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부터 AI까지…2026년 사운드아트의 확장 [이슈]

전지원 기자 (jiwonline@dailian.co.kr)

입력 2026.08.05 08:36  수정 2026.08.05 08:36

이어폰 밖으로 나온 소리, 전시의 공간을 채우다

100년 전 극장용 스피커가 되살린 음악, 소리를 둘러싼 언어와 권력을 선과 애니메이션으로 옮긴 작업, 인공지능(AI)이 자연음을 학습해 만든 입체음향. 올여름 서울에서는 소리를 전시하는 서로 다른 방식이 나란히 관객을 만나고 있다. 오래된 기기를 복원해 과거의 소리를 현재로 불러오는 데서 청각을 시각언어와 공간 경험으로 확장하는 데까지 범위도 넓어졌다.


오디움 내에 전시된 오르간. ⓒ데일리안 전지원 기자

지난 1일 방문한 서울 서초구 오디움의 지하 2층 라운지에 들어서자 높이 4m가 넘는 웨스턴 일렉트릭의 ‘미러포닉 M1’이 우뚝 서 있었다. 1930년대 대형 극장을 위해 제작된 음향 시스템이다. 관객들이 자리에 앉자 ‘오 홀리 나이트’가 거대한 스피커를 통해 라운지로 퍼졌다. 이어폰으로 듣던 음원과는 음량뿐 아니라 소리가 닿는 거리와 울림부터 달랐다.


오디움의 상설전 ‘정음(正音): 소리의 여정’은 좋은 소리를 찾아온 인류의 역사를 음향기기를 통해 풀어낸다. 약 110분간 이어지는 도슨트 투어는 1950~1960년대 가정용 하이파이 기기에서 출발해 1920~1930년대 극장용 음향 시스템, 19세기 축음기와 뮤직박스로 시간을 거슬러 간다. 나무 상자 모양의 가정용 스피커부터 천장에 매달린 거대한 혼 스피커, 태엽을 감아 작동시키는 축음기까지 기기의 크기와 형태도 제각각이다.


100년 가까이 된 스피커와 축음기 가운데 상당수를 실제로 작동시켜 제작 당시의 소리를 들려준다. 태엽과 나팔만으로 소리를 증폭했던 축음기, 유성영화의 등장과 함께 극장을 채운 대형 스피커, LP 보급 이후 거실로 들어온 가정용 오디오가 하나의 동선 안에 이어진다. 음향 기술이 발전하면서 음악을 듣는 장소가 극장에서 가정으로 옮겨가고, 소리를 저장하고 소비하는 방식도 달라진 과정이 귀를 통해 드러난다.


지난달 31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는 ‘MMCA×LG OLED 시리즈 2026: 김 크리스틴 선 〈완고한 바위, 무모한 싸움들〉’이 개막했다. 농인 작가인 김 크리스틴 선은 사운드와 언어, 드로잉, 퍼포먼스, 영상을 넘나들며 소통의 구조를 탐구해 왔다. 작가에게 소리는 귀로 듣는 물리적 현상에 그치지 않고 권력·제도·규범과 연결된 사회적 체계다.


이번 전시에서는 높이 14m의 서울박스를 무대로 애니메이션 기반의 대형 영상 설치 신작을 선보인다. 작가가 고안한 그래픽 노테이션과 고전 만화·코믹북의 모션 라인을 활용해 속도와 방향, 충돌을 표현한다. 온라인 공간에서 정치·사회적 대립이 해결되지 않은 채 반복되는 상황을 ‘바위와 논쟁하는 듯한 감각’으로 옮겼다.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권병준: 내 마음속에 너는’에서는 기술과 인간, 비인간의 공존을 다룬 로봇·사운드 설치 6점을 선보인다. 그 중 전시실 5·6을 잇는 ‘가려진 소리길’은 초지향성 스피커를 활용해 시각에서 청각으로 감각이 전환되는 경험을 선사한다. ‘자연과 신경망의 울림’에서는 자연의 소리를 학습한 AI가 생성한 음향을 12채널 입체음향으로 들려준다. 로봇들은 정해진 시간마다 움직임과 소리가 결합된 협연도 펼친다.


오디움에 전시된 스피커들. ⓒ데일리안 전지원 기자

사운드아트 자체는 새로운 장르가 아니다. 소음과 침묵을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시도는 20세기부터 이어져 왔다. 올해 전시의 특징은 아날로그 음향의 복원과 청각 바깥의 시각언어, AI 생성음이 한 시기에 함께 등장했다는 점이다. 과거와 미래의 기술이 경쟁하기보다 각기 다른 방향에서 듣기의 범위를 넓히고 있다.


일상에서 음악을 듣는 방식이 무선 이어폰과 스트리밍을 중심으로 개인화된 점도 이들 전시를 바라보는 배경이 된다. 이어폰 속 음악은 언제 어디서나 들을 수 있지만, 소리가 발생하는 장치와 공간은 좀처럼 의식하기 어렵다. 반대로 전시장의 소리는 특정한 장소에 직접 가서 몸으로 경험해야 한다.


김종근 미술평론가는 이를 현대미술이 시각 중심에서 시청각을 아우르는 방향으로 넓어지는 과정으로 봤다. 김 평론가는 “미술은 기본적으로 시각예술이지만 AI 시대에는 시청각까지 아우르는 ‘토털 아트’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며 “예술가들이 눈으로 보는 데서 멈추지 않고 사운드를 작품에 넣으면서 관객도 더 능동적으로 감상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에는 눈으로만 작품을 봤다면 이제는 귀로 듣는 것까지 예술가들이 아우르고 있다”며 “관객에게는 낯설 수 있지만 평면에서 벗어나 시청각까지 포괄하는 현대미술의 장르가 확산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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