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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정의 참견] 박원순 영결식 생중계, 꼭 했어야만 했나


입력 2020.07.14 07:00 수정 2020.07.13 20:45        고수정 기자 (ko0726@dailian.co.kr)

"서울시葬 반대" 청원 50만명 동의에도 진행

여당·극렬 지지자의 朴 미화로 2차 가해 우려

업적 인정하되 고소인 절규에는 귀 기울여야

13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엄수된 고 박원순 서울시장 영결식에 고인의 영정과 위패가 모셔져 있다. ⓒ사진 공동취재단 13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엄수된 고 박원순 서울시장 영결식에 고인의 영정과 위패가 모셔져 있다. ⓒ사진 공동취재단

불편했다. 모든 죽음은 슬픔을 동반하기 마련이지만, 이보다 불편한 감정이 앞서는 것은 아무래도 극단적 선택의 뒤편에 해결되지 않은 무언가가 있어서일 것이다. 13일 치러진 박원순 서울시장의 영결식이 온라인에서 생중계됐다. 코로나19 방역 문제가 표면적 이유였지만, 서울특별시장(葬) 장례를 반대하는 정치권 안팎의 목소리를 두루 의식한 것으로 읽혔다.


박 시장 장례는 초반부터 많은 말을 낳았다. 시민운동가이자 인권변호사의 삶을 살아온 그에게서 불거진 '비서 성추행 의혹' 탓이다. 박 시장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도 해당 직원의 고소와 직접 관련성이 있어 보인다. 기관장 형식의 장례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청와대 국민 청원으로 모인 것도 이 때문이다. 해당 청원은 게재된 지 하루도 되지 않아 청와대 답변 요건인 20만명의 동의를 얻었다. 그만큼 공·과(功過)가 분명하게 엇갈렸다.


박 시장의 죽음을 두고 진영 간 대결이 극으로 치닫고 있다. 그 과정에서 고소인에 대한 '신상털이' 등 2차 가해까지 이뤄지고 있다. 고소인에 대한 연대를 표한 정치인이나 단체, 기자들에는 '창녀' '시선강간' 등 입에 담기도 힘든 단어가 따라붙었다. 고소인이 '여자'라서 이런 문제가 생긴 것이라며 그 책임을 전적으로 고소인에 돌리는 발언도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박 시장의 영결식은 온라인으로 생중계까지 됐다. 영결식에서는 "'친절한 원순씨'라는 그의 별명처럼 서울시 수장으로서 서울시민들의 친구이자 소탈한 옆집 아저씨와 같은 시장으로 시민들을 위해 열정을 바쳐서 일을 해왔다"(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오늘 수많은 서울시민들과 이 땅의 국민과 주민들, 해외의 다수 인사까지 당신의 죽음에 충격과 슬픔을 감추지 못하는 것은 당신이 특별한 사람이었고 특별한 공덕을 쌓았기 때문이다"(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등 박 시장을 칭송하는 발언이 이어졌다. 청와대 국민 청원 동의자가 50만명을 넘어선 때였다.


박 시장의 영결식을 가장 불편하게 봤을 이는 고소인일 것이다. 박 시장 실종 당일부터 이날까지 지난 5일간 고소인은 안중에도 없었다. 고소인은 영결식이 끝난 뒤 연 기자회견에서 "저의 존엄성을 헤쳤던 분께서 스스로 인간의 존엄을 내려놓았다"고 한탄했다. 그래서일까. '조용히 가족장으로 치르라'는 청원인의 주장이 온라인상에서 회자됐다.


그제서야 이 대표는 "이런 상황에 이르게 된 것에 대해 사과드린다"며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청와대도 "피해 호소인의 고통과 두려움을 헤아려 피해 호소인을 비난하는 2차 가해를 중단해 줄 것을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했다. 마치 짠 것처럼 비슷한 시간에 해당 입장이 나왔다.


박 시장의 생전 업적을 부인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의혹 당사자는 수사를 받는 것 대신 죽음을 택했고, 극렬 지지자들은 박 시장 혐의를 합리화하고, 고소인에 대한 보복까지 시사하면서 도리어 박 시장의 공(功)은 흐려졌다. "50만명이 넘는 국민의 호소에도 바뀌지 않는 현실은 제가 그때 느꼈던 위력의 크기를 다시 한번 느끼고 숨이 막히도록 한다." 지금 우리는 고소인의 절규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고수정 기자 (ko0726@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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