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에도 안방극장의 대세는 사극이다.
<주몽>(MBC), <대조영>(KBS),<연개소문>(SBS)등 방송 3사의 간판 사극들이 모두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 가운데, 우리의 잊혀진 옛 역사에 관한 재발견과 대중의 관심을 고취시키는 긍정적인 작용을 낳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최근 들어 자유로운 상상력과 극적 재구성을 근간으로 하는 ‘퓨전 사극’이 강세를 보이면서 역사적 고증에 대한 오류와 왜곡 논란이 지적받고 있는 것도 사실. 최근 사극의 시대 범위가 고구려, 백제 등의 삼국시대와 고조선 시대의 상고사까지 영역을 넓히며 철저한 고증보다는 당장의 볼거리와 시청률에만 치중해 완성도가 떨어지는 사극들이 범람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드라마는 다큐멘터리가 아닌 만큼,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에 대하여 어느 정도의 재해석은 극적 구성의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지만, 대중의 인지도가 높은 방송이라는 매체에서 드라마의 지나친 상상력과 빈약한 고증, 특정한 이념 개입은 오히려 대중에게 역사적 진실을 왜곡하고 혼란을 일으킬 소지가 있다.
최근 고구려 사극들은 높은 인기에 불구하고 고증 면에서는 낙제점을 면치 못하고 있다. 고구려 말기를 배경으로 한 <연개소문>과 <대조영>은 비슷한 시대를 다루었음에도 인물의 복색이나 투구, 의상, 헤어스타일 등 모두 제각각이다.
고구려 건국을 다룬 <주몽>에서 주인공들의 철갑옷은 아예 고구려 시대와는 거리가 먼 서양식 RPG 게임속의 의상이나 일본 사무라이들의 전통 갑옷을 연상시킨다. 한나라와 부여를 종속 관계로 묘사하거나 철기 문화에 대한 잘못된 고증 등도 논란이 되었던 대목.
시대극의 비주얼이 고증의 완성도를 통해 리얼리티를 높이는 게 주목적인데 비해, 최근의 퓨전 사극들은 환타지에 치우쳐 ‘볼거리를 위한 볼거리’로 전락하며 오히려 정체성을 잃고 있다는 것.
또한, 최근 방영되고 있는 고구려 사극들은 대부분 전쟁 중심의 영웅 사극으로 정의된다. 여기서 단순한 선악구도의 이분법적 인물묘사와 과도한 감상주의, 민족주의 경향이 두드러진다. 주인공은 절대적인 선이고 이에 반대하는 세력들은 다분히 과장된 악역이나 희화화된 존재로만 묘사된다.
극의 흥미를 위해 대립과 갈등 구도를 강조하다보니 인물 묘사는 점차 전형적이 되고, 극적 전개의 과정에서 불필요하게 생략과 비약 혹은 왜곡되는 경우도 흔하다. <연개소문> 1기에서 수나라 진영 인물들이 하나같이 ‘시트콤’스러운 아둔하고 과장된 인물들로 등장하거나, 주인공 연개소문이 청년시절 신라와 중국에서 모험을 겪는다는 다분히 환타지적인 이야기 전개가 대표적이다.
‘퓨전 사극’의 범람이라는 추세와는 대조적으로 정작 주인공들은 점점 보수화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주몽이나 대조영, 연개소문 등은 하나같이 태어날 때부터 특별한 운명을 타고난 선천적인 영웅으로 묘사된다. 주인공의 비범함을 강조하는 것이 지나쳐 후반부로 갈수록 기인이나 초인에 가까운 ‘신격화’로 치닫는 경향은, 국수주의에 기대어 대중의 인식을 잘못된 영웅주의 사관으로 호도할 위험도 크다.
역사드라마의 구성이나 방향이 모두 천편일률적이어야 할 이유는 없지만, 적어도 균형감각은 필요하다. 철저한 고증에 기초한 최소한의 리얼리티가 바탕이 된 가운데, 변형이나 재해석도 가능한 것이다. 무분별한 상상력의 남발은 퓨전이 아니라 왜곡에 가깝다.
앞으로 가야, 고조선 등 기존 드라마가 다루지못한 미지의 영역을 넘나드는 시대극들이 뒤를 기다리고 있는 가운데, 퓨전 사극의 정체성에 대한 논란은 반드시 한 번쯤 짚고 넘어가야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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