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 전쟁´…60대 노감독 전성시대

입력 2007.07.12 13:45  수정

김성근·김인식 뜨거운 지략대결

‘60대 노감독 전성시대’ 이끌어

11일 대전구장. 분명 한여름 경기였지만, 분위기는 마치 가을의 차가운 바람이 부는 듯했다. 포스트시즌의 느낌이 물씬 풍긴 것. 마침 이날은 ‘대전시 교육가족의 날’ 행사였고, 대전구장은 시즌 첫 평일 관중만원(1만500명)을 기록했다.



모든 부대조건이 ‘김(金)의 전쟁’을 위해 마련된 것 같았다. 그리고 경기장을 꽉 채운 관중들의 기대에 보답하는 명승부로 ‘김의 전쟁’은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다. 올 시즌 프로야구의 최고 흥행카드 중 하나는 SK 김성근 감독(65)과 한화 김인식 감독(60)이 벌이는 ‘김의 전쟁’이다.


◆ 이것이 수 싸움이다!

경기장은 시작 전부터 전운이 감돌았다. 전날 경기가 우천 취소된 가운데 전격 이뤄진 두 감독의 그라운드 회동도 팬들의 비상한 관심을 모은 터였다. 기대대로 두 감독은 이날 경기에서 사령탑의 수 싸움이 무엇인지 보여줬다. 승패를 떠나 두 감독이 보여준 피 말리는 지략싸움은 야구의 재미를 더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김성근 감독이 선수를 쳤다. 한화 선발이 왼손 세드릭인 것을 감안한 플래툰 시스템을 가동했다. 정근우를 1번, 박경완을 3번으로 전진 배치시킨 김성근 감독의 작전은 3회 정근우의 출루에 따른 박경완의 적시타로 선취점을 뽑았다. 김성근 감독의 기선제압이었다.

하지만 김인식 감독도 가만히 앉아서 당하지 않았다. 특유의 뚝심으로 기존 선발 라인업을 그대로 가져간 김인식 감독에 보답하듯, 8번 한상훈은 이날 선취득점과 결승타점을 올리며 팀의 역전을 이끌었다.

진짜 승부는 경기 종반부터였다. 양 감독은 과감한 수비 시프트를 들고 나왔다. SK는 한화 제이콥 크루즈가 들어설 때마다 수비라인을 우향우로 했다. 덕분에 크루즈는 잘 맞은 타구가 2개나 야수 정면으로 가는 불운을 겪었다.

한화 역시 SK 2번 조동화를 철저하게 묶었다. 조동화의 밀어치기를 감안한 한화는 수비 시프트를 좌향좌로 하며 조동화의 정타를 두 개나 플라이로 처리했다. 상대의 빈틈을 철저히 공략하는 승부수가 그대로 먹혀드는 순간이었다.

이날 경기의 백미는 투수교체였다. SK는 7회 1사 1·2루 위기에 내몰리자 김성근 감독 특유의 ‘벌떼마운드’를 가동했다. 3번 크루즈 타석에는 왼손 원포인트 릴리프 가득염을 투입했고, 4번 김태균 때에는 사이드암 조웅천을 투입하는 등 철저하게 데이터로 승부했다. 결과적으로 위기를 무실점으로 막아 작전 성공이었다.

하지만 김인식 감독도 SK에 대타 타이밍을 주지 않기 위해 7회 기용된 셋업맨 안영명을 9회 2사까지 밀고 나갔고, 왼손 이진영 타석 때 마무리투수 구대성을 투입해 경기를 매조지 했다.

경기는 한화의 2-1 신승. 두 감독의 수 싸움은 경기 내내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로 뜨거웠다.


◆ 빅볼 그리고 스몰볼

같은 60대 노감독이지만, 두 김 감독의 스타일은 극과 극이다. 김인식 감독이 전형적인 빅볼을 구사한다면, 김성근 감독은 일본식 스몰볼이 트레이드마크다. 두 감독의 맞대결이 갈수록 가열 양상을 보이는 것도 이처럼 야구 스타일이 최북단과 최남단으로 갈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켜보는 야구팬들은 즐겁다. 야구의 가장 큰 매력은 의외성과 다양성이다. 획일화된 야구보다는 각 팀마다 고유의 야구 스타일이 자리 잡은 가운데 저마다 상충되는 스타일로 진검승부를 벌이는 것만큼 재미있는 것도 없다.

공격적인 면에서 두 감독은 판이하게 다른 스타일을 보인다. 김성근 감독은 날마다 선발 라인업이 바뀐다. 상대 투수 유형이나 데이터 결과에 따라 수시로 타순이 조정된다. 이른바 ‘플래툰 시스템’이다. 확률의 게임이라 할 수 있는 야구경기에서 철저한 분석에 따른 타순조정은 필수적이다. 반면, 김인식 감독은 웬만하면 타순을 조정하지 않는 편이다. 특히 중심타자의 경우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는다. 라인업의 잦은 변동보다는 몇 경기 손해를 보더라도 장기적인 차원에서 안정적인 고정 라인업으로 승부하는 타입이다.

투수 기용에 있어서도 다른 편이다. 두 감독 모두 투수 출신으로 마운드운용 능력은 일찌감치 정평이 나있었다. 하지만 그 스타일에는 적잖은 차이가 있다. 김성근 감독은 상대 타자와 상황에 따라 투수 하나하나를 바꿀 정도로 섬세하다. 올 시즌 SK는 리그에서 가장 많은 경기당 평균 4.7명의 투수를 투입했다.

대조적으로 김인식 감독은 웬만하면 투수를 믿고 나가는 스타일. 특히 불펜 투수들의 경우에는 소수정예를 선호하는 편이다. 올 시즌 한화는 리그에서 가장 적은 경기당 평균 3.4명의 투수를 기용하고 있다.

사실 빅볼과 스몰볼의 차이는 백지장 한 장에 불과하다. 어차피 같은 야구이기 때문이다. 빅볼을 구사하는 한화지만 최근 한 달간 희생번트 시도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 6월 5일 이후 가장 많은 희생번트를 기록하고 있는 팀이 바로 27개의 희생번트를 성공시킨 한화다.

반면 스몰볼을 구사하는 SK는 같은 기간 가장 적은 14개의 희생번트밖에 대지 않았다. 하지만 두 감독은 기록과는 관계없이 전체적인 야구 스타일이나 경기운영에서 판이하게 다른 길을 걷고 있다. 두 김 감독의 전쟁이 재미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 60대 노감독 만세

2002~2003년, 프로야구계에는 40대 기수론이 거세게 불어 닥쳤다.

김성근 감독이 LG 사령탑에서 물러난 2002시즌 후 SK는 조범현 감독, 한화는 유승안 감독을 차례로 선임했다. 그리고 이듬해 김인식 감독이 두산의 지휘봉을 놓았다. 당시 선동렬 삼성 감독의 두산행이 설득력 있게 들려오던 시절이었다. 2003시즌 후에도 두산이 김경문 감독, LG가 이순철 감독, 롯데가 양상문 감독을 새 사령탑으로 앉히며 40대 기수론에 불을 붙였다. 60대 노감독은 김응룡 삼성 감독밖에 남지 않았다. 60대 노감독의 시대는 그렇게 저물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40대 감독들이 실패를 거듭했다. 40대 기수론을 타고 사령탑으로 선임된 감독 중 지금까지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은 김경문 감독이 유일하다. 나머지 감독들은 모두 실패하거나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 김인식 감독은 1년간의 야인생활을 거친 후 한화 사령탑으로 컴백했다.

부임 첫 해부터 믿음의 야구를 주창한 김인식 감독은 40대 감독들이 실패한 가장 큰 요인이었던 세대교체와 팀 장악을 잡음 없이 물 흐르듯 순조롭게 지휘했다. 김인식 감독이 성공하자 롯데도 다시 60대 강병철 감독을 현장으로 불러들였다. ‘김인식 효과’였다. 그리고 지난해 한화가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차지하자 SK도 60대 김성근 감독을 사령탑으로 영입했다.

김성근 감독 역시 부임 첫 해부터 무서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SK는 6월 중순을 기점으로 독주체제를 확실하게 굳혔다. 그동안 약팀들을 이끈 노하우를 바탕으로 지난해 가을 마무리훈련 때부터 선수들을 강하고 거칠게 조련했다.

특히 이름값에 얽매이지 않는 무한경쟁 체제는 베테랑이나 신예나 가릴 것 없이 기량과 마인드를 달리하게 만들었다. 60대 노감독만의 강한 카리스마와 노하우 그리고 혜안이 묻어나는 용병술과 지도력이 찬란하게 빛을 발하고 있는 것. 김인식 감독에 이어 김성근 감독까지 성공스토리를 써가면서 리그의 흐름도 크게 달라질 조짐이다.

시즌 전부터 입심으로 뜨거운 신경전을 벌이며 팬들의 흥미를 자아냈던 김성근 감독과 김인식 감독. 두 김 감독이 벌이는 ‘김의 전쟁’은 올 시즌 프로야구 최고의 흥행카드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했다.

세월이 흐르고 몸이 쇠약해졌지만, 끊임없이 쿵쾅거리며 고동치는 심장 소리처럼 야구를 향한 열정만은 젊은 선수들을 능가하는 그들이기에 ‘60대 노감독 전성시대’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데일리안 스포츠

0

0

기사 공유

댓글 쓰기

관련기사

댓글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