 대선이다.


정부가 어떤 식으로건 결론을 내린다면 어느 한 쪽은 선거에서 여당에 불리한 ‘실력행사’에 나설 여지가 있었다. 중고차 시장 개방을 허용한다면 중고차 매매업자들이, 불허한다면 소비자 단체들이 여당의 반대편에 서는 그림이 그려지는 상황이었다.


그래서인지 주무부처인 중기부는 2019년 11월 동반성장위원회로부터 ‘중고차매매업이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부적합하다’는 의견서를 받고도 생계형적합업종심의위원회를 열지 않은 채 버티기에 들어갔다.


총선이라고 뭉개고, 재보선이라고 뭉갰으니, 대선 이후까지 뭉갤 것이라는 합리적 추론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설마 설마 했다. 벼룩도 낯짝이 있지. 이처럼 뻔히 속보이는 짓을 과연 할 것인가. 심지어 권칠승 중기부 장관은 지난해 12월 1일 ‘중기부-삼성전자 공동투자형기술개발 투자협약기금 조성식’ 참석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 허용 여부를 연내 마무리하겠다고 밝히기까지 했다.


설마 정부 부처 장관이라는 사람이 대놓고 허언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기에 ‘대선 이후까지 뭉갤 것’이라는 예상이 틀렸음을 인정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연말이 임박해서도 감감무소식이기에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중기부 관계자에게 문의한 결과 “최대한 연내(2021년) 결론을 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심의위 일정이 1월 초로 밀릴 수도 있다”는 답변을 얻었다.


결국 이달 14일 심의위가 열렸지만 결론은 ‘3월 이후로 심의를 미루겠다’는 것이었다. 날짜를 특정하진 않았으나 이쯤 되면 대선인 3월 9일 이후가 될 것이라는 점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차라리 ‘대선 이후로 심의를 미루겠다’고 하는 게 더 정직할 뻔했다.


3년을 끌어온 중고차 시장 개방 관련 시간 끌기는 중기부가 국민의 권익은 안중에도 없다는 사실만 확인시켜줬고, 소비자들은 앞으로도 당분간 중고차 시장에서 사기와 강매에 시달려야 한다.


대선 직후 결론이 날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6월에는 또 다른 정치 이벤트인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예정돼 있고, 문재인 정부는 5월 10일까지 자리를 지킨다.


직무유기도 자꾸 하다보면 내성이 생긴다. 3년을 욕먹어 가며 버텨왔는데 몇 달 더 못 버틸 것도 없다. 3월 심의위에서 또 다른 핑계를 댈 것인지, 아예 심의위 일정을 6월 지방선거 이후로 미뤄버릴 것인지가 궁금할 뿐이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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