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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엔 뭐 하다가 이제야 ‘경보 단계 격상’인가


입력 2020.02.24 09:00 수정 2020.03.04 09:38        데스크 (desk@dailian.co.kr)

파안대소할 때 이미 심각했는데

보건 장관은 말재간이나 뽐내고

선거연기 핑계로는 삼지 말아야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1일 정세균 국무총리와 관계 부처 장관들로부터 코로나19 대응에 관련한 현안 보고를 받고있다.ⓒ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1일 정세균 국무총리와 관계 부처 장관들로부터 코로나19 대응에 관련한 현안 보고를 받고있다.ⓒ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23일, 마침내 코로나19 위기 경보를 가장 높은 수준의 ‘심각’단계로 격상한다고 밝혔다.


불과 사흘 전인 20일에는 부인과 함께 청와대에서 짜파구리 파티를 열고 파안대소를 거듭하던 대통령이다. 그날이라고 코로나19가 소강상태를 보였던 게 아니다. 18일까지 31명이던 확진자가 19일 오전엔 51명으로 갑자기 증가했다. 그리고 다음날 오전(그러니까 청와대 ‘기생충’ 축하 오찬이 있었던 그날)에는 82명으로 다시 급증했다. 전파 범위와 속도에 예상하지 못했던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이쯤 됐으면 대통령과 정부 각료들은 만사 제쳐놓고 사태파악과 대책마련을 위해 머리를 맞대는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 그런데 청와대에는 웃음꽃이 만발했다. ‘목젖이 보일 정도로’ 고개를 젖히고 웃는 사람도 있었다. 국민이 공포에 떨던 시간이었다. 그런데 청와대에선 대통령 부인 표 짜파구리까지 등장한 점심식사가 요란스레 이어졌다.


파안대소할 때 이미 심각했는데


예정된 행사여서 일정을 변경할 수 없었다고 할 텐가? 대통령 부인이, 그 이틀 전에 유명 셰프들까지 대동하고 전통시장에 가서 장 봐온 ‘돼지 목살’ ‘대파’등을 이용, 전날 오후 내내 ‘조합한’ 특제 짜파구리가 제공될 참이었다. 누가 감히 행사를 물리거나 미루자 할 수 있었겠는가.


그 전전날 밤부터 코로나19 확진자는 그야말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21일 오전에 이르러서는 156명, 22일 오전엔 346명, 그리고 23일 같은 시간(9시)에는 556명이 되었다(오후 4시 현재로는 602명, 사망 5명). 그런데도 정부는 위기 경보를 ‘경계’에 묶어뒀다. 이런저런 핑계를 댔지만 심각성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기분이 대통령을 비롯한 관계당국자 사이에 팽배했던 게 아닐까? 정부의 이미지 실추는 4‧15총선에 악재로 작용할 게 뻔하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우의에 금이 갈까 두려웠을 수도 있고….


질병관리의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 박능후 장관은 그 상황에서 말재간 자랑까지 했다. 21일 중앙사고수습본부장으로서 브리핑을 했다. “중국에 대한 입국 제한 없이 방역을 하는 건 ‘창문 열어 놓고 모기를 잡으려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있다”고 누군가 지적했던 모양이다. 박 장관은 “지금 겨울이라 아마 모기는 없는 것 같다”고 응수했다. 과연 그 대통령에 그 장관이다.


박 장관은 또 “지금까지 중국에서 들어온 관광객이 국내 감염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지만, 중국에 다녀온 우리 국민이 감염원으로 작동한 경우가 더 많다”고 밝혔다.우리 국민을 못 들어오게 할 수 없으니 중국인도 막을 수 없다는 말 아닌가. 중국인에 대한 전면적 입국 제한을 할 수 없다는 핑계를 찾느라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보건 장관은 말재간이나 뽐내고


감염원으로서 어느 나라 국민이 더 많고 덜 많고의 문제가 아니다. 감염 입국자를단 한 사람이라도 줄이는 게 급선무다. 우리 국민 가운데 감염된 사람은 우리가 관리하고 치료하면 된다. 중국인 감염자로 인한 위험 및 치료 부담까지 우리가 떠안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이런 인식의 장관에게 우리의 건강을 맡겨두고 있다니(지금까지도 중국인 입국 전면 제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는데, 훗날 코로나19 결산 때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코로나19 범정부대책회의 모두 발언에서 “지금부터 며칠이 매우 중요한 고비”라며 “감염병 전문가들의 권고에 따라 국가 위기경보를 최고 단계인 심각 단계로 올려 대응 체계를 대폭 강화해 나가겠다”고 했다. 위기대응 조치가 이처럼 굼뜰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신기하다. 홍수가 제방을 무너뜨리고 들이닥쳤는데 무슨 ‘중대한 고비’인가. 이미 고비를 놓치고 말았으면서. 감염병 전문가들은 진작 경보 단계 격상을 권고했었다. 그때는 참모들이 대통령의 귀와 눈을 틀어막고 있어서 못 듣고 못 봤다는 건가.


문 대통령은 “대규모로 일어나고 있는 신천지 집단 감염 사태 이전과 이후는 전혀 다른 상황”이라는 말도 했다. 청와대 오찬은 그 사실이 알려진 후에 열렸다는 것을 잊은 듯하다. 그리고 신천지 집단예배가 상황을 악화시킨 요인이 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정부의 방역책임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신천지 감염자들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기라도 했다는 것인가. 그들이 의도적으로 병을 옮겨온 것이 아니라면 책임은 정부 방역당국과 그 체계에 있다. 이 점을 정부 당국자들은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선거연기 핑계로는 삼지 말아야


정말 한심한 일은 또 있다. 대통령이 말이 떨어지지 않으면 정부는 작동을 하지 않는 분위기다. 적극적으로 대통령의 상황인식을 일깨울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었던 것 같지가 않다. 앞에 나서서 대통령에게 경보 단계를 높여야 한다고 건의한 참모나 각료가 있었다는 언론보도는 없었다. 보건 장관은 한술 더 떴다. “겨울에는 모기가 없다”고. 이런 나라에 국무총리 청와대 참모, 각부 장‧차관들이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 대통령 혼자 있어도 문제될 게 없지 않겠는가.


이 상황에서 ‘총선 연기론’이 슬그머니 흘러나오고 있는 것도 예사로워 보이지 않는다. 총선을 준비하는 각 정당도 그렇지만 특히 이미 사실상 선거운동에 들어간 주자들이 얼마나 답답할 것인지는 능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 연기를 말하기는 아직 이르다. 법정 선거운동기간은 4월 2일부터 14일까지다. 물론 예비후보등록 이후 일정한 한계 내에서 선거운동이 허용되고 있지만 본격적 선거운동 기간은 13일에 불과하다. 그 기간으로도 선거운동을 하기에 부족하지 않다는 뜻일 터이다.


벌써부터 연기론이 나오는 데는 당사자들의 절박한 심정 말고도 다른 의도가 섞여들었을 수 있다. 시중의 기류가 심상치 않다. 여론 동향으로는 더불어민주당이 위기감을 가질만해 보인다. 상황이 계속 악화된다면 일단 소나기를 피하고 보자는 회피심리가 발동하지 않을까?


정략으로서의 선거연기 기도는 용인될 수 없다. 정부‧여당도 연기 가능성을 부인하고 있다니 다행이다. 다만 이 사람들 슬그머니 말을 흘리다가 어느새 힘으로 밀어붙이는 특기를 가진 만큼 아주 믿기는 어렵다. 나쁜 꾀를 내다가 더 궁지에 몰리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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