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의 데자뷰 김민석 총리 후보자
“국정 경험 아닌 교도소 경력이 스펙”
증오의 장막이 국민 사이 갈라놓나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가 17일 외신기자 간담회를 하고 자신의 신상과 관련해 제기되고 있는 의혹들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그런데 국민의힘 측 주장으로는 당 소속 청문위원들이 94건의 자료 제출을 요구했는데 문서로 된 자료는 단 2건뿐이었다. 그러면서도 모든 의혹에 답한다고? 사실 청문회를 통과하고 말고 할 것도 없다. 민주당 의원만으로도 임명동의안 통과는 가능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러나 아무리 떼어 놓은 당상이라고 해도 말한 책임은 다 져야 한다. 청문회는 기자간담회도, 의원간담회도 아니다. 총리로서 자질과 자격을 국민대표의 이름으로 검증하는 절차다. 절대다수 의석을 가진 민주당의 엄호를 받으며 야당의 공세를 압도할 수 있다고 해도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거나 피해 갈 수는 없다.
좌파 인사들은 ‘집단지성’이라는 말을 즐겨 쓰던데 그런 거창한 표현을 빌릴 것도 없이 옳고 그름은 국민 상식에 수렴된다는 걸 명심할 일이다. 민의(民意)가 천의이고 민심이 천심이라는 것도 같은 이치다. 아무리 장막 뒤에서 꾸미는 일이라도 국민은 다 본다. 당장은 대중의 눈을 속일 수 있어도 언제까지나 속이지는 못한다. 역사 속에 구덩이를 파고 다져 묻어도 결국엔 파헤쳐지고 만다.
조국의 데자뷰 김민석 총리 후보자
김 후보자가 이런저런 의혹에 대처하는 모습에 오버랩 되는 것이 조국 씨다. 문재인 대통령에 의해 무리하게 법무부 장관 자리에 올랐다가 개인 비리로 징역 2년 형이 확정되어 교도소 신세를 지고 있는 법학자다. 온 가족이 이런저런 비리 행위로 사법적·행정적 징벌을 받았지만, 여전히 정치검찰의 보복 수사 탓을 하고 있다(조국혁신당에서는 그를 사면하라고 새 정부에 요구하고 나섰다. 그가 정치검찰의 피해자라는 것이다).
조 씨도 그랬지만 김 후보자도 주군의 총신(寵臣)이다. 두 사람 다 똑똑함을 과시해왔고 그것이 문재인 전 대통령이나 이재명 대통령의 지적 이미지 보완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됐음 직하다. 그런데 조 씨의 경우 문 전 대통령이 끝까지 지켜주지를 못했다. 지켜주는 척하다가 슬그머니 잡고 있던 손을 놔 버렸다. “마음의 빚을 크게 졌다”라고 했지만 장관 중도하차와 구속수사를 막아 나서지는 않았다.
김 후보자는 조 씨가 문 전 대통령에게 그랬던 것처럼 이 대통령의 지낭(智囊)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여 왔다. 특히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선포 가능성을 집요하게 따지고 듦으로써 정보력이나 상황 분석력, 그리고 그 활용 능력이 남다른 데가 있다는 인정을 주군으로부터 받았을 듯하다. 어쨌든 결국 윤 전 대통령에게 ‘불법 계엄선포를 통한 내란 획책’의 올무를 씌워 현직에서 쫓아내고 법정에 세우는 데 결정적 공을 세웠다. 그게 아마 첫 총리직을 차지하게 된 배경이 됐을 법하다.
이 대통령은 16일 캐나다로 향하는 전용기 안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이 문제에 대한 인식을 밝혔다.
대통령이 총리 후보자의 의혹 내용을 몰랐다는 말이다. 그러니 어떻게 된 건지 물어봤다는 것 아니겠는가. 너무 신뢰해서 인사 검증을 안 했다는 것인지, 아니면 검증에서 놓쳤다는 것인지(그 많은 의혹을?)부터 설명해줄 필요가 있다. 당사자가 ‘의혹에 불과’하다니 그렇게 믿는다는 뉘앙스로 들린다. 이미 정답을 말한 셈이다.
“국정 경험 아닌 교도소 경력이 스펙”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1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이런 말을 했다.
이 대통령의 입장을 제대로 짚었다. 다른 건 몰라도 개인 비리로 인한 형사적 책임과 관련해서는 할 말이 있을 리 없다. 설령 김 후보자의 형사적 결격사유를 사전에 인지했다고 하더라도 그걸 추궁하면 자신의 입지와 명분이 사라지고 만다.
그런 입장에서 법치의 수호자로서 역할과 책임을 다하길 바라는 것이야말로 연목구어(緣木求魚: 나무에 올라가서 고기를 구한다)다. 부적격자를 공직에 앉히면 독재자에 가까워질 것이고, 결격사유를 지적해 징벌하거나 불이익을 준다면 세상의 비웃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러니 해괴한 비위 맞추기 혹은 감싸기가 불쑥 끼어들 수밖에.
고등검찰청 검사장 출신인 민주당 박균택 의원의 김 후보자 편들기다. 그는 지난 16일 CBS라디오에 출연해 당당히 변론 솜씨를 뽐냈다. 이런 말도 했다.
김 후보자의 아들이 고교 재학시절 교내 동아리 활동 중 작성한 법안을 실제 민주당 의원이 국회에서 발의하고 이것이 미국 코넬대 입학 과정에 쓰였다는 ‘아빠 찬스’ 의혹에 대한 항변조의 해명이다. 바꿔 말하자면 민주당이 김 후보자 아들의 코넬대 합격에 협력했다는 뜻이 되는데 이걸 이처럼 호기롭게 정당화할 수 있다니!
증오의 장막이 국민 사이 갈라놓나
첫 단추가 잘못 꿰지면 그다음 단추부터는 모두가 어긋난다. 이 대통령이 8개 사건 12개 혐의 5개 재판을 순리대로 감당하지 않고 거대 의석수로 사법절차를 원천 봉쇄해버린 후유증이 앞으로 어떻게 나타날지 예측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 한 사람의 사법적 족쇄를 벗겨주기 위해 국가 형사사법 체계와 사법부의 구조를 뒤 헝클어놓으면 그 뒷감당은 누가 하나(차라리 이재명 특별법을 만들면 제도적 혼란은 면할 텐데). 김 후보자 발탁이 빌미가 되어 주요 고위공직이 전과자들에 의해 점령되는 사태는 또 누가 막아주나.
이 상황에도 김 후보자는 “검찰의 표적 사정으로 추징금과 세금 압박이 커서 경제적 고통이 심했다”는 주장을 하며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 “다 발가벗겨진 것 같다는 고통을 호소하는 아내 눈의 실핏줄이 터졌고, 참 무기력하고 부끄럽다”라는 말까지 했는데 대통령 최측근 인사의 정치 스타일이 이렇게 잘아서야….
같은 맥락이어서 짚어둬야겠다. 정청래 의원이 지난 15일 민주당 대표 경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말했다.
주군에게는 충복으로서의 ‘기특한 충성맹세’이겠으나 한국 정치라는 관점에서는 비극의 재확인일 수가 있다. 정치를 싸움으로 인식하는 이런 사람이 여당의 대표가 되면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는 불문가지다. 이재명-김민석-정청래 라인업, 정말 숨이 막힌다(정 의원과 대표직을 겨룬다는 박찬대 의원의 충성심과 정치적 호전성도 전혀 뒤지지 않는다).
과거 냉전기엔 ‘철의 장막’, ‘죽의 장막’이 세계를 갈라놓더니 때아닌 ‘증오의 장막’이 대한민국 국민 사이를 갈라놓기 시작하는 양상이다. 정치인이라는 분들! 도대체 왜, 어쩌자고 이러는 겁니까?
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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