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 샴푸보다 장관감 구하기가 더 쉬웠나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5.07.23 07:07  수정 2025.07.23 16:00

콩나물 한 팩이라도 골라서 사는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갑질의 고수

동지·식구에게는 유세 부려도 되나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4차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대통령실

이재명 대통령이 경기도지사 시절 자신이 쓰는 샴푸까지도 경기도청 법인카드로 구매했다고 해서 한동안 국민적 가십거리가 됐었다. 멀쩡한 경기도청 별정직 7급 공무원이 (자기들 말로) ‘사모님 팀’의 일원으로 그런 심부름을 했었노라고 폭로했었다. 이 지사가 애용하던 일제 샴푸를 사러 서울 강남구 청담동까지 왕복 4시간이나 되는 길을 오가야 했다고 한다.


샴푸 쓴 것이야 문제가 될 것이 없다. 일제든 국산이든, 아니면 다른 나라 제품이든, 그것도 시비 걸 일이 아니다. 경기도청 별정직 7급 공무원(당시) 조명현 씨는 그 제품을 사용하는 미용실까지 찾아가서 자기 카드로 사다 줘야 했다는 게 그 웃픈(웃기지만 슬픈) 블랙코미디의 얼개다. 개인카드로 먼저 결제하고 다음 날 법인카드로 재결제하거나 관계 공무원으로부터 계좌 입금을 받는 방식이었다고 조 씨가 밝혔었다.

콩나물 한 팩이라도 골라서 사는데

흠을 잡자고 일깨우는 기억이 아니라 샴푸 하나라도 유난히 선호·애용하는 게 있을 수 있고, 그걸 구하기 위해서라면 웬만한 발품(내 발품이 아니라 남의 발품이긴 했지만)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는게 개인적 인식임을 밝히려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라면 대다수 국민들이 고개를 끄덕여 공감을 표하리라고 생각된다. 크든 작든 뭔가 사려고 할 때는 상품을 찬찬히 고르게 마련이다. 콩나물 한 팩, 고등어 한 마리 사더라도 그냥 바구니에 담지는 않는다. 건성으로라도 상태를 살펴보게는 되는 것이다.


대통령의 최상위 참모이자 국정운영의 공동책임자이기도 한 내각 각료들과 샴푸의 무게 차이는 어떨까? 샴푸는, 선호하는 제품을 못 구해도 대체품은 얼마든지 있다. 조금만 욕심을 줄이면 일상생활이 샴푸 때문에 불편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함께 나라를 경영해나갈 사람들을 잘못 뽑으면 그 폐해가 온 국민에게 미친다.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다시피 하는 이 대통령이 이 당연한 이치를 모를 리 없다.


그런데 어떻게 장관 후보자라고 지명한 인사들의 자질·수준이 이 모양인가? 다 그렇기야 하겠는가. 사람이 살다 보면 크고 작은 실수·과오를 모두 피하기는 어렵다. 국민들도 웬만한 하자에 대해서는 아주 관대해서 취모멱자(吹毛覓疵: 털을 불어가면서까지 흠을 찾다)까지 바라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함량 미달의 정도가 너무 심한 사람은 과감히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 뒤늦게라도 검증에 문제가 있었음이 밝혀지면, 이를 인정하고 자진사퇴 또는 지명 철회 등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소하는 게 대통령의 국민에 대한 예의고 도리다.


이 대통령은 과거의 사법적 전력, 재산, 칭화대 수학(修學)과 관련한 심각한 의혹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김민석 국무총리 임명을 강행했다. 대중은 쉽게 달아올랐다가 쉽게 잊어버린다고 여긴 때문일까? 김 총리는 이후 진지한 해명도 사과도 없었다. 이제는 호기롭게 총리직을 수행하고 있지만, 정부 인사에 대한 신뢰성에 흠을 남긴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이진숙 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들끓는 의혹과 논란 속에서도 의연히(겉으로 보기에) 버티다가 청문회 후 나흘만인 지난 20일 지명 철회를 당했다. 제자 논문 표절·가로채기 의혹에다 교육정책에 대한 이해 및 비전 부족, 자녀의 불법 조기유학 등이 부적격 사유로 불거졌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갑질의 고수

국민이 용인할 수 있는 한도를 넘어서는 하자다. 애초에 부총리와 교육부 장관직을 탐할 입장이 못 되었다. 진작 지명을 사양했더라면 전비(前非)들을 숨기면서 나름의 명예를 지킬 수 있었을 텐데 과욕 때문에 인생의 여러 부끄러운 대목들을 다 노출당하고 말았다. 잠깐의 장관직(비록 후보자였지만)을 즐긴 대가로서는 너무 가혹하다고 하겠지만 자업자득이니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도 이 전 후보자와 난형난제(難兄難弟)라 할만하다. 논란거리를 많이 만든 데다 솔직하지도 못하다는 점에서 그렇다. 보좌진에게 쓰레기 처리, 변기 수리를 시키고 사직 보좌관의 취업을 방해하는 등 아랫사람들에 대한 갑질이 사회적 용인의 한계를 넘어섰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자신은 그런 적이 없다며 변명했지만 민주당보좌관협의회까지도 강 후보자를 공개 비판하고 나섰다. 그러니까 보좌관 사회에서도 갑질로 호가 난 의원이었다는 뜻이다. 자신의 지위와 권세에 취해서 중구삭금(衆口鑠金: 뭇사람의 말은 쇠도 녹인다)의 이치를 가벼이 여긴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더 놀라운 것은 보좌진에게만이 아니라 장관(그것도 같은 편이라고 할 문재인 정부의)에 대해서도 위세 자랑을 했다는 사실이다. 정영애 전 여성가족부 장관은 지인들과의 SNS 채팅방에 “(강 후보자 같은 사람을) 여가부 장관으로 보낸다니 기가 막힌다”는 글을 올렸다. 정 전 장관이 강 후보자의 지역구 민원 해결에 난감해하자, “하라면 하는 거지 무슨 말이 많냐”고 화를 내면서, 여가부 예산 일부를 삭감했다는 것이다. 결국 의원실로 가서 사과하고 한 소리 듣고서야 예산을 살렸다고 정 전 장관이 토로했다. 이로 미루어 강 후보자가 그간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어떻게 갑질을 해댔을지는, 말 그대로 ‘안 봐도 비디오’다.


이 전 후보자나 강 후보자의 사례를 보건대 이재명 정부에 인사 검증 시스템이 있기나 한 것인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고도의 검증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약간의 관심만으로도 어렵잖게 파악할 수 있는 흠결이다. 인사권자의 뜻을 너무 중히 여긴 바람에 의도적으로 놓치거나 덮어버린 것은 아닌가.

동지·식구에게는 유세 부려도 되나

강 후보자의 보좌관 갑질과 관련해서 문진석 더불어민주당 원내운영수석부대표가 좀 해괴한 역성들기를 했다. 그는 22일 CBS 라디오에 나가 “일반적인 직장 내 갑질과 보좌진과 의원 관계에 있어서의 갑질은 성격이 좀 다르다. 보좌진과 의원은 동지적 관점, 식구 같은 개념도 있다”고 했다. “직장이라 생각 안 하고 의원과 동지적 관계라고 생각하는 보좌진도 있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편들어주는 것은 좋은데 견강부회는 말아야 한다. 의원은 보좌진의 고용주다. 별도의 인사기구가 있는 게 아니라 의원이 직접 고용하고 해고하는 시스템이다. 모든 보좌진이 다 ‘동지’로서의 안정된 지위를 누리는가? 동지적 관계라면서 아주 쉽게 대하는 것이 인격을 존중해주는 것보다 낫다는 보좌진이 있는지부터 파악해봐야 한다는 생각은 안 하는가?


대통령실은 22일, 청문보고서 채택이 불발된 정동영(통일), 안규백(국방), 강선우, 권오을(보훈) 등 4명의 후보자들에 대한 청문보고서를 24일까지 송부해 줄 것을 국회에 요청했다. 강 후보자 장관 임명에 대해서는 참여연대, 민노총,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등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지만 언론들은 빠르면 오는 금요일 이 대통령이 이들을 모두 임명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네 명 가운데 권 후보자 외엔 모두 현역의원이다. ‘현역 불패’라는 연면한 전통이 있다. 현역의원은 낙마하지 않는다. 의원들의 ‘제 식구 감싸기’ 효과 같은 것이다. 임명권자로서도 현역의원 발탁이 청문회를 무난히 넘기는 방편이라 할 수 있다. 이 대통령이 8명을 장관으로 발탁한 배경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물론 당 장악력 강화, 당에 대한 신세 갚기, 당 소속 의원들의 충성심 유도 등이 더 우선적 목적이겠지만….


절대다수의 의석을 갖고 입법과정을 전횡해 온 민주당, 이 당 출신의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강력한 여당 장악력을 과시하고 있는 이 대통령이 무엇인들 마음대로 못 하겠는가. 사법부까지 숨을 죽이는 듯한 분위기에서 새 정권에 제동을 걸 세력은 없다. 그런데 바로 이 점이 정권의 아킬레스건이다. 제동장치가 없거나 고장 난 권력은 과속한다. 과속은 탈선을 부른다. 그 결과는 패망이다. 역사가 입증해 온 바로는 그렇다.


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0

0

기사 공유

1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관련기사

댓글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 뭉치02
    요즘도 법카 심부름하는가?
    2025.07.23  11:12
    0
    0
1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