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천 1982년…‘타격의 신’ 축복

입력 2008.02.19 09:25  수정

한국 프로야구에는 조금 이상한(?) 취급을 받는 기록이 하나 있다.

프로야구 원년 백인천(당시 MBC 청룡)이 기록한 0.412의 타율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기록 자체 보다는 그것을 대하는 시선이 이상하다고 표현을 해야 맞을 듯하다.


´4할 타자´ 백인천의 1982년

프로야구에서 ‘타율 4할‘을 찍는 타자가 나타날 확률은 1983년 장명부(당시 삼미)가 거둔 한 시즌 30승이나 선동열(당시 해태)이 1993년 기록한 0.78의 평균자책점을 넘어서는 투수가 나타날 확률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그야말로 불멸의 기록이다.

그런데 백인천은 ’4할’을 훌쩍 넘어 1푼하고도 2리를 더 때려냈다. 가능성으로만 따진다면, 30승과 0.78의 평균자책점을 동시에 기록하는 투수가 나타나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

백인천의 0.412 타율은 프로야구 ‘영원불멸’의 기록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백인천은 1982년 이전까지 일본 프로야구에서 활약했다. 1962년 고교(경동고)를 졸업하고 일본 무대에 진출한 백인천은 한국인 장훈(일본명:하리모토 이사오)이 소속돼 있던 도에이 플라이어스(현 니혼햄 파이터스)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백인천은 1981년 긴데쓰 버팔로스(현 오릭스 버팔로스)에서 은퇴하기까지 일본 프로야구에서 뛴 19년 동안 타격왕 1회(1975년)를 포함, 통산 1969경기-1831안타-타율0.278-209홈런-212도루-776타점을 기록, 1982년 프로야구 MBC 청룡의 감독 겸 선수로 한국에 돌아왔다.

지명타자로 출장했던 백인천은 1982년 타율 0.412-홈런 19개-64타점-11도루를 기록, 타율 1위-홈런 2위-타점 2위에 올랐으며, 0.497의 출루율과 0.740의 장타율로 OPS 1.237을 기록했다.

1982년 백인천은 타율뿐만이 아니라 장타율과 OPS 시즌 기록에서도 역대 1위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출루율은 2001년 호세에 이어 역대 2위. 프로야구에서 7할이 넘는 시즌 장타율을 기록한 선수는 백인천을 포함, 1999년 이승엽(0.733)과 2003년 심정수(0.720)단 3명뿐이다.

1982년 백인천을 제치고 홈런왕에 등극한 김봉연(당시 해태)의 장타율은 백인천과 1할 이상 차이가 나는 0.636였다. 백인천은 리그에서 가장 강력한 장타력까지 겸비했던 타자였다.

메이저리그의 마지막 4할 타자로 남아있는 1941년 테드 윌리암스(당시 보스턴· 타율 0.406-장타율 0.735)만큼이나 1982년 백인천 역시 타격의 정확성과 장타력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선수였던 것.

백인천이 0.412의 타율을 기록했던 당시에는 이 기록이 도대체 한국 프로야구에서 어떤 의미를 지닌 것인지 감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왠지 또 다른 선수가 4할을 때려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너무도 쉽게 ‘마의 장벽‘을 뛰어넘은 백인천으로 인해 4할 타율은 투수의 20승 정도로 취급받았다.

원년 우승이라는 프리미엄이 강력하게 작용을 했지만, 24승을 거둔 박철순(당시 OB)이 백인천 보다 더 큰 주목을 받았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이후에도 20승 투수는 꽤 출몰하곤 했지만, 4할을 넘긴 타자는 단 1명도 나타나지 않았다.

물론, 프로야구에서 4할 타율에 도전했던 선수가 전혀 없던 것은 아니었다. 1994년 이종범(당시 해태)은 0.393의 타율로 4할의 문턱에서 아쉽게 실패하기도 했다. 현재까지 우리 프로야구에 기록된 유일한 도전이었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이종범은 경이로운 선수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이종범이 도전하다 실패한 것은 ‘4할’이라는 벽이었지 백인천의 4할1푼2리의 타율은 아니었다. 도전 자체만으로도 위대하다고 칭송을 받는 기록. 1982년 세기의 기적이 우리 눈앞에서 펼쳐졌음에도 아무도 눈치를 채지 못했던 것이다.



´위대함´을 바라보는 이상한 시선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숨이 멎을 것만 같은 백인천의 위대한 기록은 도대체 어떤 평가를 받고 있을까. 놀랍게도 서두에 표현한 것처럼 조금 이상한 취급을 받고 있다.

어떤 이들은 4할 타율이 만들어진 시기의 척박했던 프로야구의 환경과 백인천이 그해 출장했던 72경기 298타석 250타수에서 ‘조작의 향기’를 맡으려고 애쓰기도 한다.

심지어 그런 원시적인(?) 기록이 80년대 프로야구에서 나왔다는 것 자체가 왠지 부끄럽다는 표현을 쓰는 사람도 있다. 이종범의 1994년 타율을 사실상 프로야구 최고의 기록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부류도 존재한다. ‘1982년 백인천은 열외로 하고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다.

1982년 백인천은 72경기에 출장했다. 당시 프로야구 팀당 게임수가 80게임이었다. 백인천은 시즌 전 경기에서 단 8경기에 결장을 했을 뿐이다. 298타석에 들어섰던 백인천은 그해 타자들 가운데 24번째로 많은 타석에 들어선 선수다. 그해 타격 10위안에 이름을 올렸던 선수들 가운데 백인천 보다 더 적은 타석에 들어선 선수도 3명이나 있다.

홈런 1위였던 김봉연은 백인천 보다 불과 6번 더 타석에 들어섰을 뿐이다. 백인천은 풀시즌을 소화한 것이다. 시대가 그랬다. 백인천이 경기에 더 나가고 싶어도 기회 자체가 제한적이었다. 더군다나 백인천은 감독직까지 맡고 있었다. 백인천은 1982년 프로야구가 정한 규정에 따라 충실히 경기에 출장을 했고 누구보다 열심히, 잘 때려냈을 뿐이다.

백인천을 두고 타율 관리를 했다고 하지만, 4할1푼2리의 타율은 관리를 한다고 만들어질 수 있는 따위의 것이 아니다. 전 세계 야구인들에게 평생 동안 자랑만 하고 다녀도 모자랄 만큼 위대한 기록을 선물한 백인천을 깎아내리려고 해서는 곤란하다.

설령 시대가 만들어낸 산물이었다고 하더라도 달라질 것은 없다. ´라이브 볼´ 시대에 511승을 거둔 사이 영을 제쳐두고 클레멘스나 매덕스부터 다시 기록해야 한다고 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백인천은 1982년 불혹의 나이에 0.412의 타율을 기록했다. 백인천이 없었다면, 40세의 나이에도 타격을 위한 전진을 멈추지 않았던 그의 투혼이 없었다면, 우리 프로야구는 영원히 메이저리그의 전설 속에서나 4할 타자의 존재를 확인하며 부러운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봐야 했을 지도 모른다.

4할 타자와 동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은 야구팬들에게 축복이다. 백인천은 한국 프로야구를 축복해준 타자다. 백인천의 경이로운 1982년, 그 위대함에 박수를 보내는 이유다. <기록 제공=이닝(Inni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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