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연 “나 조차 도라 의심...외롭겠다 생각” 울컥
"프로이트가 본 도라 아닌, 도라 자신의 목소리로"
도희야’이후 12년 만의 재회 송새벽 "감독님 세계의 깊이 여전해"
정주리 감독이 스무 살 무렵 품었던 이야기를 20여 년 만에 스크린에 옮겼다. ‘도희야’ ‘다음 소희’를 잇는 신작 ‘도라’다.
9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비프힐 기자회견장에서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갈라 프레젠테이션 초청작 ‘도라’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정주리 감독과 배우 김도연, 송새벽이 참석했다. 올해 칸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됐던 이 작품은 이날 회견 직후 첫 상영을 통해 국내 관객과 만난다.
‘도라’는 극심한 심인성 피부질환으로 학교에 가지 못하는 열여덟 살 도라(김도연)가 부모와 함께 남해의 여름 별장에 머물며, 아버지의 제자인 화가 연수(송새벽)와 그의 일본인 아내 나미(안도 사쿠라)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이야기다. 한국·프랑스·룩셈부르크·일본이 함께 만들었다.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도라’는 정 감독 필모그래피의 출발점이자 가장 늦게 완성된 작품이다. 그는 “스무 살 언저리에 프로이트를 읽다가 ‘도라’ 사례에 흥미를 느꼈다”며 “나중에 영화를 만든다면 이걸로 해보고 싶다고 처음 떠올린 이야기”라고 운을 뗐다. 하지만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정 감독은 “장편 시나리오를 써본 적도, 공부해본 적도 없어 묵혀두다가 ‘도희야’를 먼저 만들었다”며 “이후 초고를 완성해 제작을 타진했지만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많았고, 투자 쪽에서는 더욱 어렵다고 해 결국 포기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그러다 ‘다음 소희’를 행운처럼 만들게 됐고, 다시 처음 시작점으로 돌아와 ‘도라’를 만들게 됐다”고 돌아봤다.
긴 세월은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도 바꿔놨다. 그는 “처음 이 이야기를 시작할 땐 나이도 어려 도라와 비슷한 자리에 있었는데, 지금은 점점 나미에 가까워졌구나 싶다”며 “어렸던 시절과 기성세대가 된 지금이 공존하는 상태다. 왜 이런 영화를 만들었을까 궁금하다면 그 지점을 생각하며 봐주시면 좋겠다”고 귀띔했다.
원작을 어떻게 재해석했느냐는 질문에 정 감독은 관점의 전복을 꼽았다. 그는 “처음엔 소녀가 주변인들에 둘러싸여 겪는 심리적 요소에 끌렸는데, 시간이 한참 지나 다시 들여다보니 ‘이게 다 그 사람이 본 거잖아’ 하는 충격이 왔다”며 “여기에 도라의 목소리가 있나, 우리는 글을 통해서만 보고 있었던 건 아닌가 싶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회복하지 못한 채 종결된 케이스가 어떻게 하면 스스로 회복하고 일어서는 또 하나의 케이스가 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며 “그게 영화를 만드는 동력이 됐다”고 강조했다.
파격적인 결말은 초고부터 정해져 있었다. 정 감독은 “엔딩으로 향하는 과정이 충분치 않아 계속 지체됐던 것”이라며 “완성본은 초고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인물 간의 관계와 행위들이 촘촘히 바뀌면서 지금의 결말에 닿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타이틀롤을 맡은 신예 김도연은 첫 오디션의 기억을 꺼내며 여러 차례 울컥했다. 그는 “처음 대본을 읽었을 땐 도라가 나와 너무 달라 멀게만 느껴졌다”며 “발췌 대본만 받고 리딩한 뒤 ‘그럼 도라는 지금 거짓말을 하는 건가요’라고 여쭸는데, 감독님이 ‘도라는 계속 진실만 이야기한다’고 하셨다. 그 순간 머리가 띵했다”고 고백했다. 이어 “도라의 입장에서 말을 뱉는 나조차 그를 의심하는데, 도라는 얼마나 외롭고 힘들까 싶었다”며 “제3자가 아니라 도라의 마음까지 알게 되도록 사고를 바꾸는 작업이 가장 필요했고, 가장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대본을 향한 애정도 각별했다. 김도연은 “읽으면 읽을수록 한 문장 한 문장이 한 겹 한 겹 너무 아름답다고 감독님께 문자를 보낸 적도 있다”며 “일본 배우, 프랑스 촬영팀과 함께한 모든 환경이 새로웠고, 그렇게까지 몰두해본 경험 자체가 값졌다”고 전했다.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인 이 영화에서 처음 수위 높은 스킨십 장면을 소화한 데 대해서는 “대본을 읽었을 때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져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며 “나미와 도라가 각자의 아픔과 상처를 처음으로 서로에게 보이고 나누는, 영화에서 무척 중요한 장면”이라고 답했다. 그는 “여성의 몸과 마음을 더 잘 이해하는 감독님이 확고한 생각을 갖고 계셔서 믿음이 생겼다”며 “안도 사쿠라 배우가 내 상태를 계속 살펴줬고, 인티머시 코디네이터와 처음 일해보며 꼭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고 언급했다.
일본 배우 안도 사쿠라의 캐스팅은 초고에서 가장 크게 달라진 대목이다. 정 감독은 “원래 나미는 한국인이었다. 외국인 배우와 영화를 만드는 건 상상해본 적도 없었다”며 “그런데 나미의 끝을 알 수 없는 공허함과 외로움을 내가 과연 다 알 수 있을까 싶었고, 그 순간 일본인으로 하면 어떨까, 그렇다면 안도 사쿠라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고 떠올렸다.
정 감독은 “매니지먼트를 수소문해 ‘한국에서 여름에 영화를 찍으려는데 관심 있느냐’고 물었더니 시나리오를 보고 싶다고 해, 그제야 부랴부랴 인물을 일본인으로 고치고 번역해 보냈다”며 웃었다. 그는 “안도 사쿠라는 출연작마다 전혀 다른 인물인데 동시에 그냥 사쿠라인 것 같은 놀라운 지점이 있다”며 “나와 배우 사이에 나미라는 인물이 존재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캐스팅 이유를 밝혔다.
‘도희야’에 이어 12년 만에 정 감독과 다시 손잡은 송새벽은 “어제 감독님이 ‘도희야’ 스틸 사진 두 장을 보내주셨는데, 제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풋풋하고 귀엽더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어 “현장에서 ‘이 감독님 참 여전하시구나’ 느꼈다. 인물에 대한 섬세한 연출과 감독님 세계의 깊이가 느껴졌다. 쭉 열어두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방향을 짚어주시는 연출 덕에 연수에게 더 다가갈 수 있었다”고 신뢰를 드러냈다.
송새벽은 “현장은 단순히 분위기가 좋다기보다 감독님 이하 모두가 대본에 젖어 있는 듯한 에너지로 움직였다. 그래서 더 특별한 영화가 된 것 같다”는 소회도 밝혔다. 김도연 역시 “제게도 큰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이 이야기를 너무 사랑하고, 관객분들도 이 영화를 사랑하게 되셨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드러냈다.
올해 영화제에서 심사도 맡고 있는 정 감독은 “심사를 하기로 하면서 나를 흔들어놓는 영화를 만나고 싶다는 기대를 품었다”며 “‘도라’도 누군가의 마음을 흔들 수 있는, 다양한 반응과 의견이 오가는 영화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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