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원년, 감독겸 선수로 나서 타율 0.412 기록
일본 프로야구에서도 타격왕, 한국 야구 전설
백인천 전 감독 추모 묵념. ⓒ 삼성 라이온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서 ‘불멸의 4할 타율’ 업적을 세운 고(故) 백인천 전 감독이 마침내 영원한 휴식에 들어갔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17일 충남 천안 단국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고(故) 백인천 전 감독의 영결식을 엄수했다고 밝혔다. 이날 영결식에는 유가족을 비롯해 허구연 KBO 총재와 야구계 선후배, 관계자 및 수많은 팬들이 참석해 한국 야구의 개척자였던 고인의 마지막 길을 눈물로 배웅했다. 영결식을 마친 고인의 운구 행렬은 천안추모공원을 거쳐 경기도 용인 로뎀파크 수목원으로 이동해 장지에서 영면했다.
고인은 지난 15일 향년 8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평소 고인을 지독하게 괴롭혀온 뇌경색이 악화되면서 맞이한 안타까운 별세였다. 별세 하루 전인 14일 오전, 고인은 갑작스러운 심정지로 의식을 잃고 구급차로 인근 병원에 긴급 이송됐다. 의료진의 응급 심폐소생술(CPR)을 통해 미세하게 혈압과 맥박이 돌아오기도 했지만, 이미 위중해진 상태를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 이후 평소 치료를 받아오던 천안 단국대병원 중환자실로 옮겨져 마지막 사투를 벌였으나, 네 차례나 뇌경색을 견뎌내며 버텨온 전설의 심장은 끝내 멈춰 섰다.
KBO는 한국 야구의 초석을 다지고 불멸의 대기록을 세운 고인의 숭고한 업적을 기리기 위해 장례를 'KBO장'으로 치렀다. 이는 지난해 9월 별세한 이용일 전 KBO 총재 직무대행에 이어 KBO 역사상 역대 두 번째로 엄수된 KBO장이다. 야구계 전체가 깊은 슬픔 속에 고인에게 바칠 수 있는 가장 정중한 예우를 갖춘 셈이다.
백인천 전 감독 별세. ⓒ 뉴시스
1942년 중국 장쑤성 우시에서 태어난 고인은 한국전쟁 시기 부모의 손을 잡고 월남해 서울에 정착했다. 경동중과 경동고 시절부터 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천재적인 야구 재능으로 이름을 날렸다. 당시 빙상 스피드스케이팅 선수까지 겸했을 만큼 독보적인 하체 힘과 순발력을 자랑했던 백인천은 방망이를 잡기만 하면 담장을 넘겨버리는 차원이 다른 타격 기량을 선보였다.
1961년 실업야구 농협에 입단해 국내 무대를 평정한 고인은 곧바로 더 넓은 세상으로 눈을 돌렸다. 1962년 일본프로야구(NPB) 도에이 플라이어스(현 닛폰햄 파이터스)의 러브콜을 받고 현지로 건너간 것은 한국 야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개척자적 결단' 중 하나였다. 당시 한국 야구의 변방 의식과 척박한 환경을 고려하면, 수많은 견제와 차별이 존재하던 일본 프로야구 무대에 혈혈단신으로 도전장을 내밀어 성공을 거둔 것은 가히 독보적인 사건이었다.
고인은 다이헤이요 라이언스, 롯데 오리온스, 긴테쓰 버펄로스 등 NPB의 명문 팀들을 거치며 1981년까지 무려 20년 동안 일본 프로야구의 최정상급 타자로 군림했다. 특히 다이헤이요 소속이던 1975년에는 타율 0.319를 기록하며 퍼시픽리그 타격왕에 등극하는 기염을 토했다. 외국인 선수에 대한 견제가 극심했던 NPB 무대에서 한국인 타자가 타격 타이틀을 거머쥔 것은 고인이 최초였다. NPB 통산 1969경기에 출전해 6579타수 1831안타, 타율 0.278, 209홈런, 776타점이라는 눈부신 족적을 남긴 그는 현지 언론으로부터도 '철인'이자 '타격의 귀재'라는 찬사를 받았다.
2019 WBSC 프리미어 12에서 시구자로 나선 백인천. ⓒ 뉴시
20년 넘는 타향살이 끝에 1982년 고국으로 돌아온 백인천은 한국 프로야구(KBO리그)의 출범과 함께 신화의 주인공이 됐다. 원년 구단인 MBC 청룡의 초대 사령탑이라는 중책을 맡은 고인은 단순한 감독에 머물지 않고 '감독 겸 선수'라는 전무후무한 보직으로 그라운드를 누볐다.
그해 고인이 써 내려간 숫자는 한국 스포츠 역사상 가장 경이로운 수치로 남아있다. 고인은 1982시즌 총 80경기 중 71경기에 출전해 250타수 103안타, 타율 0.412, 19홈런, 64타점, 출루율 0.497, 장타율 0.740이라는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었다. 마흔이라는 불혹의 나이에, 팀 전체를 지휘하는 감독의 중압감을 짊어진 채 거둔 성적이라고는 도무지 믿기지 않는 초인적인 퍼포먼스였다.
0.412라는 숫자는 KBO리그 44년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기록된 유일무이한 4할 타율이다. 메이저리그(MLB)에서도 1941년 테드 윌리엄스(0.406) 이후 80년이 넘도록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은 꿈의 숫자가 한국 프로야구 원년에 고인의 방망이 끝에서 완성된 것이다. 이후 현대 야구의 분업화와 투수들의 구속 혁명, 데이터 분석의 고도화가 이뤄지면서 4할 타율은 사실상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불멸의 기록으로 평가받는다.
현역 선수 생활을 마감한 고인은 본격적인 전문 지도자의 길로 접어들었다. 1990년 MBC 청룡을 인수해 창단한 LG 트윈스의 초대 사령탑으로 부임한 고인은 특유의 공격적인 야구 스타일과 엄격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창단 첫해 LG를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려놓는 기적을 연출했다. 이 우승은 서울을 연고로 하는 LG 트윈스 팬들에게 여전히 전설로 추억되는 순간이다.
이후 삼성 라이온즈(1996~1997년)와 롯데 자이언츠(2002~2003년) 등 KBO리그를 대표하는 명문 구단들의 지휘봉을 잡으며 지도자로서도 굵직한 발자취를 남겼다. 특히 현장 사령탑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수많은 팀의 타격 인스트럭터를 자처하며 까마득한 후배들에게 자신의 타격 이론과 철학을 전수하는 데 아낌없이 헌신했다.
그러나 영광스러웠던 야구 인생의 뒤편에는 지독한 병마와의 외로운 싸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고인은 은퇴 후 네 차례나 뇌경색이 재발하며 오랜 기간 힘겨운 투병 생활을 이어가야 했다. 2022년 KBO리그 출범 40주년을 맞아 야구 팬들과 전문가들이 선정한 'KBO 40인 레전드'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지만, 급격히 악화된 건강 상태 탓에 시상식 현장에 끝내 참석하지 못했다. 팬들의 뜨거운 함성이 울려 퍼지는 그라운드에서 직접 작별 인사를 건네고 싶어 했던 전설의 마지막 소원은 결국 이루어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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