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계가 점차 나이 들어가는 지금, 오늘 이 무대가 청년 연극인을 위한 씨앗이 되어 창작 정신을 깨우고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기부 공연 관객과의 대화 中 배우 신구)
연기자의 길을 걸으며 문화예술계를 지탱해 온 원로 배우들의 행보가 후배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원로들의 활동은 단순히 하나의 배역을 연기하는 직업적 영역을 넘어, 삶과 예술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드러내고 미래 세대를 위한 지원까지 아끼지 않는 모습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원로 배우 신구와 박근형은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무대에 올리면서, 1990~2006년 태어난 청년 세대를 위한 특별 무대로 공연의 기획 의도를 분명히 했다. 박근형은 “연극을 하며 받은 사랑을 어떻게 되돌릴 수 있을지 고민하던 중, 열악한 환경에서 고군분투하는 청년 연극인들이 떠올랐다. 기부라는 방식으로 그들에게 힘을 보태고 싶었다. 앞으로도 기회가 닿는 한, 매 공연마다 기부 공연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연기를 선보이는 것을 넘어, 공연 티켓 수익 전액을 청년 연극인 지원을 위한 ‘연극내일기금’으로 기부함으로써 단순한 격려를 넘어 실질적인 도움까지 약속했다. 자신들이 평생 쌓아 올린 예술적 성과와 무대를 기반으로 미래 세대가 싹틔울 토양을 마련하면서 예술계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파크컴퍼니 제작으로 2023년 12월 서울 국립극장에서 첫 선을 보였으며, 기부공연까지 총 106회에 걸쳐 전석 매진을 기록했고 두 배우의 뜻에 공감한 공연 관계자들과 후배 배우들도 객석 기부에 동참했다. 파크컴퍼니에 따르면 티켓 수익금은 2162만1600원, 기부금은 915만원으로 총 2077만1600원이 모아졌다.
신구, 박근형이 자신들의 현재를 기반으로 미래 세대에 손을 내미는 공동체적인 차원에서 기여했다면, 현재와 과거를 성찰하며 개인적인 차원의 예술 행위를 통해 후배 배우들에게 귀감을 주는 원로 배우도 있다.
또 다른 원로 배우 박정자는 자신의 여든셋 생일에 맞춰 ‘마지막 커튼콜’이라는 제목의 부고장을 영화인 김동호, 정지영, 연출가 손진책, 프로듀서 박명성, 소리꾼 장사익, 배우 강부자·손숙·송승환·양희경 등 3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한 문화계 인사들에게 전달했다. 이는 배우 겸 감독인 유준상의 다섯 번째 장편 영화 ‘청명(淸明)과 곡우(穀雨) 사이’의 일환으로 기획된 퍼포먼스다.
한 공연계 관계자는 “영화 촬영을 겸해 열리는 ‘사전 장례식’이라는 행위이지만, 예술의 형식을 빌려 개인의 가장 깊은 고뇌와 깨달음을 공적인 영역으로 확장한 것”이라며 “오랜 세월 예술과 함께 해온 원로 배우만이 보여줄 수 있는, 삶과 예술이 융합된 깊이 있는 성찰이자 용기 있는 자기표현”이라고 평했다.
접근 방식은 다르지만 이 두 사례는 모두 수십 년간 예술과 함께 해온 원로 배우만이 보여줄 수 있는 깊이와 넓이를 담고 있다. 연륜과 경험이 단순한 시간의 누적이 아니라, 삶과 예술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로 승화되고, 그 통찰이 다시 후배들을 위한 든든한 ‘지원군’ 역할로 발현되는 셈이다.
이 관계자는 “원로 배우들의 이 같은 행보는 우리 사회, 특히 예술계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단순히 과거의 성과에 안주하거나 개인의 역할에만 집중하는 것을 넘어, 끊임없이 삶과 예술의 본질적 의미를 탐구하고 그 결과물을 후배들과 공유하려 한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고 말했다.
또 “연극, 영화 등의 예술 장르가 과거를 시작으로 현재 그리고 미래로 단절 없이 이어지는 튼튼한 연결고리를 형성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한다”면서 “세대 간의 소통과 협력이 중요시되는 시대에 예술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본보기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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