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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에 떠밀린 금융위…공매도 금지 연장 '백기투항'


입력 2021.01.26 06:00 수정 2021.01.25 16:08        이충재 기자 (cj5128@empal.com)

여당 "금지 연장하라" 압박에 속수무책…당정협의서 결론낼 듯

대형주 중심의 단계 재개안 거론…글로벌시장 '외딴섬' 우려도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2020년 11월 24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금융그룹의 감독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제안설명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2020년 11월 24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금융그룹의 감독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제안설명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금융권의 뜨거운 감자인 공매도 논란이 '금지 연장'쪽으로 기울고 있다. 공매도 금지 조치는 3월 종료되지만, 동학개미로 불리는 700만 개인투자자들의 반발과 이에 편승한 여권 정치인들이 연장에 무게를 실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공매도는 금융권을 넘어 정치이슈로 확산하고 있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과 금융위원회는 이르면 2월 초에 당정협의를 거쳐 공매도 관련 기본 입장을 정리할 예정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관계자는 "당정협의를 연다고 하지만 협의가 되는 관계인가. 여당이 결정하고 금융위에 통보하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여당이 정책 결정권을 쥔 주무부처를 대놓고 패싱하는 상황이다.


이미 공매도 논의의 주도권은 여당으로 넘어왔다. 금융위는 당초 "공매도 금지 조치는 3월 15일 종료 예정"이라는 입장을 밝히며 재개를 공식화하는듯했지만, 여권의 압박에 "아무것도 결정된 게 없다"며 한발 뒤로 물러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여권 내에선 금융위가 공매도 재개를 예고한 오는 3월 16일까지 파격적인 제도 개선안을 마련하는 게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따라 한시적 금지 조치를 3~6개월 연장하거나 대형주를 중심으로 단계적으로 재개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도 이뤄지고 있다.


금융권 안팎에선 공매도 재개와 관련한 정책 결정은 민심 대목인 설 연휴 직전에 발표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여권에서는 공매도 재개를 반대하는 공개 발언을 쏟아내면서 시장에서는 공매도 금지 연장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지난 24일 기자회견을 열고 "지금 수준에서는 공매도 금지 기간을 연장하는 것이 맞다"고 밝혔다. 여기에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후보들도 시정과 직접적으로 관련 없는 공매도 이슈를 띄우며 표심을 자극하고 있다.


개미들 '공매도 트라우마' 여전…"소신껏 말할 분위기 만들어줘야"


금융권에선 공매도 금지가 글로벌 스탠더드에 역행하는 조치인데다 자칫 한국 증권시장이 해외 투자자들이 찾지 않는 외딴섬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현재 전 세계에서 공매도를 금지한 나라는 한국과 인도네시아(무기한 금지) 등 2국 뿐이다. 지난해 코로나19 여파에도 미국·영국·독일·일본 등 주요 선진국은 공매도를 금지하지 않았다.


금융위는 우리나라의 공매도 규제가 유례없이 강력한 수준으로 외국인 자금 이탈을 걱정해야 하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19일 올해 업무계획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불법 공매도 처벌과 관련 "외국인 투자자 사이에서 형사처벌은 과잉이라는 지적이 있었을 정도로 처벌을 강화했다"고 강조했다.


개인투자자들의 공매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2012년 셀트리온', '2016년 한미약품의 미공개 정보 이용 공매도', '2018년 골드만삭스의 무차입 공매도' 등 트라우마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금융당국의 제도보완에도 불구하고 기관과 외국인이 공매도를 활용해 시장을 왜곡하고 부당차익을 노린다는 의구심은 여전하다.


무엇보다 제목소리를 내야할 경제‧금융학계에선 개미들의 눈총에 공매도 재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공개적으로 내는데 주저하고 있다. 일부 공매도 재개에 찬성하는 의견을 낸 인사들에겐 이메일 폭탄이 떨어졌다. 민간 금융사 소속 연구원이나 국책연구기관 학자들의 목소리는 '기관과 외국인을 대변하는' 의견으로 낙인찍히는 분위기다.


금융권에선 김기식 더미래연구소 소장의 "공매도가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는 힘들고 결국 공매도를 다시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에 주목하고 있다. 김 소장은 시민운동가이자 민주당 의원 출신의 대표적인 '재벌 저격수'로 문재인 정부에서 두 번째 금융감독원장을 지낸 인물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지금 공매도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면 여권에 찍히기 십상"이라며 "최소한 김 소장 같은 분이 소신껏 말할 분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충재 기자 (cjle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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