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EV6, 美 ‘아메리칸 메이드’ 상위권 진입
현대차·기아 제조사 평균 17점서 33점으로 상승
현지생산 차종 늘며 올해 추가 상승 가능성
미국 조지아주 엘라벨에 위치한 ‘현대자동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현대차그룹
현대차·기아의 미국 현지화 전략이 점수로 확인되기 시작했다. 미국 공장 확대와 대규모 투자 계획을 내놓기 시작한 이후 1년 사이 현지 생산 기여도를 나타내는 지표가 경쟁업체인 토요타를 넘어서면서다. 지난해 HMGMA(현대차그룹 메타플렌트 아메리카) 가동 이후 미국 내 생산·공급망 기여도가 본격적으로 반영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4일 미국 아메리칸대 코고드 경영대학원이 발표한 2025년 ‘메이드 인 아메리카 오토 인덱스’에 따르면, 현대차·기아의 제조사 평균 총국산화지수(TDC)는 33점으로 나타났다. 전년도(2024년) 17점에서 1년 만에 두 배 가까이 오른 수치다.
‘메이드 인 아메리카 오토 인덱스’는 현지 자동차 업계·언론에서 ‘미국산 기여도’를 볼 때 자주 인용되는 학계 기반 지표로, 미국에서 판매되는 500개 이상 차량을 대상으로 원산지 정보와 본사 위치, R&D 등 여러 요소를 반영해 ‘얼마나 미국적인 차인지’ 평가한다. 단순 조립지를 넘어 부품, 엔진·변속기, 본사, 연구개발, 고용 기여까지 넓게 보는 것이 특징이다.
물론 미국 현지 업체들과 비교하면 여전히 낮은 수치지만, 주요 경쟁사인 토요타를 제쳤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토요타는 지난해 해당 지수에서 전년(29점)보다 낮아진 24점을 기록해 현대차·기아가 9점 앞서게 됐다. 현지업체인 테슬라는 84점, 포드 55점, GM 53점을 기록했으며 또 다른 주요 경쟁업체인 혼다는 56점을 기록했다.
코고드 지수상 현대차·기아가 점수를 끌어올린 항목은 미국 조립과 부품 현지화다. 전체 점수의 절반이 차체·섀시·전장 부품의 미국·캐나다산 비중에서 나오고, 미국 조립 차량은 노동과 설비·자본 항목에서 추가 점수를 받는다. EV6의 조지아 생산 전환과 현대차 앨라배마 생산 모델 확대가 지표 개선으로 이어진 배경이다.
모델로 보면, 점수를 가장 크게 끌어올린 차종은 기아 EV6다. 테슬라 모델들이 최상위권을 휩쓴 가운데, 지난해 이 지표에서 EV6가 9위에 이름을 올리면서다. EV6는 미국·캐나다 부품 비중이 80%로 집계돼, 단순히 미국에서 조립되는 수준을 넘어 부품 현지화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현대차 역시 아이오닉 5를 비롯해 싼타페, 싼타페 하이브리드, 투싼, 싼타크루즈 등 5개 모델을 올렸다.
해당 지표는 고율 관세와 공급망 재편 압박 속에서 현대차그룹이 비교적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는 신호로 풀이된다. 보호무역주의가 짙어지면서 미국 시장에서는 판매량만큼이나 생산지, 부품 원산지, 배터리 공급망의 현지화가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통상 리스크를 피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미국 시장 안에서 생산·부품·고용 기여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전략을 빠르게 바꾸고 있음을 보여준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산 여부를 따지는 기준이 더 이상 ‘미국 공장에서 만들었느냐’에 머물지 않고, ‘어떤 부품을 쓰고 어느 공급망에 고용과 투자를 남기느냐’로 넓어지고 있다”며 “올해 현지 생산 차종 확대는 현대차그룹이 미국 시장에서 수입차 브랜드가 아니라 현지 산업 생태계에 기여하는 제조사로 인정받기 위한 시험대가 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HMGMA에서 생산된 아이오닉 9이 품질 점검을 받고 있다. ⓒ현대자동차
올해는 이 점수가 더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지표 개선이 EV6의 조지아 생산 전환 등 일부 차종의 현지화 효과를 반영한 결과였다면, 올해는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 가동 효과가 본격적으로 더해질 수 있어서다.
현대차는 아이오닉 5에 이어 아이오닉 9 등 전동화 모델의 미국 현지 생산을 확대하고 있고, 기아 역시 조지아 웨스트포인트 공장을 중심으로 전기차·전동화 모델 생산 비중을 키우고 있다.
여기에 배터리와 전동화 핵심 부품 공급망까지 북미 지역으로 옮겨오는 흐름이 맞물리면, 단순 조립지뿐 아니라 부품 현지화 비중에서도 추가 점수를 받을 여지가 생긴다.
다만, 업계에서는 현대차그룹이 미국 내 생산 비중을 높일수록 장기적으로 국내 생산 물량이 줄며 노조 갈등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고율 관세와 원산지 규정에 대응하려면 현지 생산이 불가피하지만, 그만큼 국내 공장이 맡던 수출 물량은 줄어들 수 밖에 없어서다.
권용주 국민대 자동차·운송디자인학과 교수는 "미국 공장의 생산성이 한국 대비 30% 이상 높기 때문에 미국 현지 생산 전환 속도를 더욱 높이는 측면도 있다. 향후 국내 고용 인원 축소는 불가피하다"며 "국내 생산 기반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는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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