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성준 국회 국방위원장.ⓒ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미국의 ‘기피인물’(persona non grata)
미국 정부가 진성준 국회 국방위원장의 입국 비자를 거부했다. 앞서 국회 외무위원인 정청래 전 민주당 대표는 미국 입국 비자가 지연돼 결국 미국 땅을 밟지 못했다. 앞서 지난 3월 이종석 국정원장의, 미국 국방부의 전투를 지원하는 국가지리정보국(NGA) 방문도 불발됐다. 당정의 핵심 인물들이 차례로 미국 입국이 거부된 것이다.
주재국은 상대국의 특정 인물을 기피인물(persona non grata)로 정해 이유를 밝히지 않고 외교관으로 받지 않을 수 있다. 정청래나 진성준, 이종석도 똑같은 취급을 받은 셈이다. 이 뿐만 아니다. 한국군과 미군의 을지포커스 훈련은 심하게 축소되고 국정원과 미국 안보 당국의 협의도 취소됐다. 미국 의회는 주한미군의 감축이나 예산 감축을 원천 봉쇄하는 입법으로 전시작전권 전환도 무기연기해 버렸다.
국회 국정감사에서 강경화 주미대사는 한미 간의 정보협력이 어렵다고 시인했다. 거슬러 올라가 지난 7월 강경화 대사는 한국에 급거 귀국해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한미 관계가 ‘이상 기류’에 접어들었음을 경고하고 귀임했다. 언론과 정치권에서는 ‘이상 기류’라고 표현하지만, 그 단계를 넘어선 지는 이미 오래다. 미셸 스틸 주한 미국 대사는 '난기류( turbulence)'라 표현했다.
필자가 보기로는 1970년대 박동선 사건 당시 또는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수준으로 한미 관계가 악화된 상태다. 당시에는 분명한 원인이 있었기 때문에 해결도 쉬웠지만, 이번에는 단일 원인이 아니고 상황이 복합적이라 해결도 어렵다.
입장 바꿔 생각하면?
여권 일각에서는 트럼프 정부에 책임을 돌린다. 정청래·진성준 의원도 미국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시했다. 그들의 주장대로 트럼프 미국 정부는 이웃 캐나다와 멕시코는 물론 18세기 독립 전쟁 이후 오랜 동맹국들인 영국, 프랑스와도 매우 불편한 관계다. 그만큼 트럼프가 유별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재명 대통령과 우리 정부가 유별나게 친북 반미 기조인 것도 인정해야 한다. 특히 이종석 국정원장, 정동영 통일부 장관, 그리고 국방장관까지 외교안보 라인은 친북 반미 일색이다. 그러니 대미 교섭을 담당하는 위성락 안보실장와 조현 외교부 장관만 중간에 끼여 괴롭고 고달픈 신세다.
현 정권은 미국 문화원에 화염병을 던진 정청래를 집권당 초대 대표로 선출했다. 만일 대한민국 정부라면, 대한민국 해외 주재 대사관에 화염병을 던진 이가 그 나라 국회의원이 됐다는 이유로 한국에 들어오겠다면 흔쾌히 동의해줄 것인가. 가정해보자면 주중 대한민국 대사관에 화염병을 던진 중국인이 중국 대표가 돼 한국 입국을 신청하면 과연 한국 정부는 그에게 한국 땅을 밟도록 허용했을까?
문제는 현 정권의 대미 강경책
정청래나 진성준은 10여 년 전 미국을 다녀왔다. 그러나 그게 특별한 예외였다. 당시 정권은 박근혜 정권이었고 한미 관계가 매끄러웠다. 그 때 두 사람이 이뻐서 미국 정부가 비자를 내준 게 아니다. 박근혜 정부가 보증서서 미국 비자를 얻어준 것이다. 미국 정부는 당시의 한국 정부를 믿고 한국 정부 면을 세워줬다. 한국 지도자를 신뢰하고 한미 관계가 원만할 때 입국이 허용됐다 해서 당연한 권리는 아니다. 법적으로 권리와 반사적 이익은 다르다. 혼동하면 절대 안 된다.
전전 문재인 정권만 해도 친북이되 노골적 반미는 아니었다. 문재인은 바이든 미국 대통령 얼굴 보려고 미국 뉴욕으로 유럽으로 바쁘게 움직여 적어도 미국에 대해 성의 표시는 했다. 그러나 이재명 대통령은 “굴종 외교는 하지 않겠다” 식으로 노골적으로 반미 반트럼프 노선을 드러낸다. 당정 주요 인사들도 마찬가지다. 미국으로서는 정청래나 진성준도 미운데 종북 친중 반미 강경책으로 일관하는 한국 정부는 더 마음에 들지 않는다. 미국이 제공한 고급 정보를 함부로 흘리는 한국 정부 인사들 때문에 더 그렇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굴종'과 '국익중심 실용' 외교
트럼프는 중간 선거 전 한국이 투자협정을 도장 찍고 실행에 옮겨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그동안 실리보다 명분을 택해 투자를 지연시켰다. 투자의 상업적 결과가 중요하다고 말은 했지만 한국은 갑으로 처신했고 트럼프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한미 관계에서 ‘굴종 외교’는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국익 중심 실용외교’라는 이재명 대통령의 외교정책 기조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역시 이재명 대통령은 말 다르고 행동 다르다. ‘국익 중심 실용외교’라면 자존심을 앞세우지 않는다. 명분을 앞세우지도 않는다. 국익을 위해 자존심을 희생하고 명분보다 실리를 택한다. 병자호란 직후 명분과 자존심을 세운 척화파가 옳았는지, 실리를 택한 주화파가 옳았는지는 후대의 역사가 증명한다.
이재명 정부가 자존심을 택한 결과 트럼프는 중간 선거에서 악전고투 중이다. 공화당이 선거에 패배하면 민주당이 우위인 미국 의회는 트럼프를 탄핵할 수도 있다. 그러나 트럼프는 선거 직후부터 권력을 잃을 때까지 악다구니를 부릴 것이다. “한국 너희만 막판에 통 크게 도와줬으면 내가 중간선거 패배하지 않을 수 있었어, 그런데 말이야….”
탄핵될 지 않고 버틸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트럼프는 임기 마지막 날까지 한국에 대해 처절한 보복을 할 것이다. 적어도 800조 규모의 호남 반도체가 순탄하게 추진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 정권이 순항할 수 있는 길을 철저히 방해할 것이다. 이란 전쟁도 크게 확대해 미국민은 물론 전 세계인에게 유가 폭등의 폭탄을 안길 것이다.
한국에게 남은 카드는?
엊그제 체코 두코바니 원전의 시공사 선정이 원점으로 돌아갔다. 협의도 무산됐다. 원전의 원천 기술에 관한 한미 협의가 난항에 부딪히면서 한수원이 공사비 책정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아닌가 우려된다. 미국이 적극 지원했다면 원천 기술 로열티 문제가 잘 풀렸을 것이고 아랍에미레이트(UAE) 바라카 원전이후 16년만의 두코바니 원전프로젝트도 순항했을 것이다.
최대 28조원 규모의 두코바니 원전 프로젝트, 한미 관계가 작동하지 않는 곳은 없다. 반도체, 핵잠수함, 조선, 배터리, 인공지능(AI), 공급망 재편, 방위비 분담, 대북 정책, 주한미군의 전략적 운용 등 어느 하나 가벼운 사안이 없다. 그러나 한국이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카드는 대미 투자 약속이다. 3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언제 어떻게 얼마나 성실하게 이행하느냐가 한미 관계 복원을 위한 한국의 유일한 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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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구철 금강대 연구교수·전 TV조선 선거방송기획단 단장
※외부 필진 칼럼입니다.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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