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박근혜, ´원칙론´에 발목 잡히나

입력 2008.01.30 15:57  수정

강재섭 칩거·김무성 탈당 시사 등 친이-친박 공천 갈등 증폭

이방호 "공천 자격, 다수 의견 따라 결론… 규정대로 할 수밖에"

‘4.9총선’ 공천 문제를 둘러싼 한나라당내 ‘친이(親李)-친박(親朴)’ 진영 간 갈등이 공천 신청 자격 문제를 놓고 한층 더 격화되고 있다.

당 공천심사위원회(위원장 안강민)가 29일 ‘부패 전력자에 대해 공천신청 자격을 불허한다’는 내용의 현행 당규상 조항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자, 공천 배제 가능성이 높아진 ‘친박’계 좌장 김무성 최고위원이 30일 ‘탈당’까지 시사하며 격하게 반발하고 나서는 등 당이 또 한 차례 ‘내홍’ 국면에 빠지고 있는 것.

당헌 당규의 유연한 적용을 요구했던 강재섭 대표도 일체의 당무를 접고 대표직 사퇴 가능성을 내비치며 ‘칩거’에 들어갔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아래)가 30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친형 이상득 국회부의장과 나란히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선 이미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과 박근혜 전 대표가 지난 23일 이른바 ‘공정 공천’에 합의하던 그 순간부터 ‘예견됐던 상황’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즉, 박 전 대표가 그토록 강조해온 ‘원칙론’이 부메랑처럼 돌아와 도리어 자파 의원들의 발목을 잡게 됐다는 것.

박 전 대표의 경우 이미 “이 당선인 측이 ‘밀실 공천’을 하면 좌시하지 않겠다”고 공개 경고한데다 자파 중진 의원의 ‘공천 희망자 명단 거래설’에 대해서도 “어떻게 그런 일이 있느냐”고 격앙된 반응을 보이며 이른바 ‘계보 챙기기’ ‘지분 나누기’와는 무관함을 강조해온 터다.

공심위 구성을 놓고 ‘친이-친박’ 간 줄다리기가 계속됐을 때도 박 전 대표는 ‘원칙에 따라 공정하게 하겠다’는 당과 이 당선인 측의 약속을 믿는다는 의미에서 “대승적으로 양보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결국 이 당선인과의 비공개 회동 당시 공천 어떤 ‘이면 합의’가 있었다 하더라도 현재 공천 신청 자격에 대한 문제는 “박 전 대표가 늘 강조해왔던 ‘원칙’, 즉 당헌`당규를 따른다는 것을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된 것인 만큼 반박의 여지가 없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박 전 대표는 30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공심위가 정한 원칙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돼야 하나 지금은 (공천 신청자격의) 적용기준 자체가 모호하다”면서 “우린 그런 규정이 있는지도 몰랐다”고 말했다.

즉, 당 대통령후보 경선 뒤인 지난해 9월 열린 당 전국위원회에서 이재오 당시 최고위원 등 ‘친이’계의 주도로 해당 조항이 개정된 만큼, 이번 사태는 다분히 ‘친이’ 측의 ‘계획된 음모’란 자파 인사들의 입장을 대변해준 것.

그러나 이에 대해 한 ‘친이’계 인사는 “박 전 대표의 발언이 너무 무책임하다”며 “당헌·당규대로 하자고 해서 그대로 하겠다는 건데 뭐가 문제냐”는 반응을 보였다.

특히 그는 박 전 대표가 “우린 그런 규정이 있는지도 몰랐다”고 언급한데 대해 “그만큼 경선 이후 당에 관심이 없었단 얘기가 아니냐”고 되물으면서 “박 전 대표가 말하는 ‘원칙’이 뭔지 대체 모르겠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공심위원인 이방호 사무총장도 이날 오전 최고·중진연석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어제(29일) 공심위의 발표는 다수 의견으로 의결된 것”이라면서 “규정대로 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는 앞서 회의를 통해서도 “공심위 논의 이전에 강재섭 대표, 김무성 최고위원 등과 만나 ‘이 문제(공천 신청자격 기준)로 인해 당규를 개정하는 건 안 된다. (정치자금법 등 위반 전력이 있어도 공천) 신청은 받아야 한다’는데 서로 의견을 같이 한 적이 있다”고 소개하면서 “그러나 어제 회의에선 공심위원장과 나를 제외한 9명 중 6명이 ‘원칙대로 해야 한다’고 주장해 그런 결론이 내려진 것”이라고 말했다고 나경원 대변인이 전했다.

“공심위가 당헌·당규를 뛰어넘는 결론은 내릴 수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고 한다.

또 공심위 간사로서 회의 결과를 전한 정종복 제1사무부총장 역시 “난 (공천 신청자격 기준을) ‘당헌·당규대로 한다’는 얘기를 했을 뿐”이라며 “공심위에도 ‘발표를 어떻게 어떻게 하겠다’고 2번, 3번 말했다. 내가 함부로 발표할 순 없다”고 자신의 브리핑 내용이 실제 회의 내용과 다르다는 일각의 주장을 반박했다.

그러나 ‘친박’계인 김학원 최고위원은 이날 회의 발언과 별도 기자회견 등을 통해 “당규상 규정은 명백한 피선거권 침해로 헌법상 공무담임권과 평등권에 위배된다. 과거에도 벌금형 받은 사람들이 공천을 받은 경우가 많은데 유독 이제 와서 이 규정을 적용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 이 문제에 대한 재논의를 요구했다.

‘친이’계인 전재희 최고위원도 “형식 논리에 얽매여 정치 논리를 잃는 것은 맞지 않다.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며 당규 개정 등의 방법을 제시했으며,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동 중인 김형오 의원 역시 “공심위에서 고민을 했다고는 하나 국민에게 설득력 있는 모습을 보이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하며 이 문제로 다시금 당이 분열 양상을 보이는데 대해 우려를 표했다.

이명박 당선인의 친형인 이상득 국회부의장 또한 “공심위의 결정은 존중하나 진행과정에 있어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당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 최고위원회의에서 논의해야 할 것”이라면서 공심위 결정의 재검토 필요성을 주장하는 등 중재에 나섰다.

그러나 다른 일각에선 “김무성 최고위원이 ‘계파 안배’를 주장하며 그토록 자파 ‘대리인’ 1명의 공심위 참여를 요구했던 건 결국 ‘공천 물갈이’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었단 사실이 드러났다”며 “기왕 ‘원칙’대로 할 거라면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인적 청산을 할 필요도 있다”도 나온다.

이 당선인의 말마따나 ‘변화를 위한 최소한의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한편 이런 가운데 ‘친박’계 의원 30여 명은 이날 국회 본회의 직후 회동을 갖고 “김무성 최고위원과 정치적 운명을 같이 하겠다”며 ‘집단행동’을 예고하고 나서 그 귀추가 주목된다.

0

0

기사 공유

댓글 쓰기

댓글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